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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드라마 Aug 18. 2021

내가 도슨트를 그만둔 이유

트라우마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도슨트]
;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두산백과)



나는 프리랜서 도슨트였다. 정확히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해가 바뀌고 계약 기간이 종료된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짐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 도슨트는 없다'고.




중국 우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집단 발병했다는 뉴스가 국내에 보도되기 시작하던 19년도 12월 무렵,

나는 모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에서 전시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국내엔 해당 병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었고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여타 전염병이 그러했듯,

'이 또한 (나와 상관없이) 지나가리라' 정도의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마이크를 들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것이 나와 당신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사건이 될 줄은 이땐 전혀 알지 못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국내 첫 환자 발생이 보도된 2020년 1월에 들어선 무렵.

원인 불명 폐렴의 전파 가능성이 국내로 번지기 시작하며 전시장에서도 이따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당시는 마스크 착용이 권고 수준에 불과했던 다소 평화로운 시절.

그때의 나는 마스크가 영 불편하기도 했고, 한 시간 동안 숨 쉴 틈 조차 아껴가며 입을 놀려야만 했기에 마지막 해설까지 마스크 없는 얼굴로 관람객들을 마주했다. (일일 평균 확진자가 1000명을 훨씬 웃도는 작금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범한 행동+현재 기준 방역법 위반은 덤.)

2월이 되어 전시는 종료되었으나,

감사하게도 직원분들께서 나를 좋게 봐주신 덕분에 3월부터 다시 같은 미술관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두 번째 첫 출근 이후,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기존의 전시 오픈 일정이 미뤄지다 우여곡절 끝에 오픈을 마쳤지만 도슨트는 잠정 중단키로.

그렇게 해설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조용히 전시장만 지키고 있던 나날이 켜켜이 쌓여갈 무렵,

확진자 추이가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자 큐레이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S씨, 다음 주부터 도슨트 진행해 보려는데 괜찮을 것 같으세요?"

(이 문장은 이후 형태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매 전시 때마다 듣게 되는 코시국 단골 멘트가 되었다.)


5년 남짓한 시간 동안 프리랜서 도슨트로 일하면서 정말 많은 변수들을 겪었었지만, 당장 내 일상까지 쥐고 흔드는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곤 개미 더듬이만큼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긴, 누군들 있었겠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의견이라도 피력해 보았을 터,

그러나 정말이지 너도 나도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이딴 시국'이라니.

내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전염병 창궐 시 도슨트 운영 매뉴얼'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엔 그저 강가에 떠내려가는 나약한 이파리처럼 "하세요." 하면 "넵",

"위험할 것 같으니 중단합시다." 하면 또 "넵!"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뿐이었다.


대답 하나는 잘하는 '넵'봇, 그게 바로 저예요.


전부터 계속해서 시기만 미뤄져 왔던 터라 어느 정도 해설 준비는 다 끝난 상태였다.

구체적인 일정이 수립되자 복습하는 의미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시연 준비를 하다 잠드는 나날이 반복되고.

D-day 아침, 난생처음으로 마스크를 쓴 채 큐레이터님들과 리허설을 시작.. 했는... 데..


헉.

뭐지??

숨이 안 쉬어진다.


호흡이 달리니 심장에 급박한 펌프질이 시작됐고, 이는 곧 목소리에서 티가 나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염소보다 심하게 달달 떠는소리로 설명을 이어가다가 안 되겠다 싶어 '코스크(코를 드러내 놓고 마스크를 쓰는 것)'도 해보고, 아뿔싸. 어차피 비염 때문에 내 코는 뚫려 있으나 마나지. 곧장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채 반쯤 패닉 상태로 시연을 마무리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리허설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야 '왜 집에서 연습할 때 마스크를 쓰고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뒤늦게 몰아쳤다. 한 번 연습이라도 해봤더라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았을 걸.

