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업무 시스템으로 일하는 내가 속한 집단의 1만여 명의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 겪었을 간담 서늘한 이야기가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야근이 있기 마련인데, 특히 도서관은 평일 저녁 8시까지 열어두고 있어 순번을 정해 야근하거나 주말 행사를 위해 출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퇴근 시, 평소라면 찍지 않아도 될 지문을 기기에 찍고 가야만 초과 근로 시간이 인정된다. 그런데 밤 늦은 시간 또는 황금 같은 주말, 부랴부랴 퇴근을 준비하다 보면 지문등록을 잊어버리고 가는 사태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식으로 유야무야 공짜 야근을 하기도 하고, 집에 가다 지문을 찍기 위해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너무 억울할 땐 cctv 퇴근 장면 캡처본과 퇴근 시간을 증명할 다른 직원의 서명을 얻고 상사의 결재를 받아 어렵게 근로 시간을 인정받기도 했다.
문제는 신입인 나만 이런 간담 서늘한 일을 겪는 게 아니란 것이다. 팀장님, 과장님, 부장님 할 것 없이 몇십 년의 경력 있는 베테랑 직원도 초과 근로 후 잊어버리고 집에 가다 지문 찍으러 다시 돌아온 썰을 다음 날이면 풀어내곤 하는데 그럼 주변 직원들의 폭풍 공감이 이어진다.
하다못해 소모임을 해도 누군가 한 명 스케줄 등록만 해주면 ‘톡비서’라는 녀석이 모임에 대한 알람을 카톡으로 날려주는데, 이런 대규모 집단에서 수많은 직원이 반복해 잊는 ‘지문 찍기’를 퇴근 5분 전, 알람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어떨까. 개인의 실수라기엔 그 빈도와 규모가 너무 크다.
무언가 개선하고자 할 때, 개인의 행태를 바꾸려 노력하기보다 개선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끔 구조를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지문 찍기’ 알람 하나면, 1만여 명의 직원이 공짜 야근하거나 가던 길을 되돌아오거나 근로 시간을 인정받기 위해 발을 동동거리는 간담 서늘한 일이 없을 텐데. 슬며시 문자 알람 코딩을 검색해 보기도 한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불가능한 일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