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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Dec 11. 2023

당신의 구체성

요즘 나에게 무슨 일에 열중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신을 생각하는 일이다. 

당신은 내 손을 잡고 나를 안아주었고, 여름이면 함께 여행을 갔고, 그러느라 아주 가까이 붙어 앉아 3시간이 넘는 드라이브를 함께 했고, 단지 나를 위해 몇 시간씩 요리를 해줬고,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부끄러워할 때까지 나를 자랑해주었지. 가끔은 수화기 너머로 서운한 목소리를 내비췄고, 많이 우울하다고 했으며, 울면서 내가 나쁘다고도 했었지 당신은. 그치만 동시에 당신이 나를 울리기도 했고 나의 엄마를 울리기도 했고, 나의 아빠를 울린 적은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이 모든게 내가 기억하는 당신이라는 사람의 구체성이고, 너무 구체적이라서 너무 슬픈 것이고, 내가 그리워 하는 것은 나를 안아주던 당신뿐만이 아니라 이 모든 당신들이다. 내가 당신 때문에 눈문을 흘리던 때에 나는 당신이 언젠가, 머지 않아 떠날 사람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잊곤 했으니까. 내가 후회하는 것은 그뿐이다. 내가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 사람이었다는 것. 얼만큼은 잊고 살아간다고 해서 그것이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쉽게 잊히는 만큼이나 쉽게 부활한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기어코 지나갔고 작년 이맘때쯤 나는 혼자 있는 거의 모든 순간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추측일 뿐 나는 벌써 1년 전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을 떠올리는 슬픔을 만끽할 수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작년 12월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면 지금 이토록 치열하게 당신을 생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몸이 알아서 어떤 기억들은 그 시간 속에 가두고 떠나오곤 한다. 무섭지 않을 만큼만 간직하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 무관했다고 믿고 싶지만 내 몸이 행동하는 바가 곧 나의 의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두렵지 않을 만큼은 간직했다. 오래 전 누군가는  사람을 애도하는 너까지도 애도하라 말했고, 나는 어쩌면 이제 그 문턱에 다다랗는지도 모른다. 나는 죄책감으로 나와 주변을 괴롭히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고, 대신에 당신과 공유했던 시간들이 나에게 얼마나 구체적인 것이었는가를 떠올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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