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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Oct 18. 2023

플라스틱 꽃

그곳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있는 것이 아직 나는 낯설고, 그들에게 꽂힌 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플라스틱 꽃을 볼 때면 내 마음이 그것들을 대신해서 시들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내가 여기 왔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여기에 있어요. 그러나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정작 그들은 여기에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여기 있음으로 내 마음에 그들이 방문한다면 그들이 여기에 있는 거라고도 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이런 무덤 같은 것도 있는 거고, 저 꽃들이 시들지 않게 만들어진 것도 그것에 잠시 머무른 사람들의 마음이 시들지 않길 바라서 일까.


그래도 난 당신들 맡에 생화를 꽂고 싶어. 당신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사실 자주 시들어. 그때마다 내 마음에는 플라스틱 말고 새로운 생화를 꽂을거야, 피었다 서서히 지고 완전히 져서는 결국 바스라지는 시간을 견디는 걸로 당신들과 함께 있을 거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당신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나와 아빠가 같이 지은 묘비명, 그가 떠난 다음 날 아빠는 나무가 묘비명을 지어줘,그렇게 말했고 울고 있지는 않았다. 그치만 나는 많이 울었고 아빠는 사실 더 많이 울었을 것이다.


열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아빠와 당신의 집에 갔어요. 나는 내가 잘 먹고 많이 웃어서, 그래서 내가 행복하면 당신들도 그걸로 행복해할거라는 비겁한 애도 같은 건 이제 할 수 없게 됐어요. 당신이 떠나기 아마 여섯 달 전 쯤이었을거야. 내가 당신에게 걸었던 전화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때 당신은 울고 있었고 나는 그걸 알 수 있었고 언제나 알았지만 모른 체 했어요. 병실에 누워서 내 손을 잡았을 때 당신은 나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요. 떠나는 사람은 남겨둔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것 쯤은 아니까요.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사람도 그래서 자주 외롭고 힘들다고 말하던 사람도 떠날 때는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는 구나, 그런 말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날 수는 없는 거구나, 사랑이 자주 거짓말인 것처럼 죽음도 거짓말이군요.


아빠는 혼자 여기에 오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어느날 갔더니 그곳에 고양이 가족이 살고 있었고 아빠는 가끔 가서 밥을 주기 시작했다. 나도 고양이 밥을 주겠다는 핑계로 아빠에게 나도 가고 싶어, 같이 갈래,했고 아빠는 뭐하러 거길 와, 굳이 안 그래도 돼, 너 바쁘잖아, 하루이틀 있다 올라갈거면서 그냥 집에서 쉬어, 친구랑 놀아,했고 아빠가 거듭해서 그렇게 말하면 나는 고양이가 보고 싶어, 고양이 밥주고 싶어 나도, 그냥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서, 할머니한테 미안해서, 할머니가 있을 때 못 가서,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빠가 울어버릴 테니까, 그것도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요즘 자주 너무 우울해, 가족 카톡방에 별 말을 하지 않던 아빠가 어느 한낮에 이런 카톡을 보내왔고 그때는 나도 그와 비슷한 마음일 때라 그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래서 광주 가고 싶다, 뭐 이런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후로 아빠는 많이 바빠졌다. 원래도 바빴는데 숨을 헐떡일 정도로 바빠졌다. 그 편이 좋다고 했다. 바쁜 일이 지나간 시간 전부를 술을 마셨고, 울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치만 나는 볼 수 있었다. 아빠는 나에게 만은 숨기지 않았다. 그 자신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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