당장 한두 시간 뒤에 있을 첫 정식 도슨트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실로 오랜만의 시연이라 평소보다 심하게 떨었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곤 적어도 나에게 청심환보다 잘 먹히는 마인드 컨트롤 가동.


'5년째 말재간으로 밥 벌어먹으면서 살고 있잖아.

나는 프로다. 나는 프로.. 고프로(?)...'

.

.

.


얼마나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인지.

일주일, 한 달도 눈 감았다 뜨면 스쳐 지나가 있는 요즘인데 하물며 고작 한두 시간쯤이야.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들 앞에 서서 마이크에 대고 막 인사말을 내뱉는 참이었다.


목소리 증폭 장치는 죄가 없다.


"2020 xx전시를 찾아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xx미술관의 전시 해설을 담당하고 있는 도슨트 솨솨솨입니다. (꾸벅)...

이 해설은 약 40분 정도 진행될 예정이며..."

.

.

.

"xx작가의 작품을 보실 때는 먼저 캔버스에 묘사된 인물상에 주목을.. 허억.."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애써 다스렸던 마음은 채 3분도 가지 못했다.

마스크 안에 갇혀버린 숨은 이내 끈적하게 달라붙어 호흡을 방해했고, 그런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 번 느껴지기 시작한 무지근한 열기는 식은땀을 재촉하며 머리를 핑- 돌게 했다.


'아까는 직원분들 앞이었으니까 마스크를 내려도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그래도 관람객분들 앞인데..'


죽을 것 같아도 마스크는 쓰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 탓인지 리허설 때보다 증상이 훨씬 더 심해진 것이다.

숨이 막혔고, 그로 인해 심장 박동수가 미친 듯 널뛰었으며, 태어나서 이만큼 떨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목소리와 손이 덜덜덜 떨렸고, 마이크를 타고 퍼져 나간 진동모드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내 귀로 되돌아와 차마 내가 나임을 부정하고 싶었으며, 옷차림이 한결 가벼워진 4월 중순이었음에도 갑자기 한여름의 땡볕 아래 내던져진 것처럼 식은땀이 흘렀고, 그런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져 다리에 힘이 풀렸고..

급기야 시야가 하얗게 꺼지면서 방금 전까지 눈앞에 놓여있던 풍경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아마 조금 더 버텼더라면 200퍼센트의 확률로 그 자리에서 거품 물고 기절해버렸을 것이다.

전시 해설을 듣기 위해 모인 분들 앞에서 완벽한 태도는 고사할지언정 기절이라니?

난 지금까지 해설만 족히 몇 백 번도 넘게 진행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곧장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 끝을 붙잡은 채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해설을 하는 게 오늘이 처음이라 익숙지 않은지 굉장히... 숨이 차네요.

이대로는 원활한 진행을 못 할 것 같아서 마스크를 살짝만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이크 볼륨을 조금 더 높일 테니 저와 거리를 두고 들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 와중에 위로가 된, 날 안쓰럽게 바라보던 눈빛들


숨이 쉬어지고 말고는 내 사정일 뿐인데 초장부터 자기변호 범벅이라니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당시 자책감이 얼마나 엄청났었는지는 지금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설 내내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삼킨 채 어떻게든 버티어 냈다는 사실 하나.

그 막연한 공포감에 잠식당해 마냥 도망가고만 싶었던 몸뚱아리를 이 악물고 끌고 간 사실, 그것 하나.


이후로 어찌어찌 해설을 마무리 짓기는 하였으나 무슨 정신으로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마치 누가 내 머릿속에 들어가 그 부분만 통째로 도려낸 것 같은, 빠르고 완전하게 잊혀진 기억.

아마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으로 곱씹다 견디지 못한 뇌가 스스로 덜어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동치던 심장과 한없이 떨리던 목소리, 후텁지근하던 전시실의 공기, 식은땀이 흐르다 못해 따갑게까지 느껴지던 피부, 순간 하얗게 바랬던 시야, 그대로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힘이 풀려버린 다리, 그 압박감...

