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에게 선물 받은 풍성한 꽃다발을 화병에 담아 식탁을 장식했다. 우리 집에 들어온 꽃은 처음 제공한 물을 겨우 빨아들이며 버티다 시들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코스를 밟는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살고부터 우리 집에 들어온 식물이 받는 대우가 크게 달라졌다. 작년 여름, 씨앗을 심어 달콤한 방울토마토를 수확해 큰 기쁨을 누렸던 남편은 매일 물을 갈아주며 꽃의 생명을 보살핀다.
저번 주말 밤, 귀가하여 자는 남편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거실에 들어서다 은은한 조명을 받고 빛나는 꽃을 보았다. 모양새가 달라져 살펴보니 남편이 시들어가던 꽃을 정리하고 나머지 싱싱한 꽃을 모아 정돈하여 화병에 꽂아 놓았다. 흡사 꽃꽂이를 했는데 ‘제법 손재주를 부려 놓았구나’ 생각했다. 삼시세끼 ‘배를 채우는 것’과 ‘미식을 즐기는 것’이 다르듯, ‘물만 갈아주는 것’과 ‘꽃을 정돈해 놓은 것’은 ‘의무만을 다하느냐, 과정을 즐기느냐’와 같은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 요즘 식물을 키우고 싶다며, 햇빛이 들지 않는 우리 오피스텔에 식물 생장용 LED등을 들이고자 하는 남편을 향해 과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나는 정돈된 꽃을 보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남편은 레몬 씨앗부터 열매까지 키워보고 싶단다. 매일매일 물갈이에 꽃꽂이까지 부지런히 해낸 당신이라면 할 수 있으니 LED등을 사서 뭐라도 키워보라 했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 하나가 낫다는 오래된 속담을 화병 하나로 되새기며 배우자를 설득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행동 하나임을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