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의 “시”를 뺏더라면

by 우리

키로 그램당 1만 3천 원하는 생굴을 넣은 김장 속 무채가 너무 맛있어서 밥 한 공기를 거뜬히 해치운다. 포만감으로 오랜만에 나른한 기분이 든다. 나도 김장이란 걸 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맞춤형 김장이란걸 친정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셨다. 김치냉장고를 가득 메운 김치통들이 따듯한 위안이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친정 가게에서 김장했다. 가게 한편 넓은 곳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대규모 김장을 했다. 그리고 각각 제 몫을 찾아갔다. 배춧국을 끓이고 수육을 삶았으며 절임 배추 가장 안쪽 고운 빛깔의 작은 배춧잎을 뜯어내고는 그 위에 무채 속을 얹어서 입술 주변이 빨갛게 되도록 달게 먹었었다. 고역으로 힘이 들지만 웃음이 있고 먹거리가 있던 겨울의 한 풍경이다.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1월 말 가게를 정리하면서 김장을 할 만한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어머니께서 걱정을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들수록 느는 게 걱정이었는데 딸네의 김장걱정이 더해진 것이다. 늘 바쁜 딸로 기억하시는 어머니는 김장을 못 해줘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큰 며느리는 친정에 가서 김장해오겠다고 하고, 살림 잘하는 작은 며느리는 제 집에서 직접 하겠다고 하니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고 대견스러우시면서도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으셨던 이유는 그 누구에게서도 ‘고모 걱정일랑은 하지 마세요. 조금 더 해서 나누면 되지요.’라는 말을 듣지 못해서였을 게다. 시누이의 “시”를 뺐더라도 그랬을까? 이럴 땐 자매가 부럽다.


자존심이 유독 강한 어머니는 직접 나서기로 작정하셨다. 구부정한 허리에 무릎도 성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좋으면 실버카를 밀고 재래시장을 돌며 배추를 눈여겨보셨다. 마음에 드는 속이 실한 배추라도 발견한 날이면 반가운 마음에 사서는 실버카에 넣어 운반하셨다. 양이 너무 적은가 싶어 다른 날 시장으로 가서는 운반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을 더 사들였고 또 그렇게 날랐다. 고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딸을 위한 마음이 커서였을 것이다. 배춧 속을 버무릴 무채를 썰고, 쪽파를 다듬어 씻고, 풀을 쑤는가 하면, 싱싱한 굴을 준비하여 씻고 마늘과 생강을 찧어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놓으신다. 계획이라는 것을 하고 그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성취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분이시다.

오직 나만을 위한 김장이었다. 86세의 노모가 60이 낼모레인 딸을 위해 약 2주간에 걸친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으신 거다. 특히 절임 배추를 사면 일이 한층 줄었을 테지만, 생배추를 밤새 절이고 씻어서 물기를 빼는 데만도 엄청난 힘을 쏟으신 줄을 안다. 앞마당이 있는 옆집까지 오가며 했을 그 수고로움이 더욱 감사한 이유다.

배추 9포기, 총각김치 2단은 우리 4인 가족이 겨우내 먹게 될 김장 김치다. 어머니께 3십만 원을 봉투에 넣어 드렸다. 마다하지 않으셔서 다행이다. 속으로는 그냥 사서 먹는 게 나을 뻔했다고,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고 툴툴대지만, 인정한다. 이 세상에 나를 염려하고 나만을 위해 김장을 직접 해주시는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이 이 겨울을 춥지 않게 하고 미소 짓게 하는 일임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11월 중순, 4인 가족 20포기를 기준으로 할 때 김장비용이 19만 3,106원이라고 한다. 시세보다 많은 돈이지만, 돈의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어머니께서 준비해 놓으신 재료들을 양손 걷어 붙이고 버무리면서 생전 처음 김장을 제대로 경험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움직여서인지 2~3일 통증을 느껴야 했지만, 고통과 함께 어머니의 애쓰심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감사함도 잊지 않는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받기만 하고 살아왔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신 그 사랑을 나 역시 말보다는 행동으로 묵묵히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늦가을 배추나 무 등으로 겨우내 먹을 김치를 준비하는 일처럼, 앞일을 대비하는 계획하는 삶을 본받는다. 어머니께서 몸소 전해주신 삶의 지혜를 통해, 나 또한 존경받는 어른의 모습으로 일신우일신 하고 싶다.


오직 나만을 위한 친정어머니의 김장 김치에 대한 감동은 앞으로도 주욱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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