왜인지 모르게 이런 느낌들만은 더욱 또렷이 남아 이후에도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조금이라도 쉽게 호흡해보려 이것저것 마스크 종류를 바꿔도 보고,

식은땀이라도 막아보고자 일부러 추울 정도로 옷을 얇게도 입어보고,

떨림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아침마다 습관처럼 내려 마시던 미술관 커피도 끊어보고,

다시는 호흡곤란을 겪지 않기 위해 천천히 말하며 더 많은 숨을 마시고 내뱉어보고,

다음 전시가 되어 공간의 풍경이라도 변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수없이 되뇌어보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처음보다 조금 나아지는 정도에 그쳤을 뿐, 더 이상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리곤 이것이 '트라우마'라는 것임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트라우마', '불안장애'.. 모두 남 얘기인 줄로만 알았지.


상기에 기술했던 '사건'이 내게 일어나기 전엔 미처 타인의 그 고충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 적잖은 방송인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과도 같은 무대에 공포심을 느껴 활동을 중단한다는 것인지.

왜 멀쩡히 출근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불안감을 느껴 지각도 감수하고 아무 지하철역에서 내렸단 것인지..

너무나 바보 같게도, 나는 이전까지 '어차피 심리적인 문제니까 정신력으로 이겨내면 되지 않?'와 같은 멍청한 생각 따위를 하며 오징어 다리나 질겅질겅 씹어댔더랬다.


5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침샘이 바싹 마르도록 작가를, 작품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해 왔던가. 내일은 어떤 내용을 덜고 어떤 내용을 더할 것인지 머릿속에 떠올리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그 설렘에 쉬이 잠 못 이룬 밤은 또 얼마였던지.

크고 작은 떨림은 항상 함께했기에 다음 타임 들어가기 싫다고 징징대다가도, 막상 박수를 받으면 '나 지금 살아있구나!'라고 느끼며 또다시 존재의 이유를 찾아 다음 전시를 준비하던 나날들.

하지만 너무도 익숙하던 공간에서 겪게 된 단 한 번의 트라우마는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아직도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의욕의 날개를 족족 꺾어버리고 만다.


그 일이 있고 어느 날, 나는 문득 해설에 들어가기 전마다 곱씹어왔던 목표가 이상하게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완벽하게, 재미있게, 이해하기 쉽게 오늘도 잘해보자'였던 내 초심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라는 같잖은 다짐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투어 직전마다 화장실 구석에 들어가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를 드렸더랬지.

'제발, 오늘은 숨 잘 쉴 수 있게 해 주세요. 이제 그럴 때도 됐잖아요.'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생각했다.



아, 이제 그만 해야겠구나.






어느덧, 도슨트로서 마지막 근무를 한 지도 반년이 훌쩍 더 지났다.

지금 와서 그때를 떠올리면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다가도, 바로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다.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를 원망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애초에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일임을.

어떠한 형태로든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음을.

그냥, 내 길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때로,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커다란 벽이 눈앞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을 마주한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한낱 '인간'에 불과한지, 지독히도 잔인하게 깨우치는 순간을.

이기기 위해 맞서 싸우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이고,

설령 지는 한이 있더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 다른 길을 개척하러 떠나는 것 또한 용기이다.


하나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다.

삶의 여정에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존재하고,

벽 너머가 아닌 당장 뒤를 돌면 보이는, 지금까지 걸어왔던 풍경을 즐기며 잠시 쉬어가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기에.

그리고 나 역시 지금껏 걸어왔던 풍경을 가슴에 품어두고 전혀 가보지 않은 막다른 길을 걸어가려 하는 중이다.

누가 알겠어?

운명이라 생각했던 길에 차이고 눈물 콧물 짜며 억지로 걸어간 막다른 길이 오히려 레드카펫을 깔아 둔 채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여기까지가, 다소 어이없게도 얇디얇은 마스크 한 장에서 시작된

내가 도슨트를 그만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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