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의 직원이 아님을 감사해
직장인 오딧세이
명태조 주원장 (朱元璋)
긴 중국 역사에서도 이런 벼락출세를 한 사람은 드물었다. 도적에서 왕조를 개창한 황제까지.
나라든 회사든 창업주에게는 보통 특별한 것이 있을 텐데 그에게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는 다양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나는 그의 숙청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는 숙청으로 수 만 명의 사람을 죽였는데 수많은 역사 속의 사례를 살펴보면 왕조 개창 후 국가 안정, 권위 확보 등 다양한 이유로 개국 공신들을 줄퇴사... 아니 줄 세워서 저승으로 보내버린 사람들이 참 많았으니 한 마디로 평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남자, 숫자도 숫자지만 정말 클라쓰가 뭔가 다르다.
1375년, 주원장은 매번 수천 자의 상소문을 올리는 여태소(茹太素)라는 관리가 새로 올린 16,500자의 상소문을 읽다 짜증이 폭발하여 글이 난잡하다며 여태소를 손수 두들겨 팼다.
본문은 고작 500자인데, 찬양이 너무 많다고, 본인 찬양을 읽다 지친 나머지 신나게 팼다는 소문도 있다. 손수 때리기도 하고 굳이 굳이 꼭 행차해서 직접 고문하는 장면을 구경도 하며 사람을 줄기차게 죽여대니
조정의 관리들이 매일 아침 입궐할 때 처자식과 눈물로 이별을 고하고, 저녁에 무사히 돌아오면 다시 서로 기뻐하며, 이로써 또 하루를 살았다고 하였다.
섭자기 葉子奇 의 『초목자 草木子』
이쯤이면 적당히 노부모님이나 와병을 핑계로 퇴사하면 되지 않나? 하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우리 현대 직장인과 달리 퇴사 시 까딱 잘못하면 삼족이 멸해질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은 하되 좀 쉬엄쉬엄 우리들처럼 핸드폰도 좀 보다가, 인터넷 쇼핑도 좀 하다가 그렇게 눈치껏 잘 시간을 보내면 될 것 같은데 그랬다가는..
궁중에 태형용 몽둥이를 준비해놓았다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저지르면 공개적으로 체벌을 가했는데, 때로는 태형이 심하여 학자와 관리들이 장을 맞다가 죽기도 했다. <명사(明史)> 형법지에 "정장(政杖)이란 형벌은 태조 주원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정장(政杖) : 궁중에서 공개적으로 태형을 가하던 형벌
『 황제들의 중국사 』 돌베개 2005년
아예 궁중 공개 태형의 원조가 주원장이니 원조 몽둥이 찜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만둘 수도, 일을 안 할 수도 없었던 명나라 직원들은 주원장만 그랬다기엔 아들 영락제는 십족을 멸하는 (삼족 아님) 형벌을 개창한 남자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황제가 죽을 때까지 버티는 것도 의미가 없었을 듯하다. 당시 담배가 있었으면 쓸쓸한 눈빛으로 담배나 뻑뻑 피워대지 않았을까.
꿈도 희망도 없는 그들을 가여워 하며 그리고 내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고 되뇌며,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직장인들의 업무 환경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굳이 수백년 전 중국이나 남녀노소 구분이 없던 산업혁명기 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강인한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던 80~90 년대의 무자비한 회사 문화를 보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래도 회사는 가는 거다. 『KBS 광주』
그러나 시간이 지나길 길게 기다릴 것도 없이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네 사무실의 흔한 폭군들은 주원장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때로는 회식 같은 거 참석 안 해도, 부당한 일을 언급 해도, 불금이니 일퇴 해도, 회의 중에 정장(政杖)을 맞거나 십족이 멸해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니 오늘 난 네 시에 사무실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