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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Jun 06. 2024

대치동에도 영도에도 사람이 산다

대치동이 답일까?


https://naver.me/5aqM1gTy

영도 신축 아파트에 분양신청을 했다는 소리에 내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쎄했다. 제일 먼저 한 말들이 애들은 어쩌려고? 였다. 부산 원도심이긴 하지만, 낙후되고 열악한 곳이다. 학교는 공교육이니 그렇다치고 사교육을 할 만한 이름 있는 학원은 찾기가 힘들다. 그건 내가 5년여 전 분양을 받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에 사는 지인이 며칠 전 대치동으로 이사를 했다. 살던 집을 전세 주고 영끌하다시피 해서 대치동으로 입성했다. 남편이 소위 강남 8 학군 출신이다. 그의 어머니는 열혈 강남 사모님이셨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대충 알 거다. 강남 치맛바람아래 아들은 의사로 성장했고 그의 여동생은 박사가 되었다. 부인 역시 지방의대 출신이긴 하지만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다. 부부가 의사니 자식들 역시 그들처럼 성장하길 바랄 수 있다. 그들의 선택에 왈가왈부 옳다 아니다 할 이유도 없다. 그들이 이사하기 전까지 사교육을 안 했던 것도 아니다. 광진구에서 대치동까지 학원 셔틀을 했다. 학교가 가까운 곳이 아닌 학원이 가까운 곳을 찾아 이사를 한 거나 다름이 없다.


맹모삼천지교를 꿈꾸며 어렵게 이룬 대치동 입성이 그들에게 정말 아이가 원하는 미래를 설계해 줄 수 있을까? 나에게 부산에서 살면 아이의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며 서울로 상경할 것을 강하게 권유한 적이 있다. 대치동엔 학폭도 없다나? 비슷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공부밖에 안 한다는 말도 했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아이의 사춘기에 멘붕이 온 상태였고 다니던 학원도 다 끊고 다시는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시기였었다. 내 귀에 캔디? 달콤은커녕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아이의 청소년기를 학원 책상에서 보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대치동에도 분명히 꼴찌가 있다. 상대적으로 평가받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이 그 빡빡한 줄 세우기 환경에 적응하기가 과연 쉬울까? 위의 기사처럼 학원이 아닌 학교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과도하게 성장해 버린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이 답답한 건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들의 대치동에도 나의 영도에도 사람은 산다.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다. 우리 아이들은 학원 갈 시간에 열심히 논다. 그런 와중에 큰 아이는 나의 컨트롤 없이 본인의 선택과 노력으로 본인의 진로를 정하고 열심히 가고 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고민인 아이라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은 아이가 할 것이다. 고3 엄마가 이렇게 한량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는 아이의 인생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선택도 실패도 해봐야 다시 일어서는 힘이 생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꼬맹이들도 하교 후 매일 핸드폰 삼매경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학교 숙제도 열심히 하고 졸지도 않는다. 충분히 자고 충분히 쉬니까 학교 생활에 최선을 다한다(고 믿고 싶다).


대치동에도 영도에도 잘하는 아이 그렇지 않은 아이 각양각색일 것이다. 기준이 누구인지 아이의 픽인지 부모의 픽인지 나는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공부를 타고나게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들이 있다. 승부욕에 불타서 대치동 환경을 즐기는 아이도 상위 몇 프로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 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며 어릴 때부터 대치동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보고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눈 가린 말처럼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선 조금만 벗어나면 물질하는 해녀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삶이 고될지는 모르나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하고 자식들을 길러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며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말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언급한 것처럼 농업혁명은 인류의 끝나지 않는 노동을 의무했고 상위 몇 프로에게만 자유를 선물했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을 상위권으로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상위권이 되고 많이 가지면 과연 행복할까? 가지면 더 가지고 싶은 것이 보통의 인간의 습성이다. 욕심이다. 모든 범죄의 이면엔 욕심이 있다. 어떤 가치를 가진 아이로 성장시킬지 무엇을 하고 싶은 아이가 될 것인지 나의 의견보다 그들, 인생의 주체인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생각하게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싶다.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짬날 때마다 공부해서 아들을 서울대에 보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꽤 감동받았다. 로또 확률보다 낮은 경우의 수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형편은 사교육 시장이 넘사벽이었을 거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 정도의 열정이면 아이들도 아버지의 고생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겠지. 그 영향으로 나도  공부를 한다. 책을 안 읽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아이들이 뒤늦게 깨달았을 때 내가 어느 정도 나침판이 되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방관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나라의 굴레안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그래서 이민가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시시때때로 꿈이 변하는 아이들에게 허황된 꿈이라는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응원하고 지지하고 가끔 내가 선생님이 되어 줄 것이다. 겁나 비장하다 암만. 비장해야지. 내 아이가 나때문에 맹자같은 인물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맹모까지는 아니지만 세 아이의 엄마니까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고민하는 엄마는 되어야지. 지금의 이 마음이 변할까 봐 글을 남겨둔다.


물질하는 해녀분들 by 열정아줌마 직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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