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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ene Nov 21. 2021

삶은 모순이다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그럴 수 있지-

몇 년 전부터 입버릇처럼 쓰는 문장이다. 세 개의 단어로 감히 판단하고 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할 수 있다, 인생은 수학 문제 풀이가 아니기에. 모든 걸 이해해야만 한다는 오만을 막으려는 의미이자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질 수 없음을 인정하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은 모순적인 감정만을 안겨주며 끝났다.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불행한, 주인공 안진진의 엄마는 그 불행을 원동력으로 삼아 삶에 끈질기게 매달리고 악착같이 살아낸다. 안진진 엄마와 쌍둥이지만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부유하게 모든 걸 가지고 화려하게 살아가던 안진진의 이모는 껍데기의 삶을 버티지 못하고 자살로 삶을 끝낸다. 안진진에게 직진하며 인생의 모든 사항을 체크리스트처럼 계획하던 남자 나영규, 그리고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순수한 청년이자 안진진에게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하는 청년 김장우. 안진진은 김장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자신의 부모와 동일한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가족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유와 구속 사이에서 방황하고 집을 나가버린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며 결국 나영규를 택한다. 치밀하게 짜인 구성과 점진적으로 변하는 등장인물에 대한 시선에 놀라면서도 책을 덮은 뒤 절실함과 체념, 끈질김과 허무함이 맴돌았다.


어떤 이의 시선에서는 말이 안 되는 선택일지라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지라도 이 책의 내용은 그 누구보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작가는 동화처럼 잘 짜인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황금빛 희망을 심어주기를 철저하게 거부한다. 인간이라면 삶에서 누구나 맞닥뜨리는 수없이 많은, 미묘한 갈등과 삶의 기로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삶에 이렇게나 모순덩어리이고 삶은 원래 이런 것임을.

삶에 옳고 그름은 없다. 오직 선택만이 있을 뿐. 
삶엔 온전한 희극도, 온전한 비극도 없다. 

이를 인지한 이후에야 비로소 색안경을 벗고 등장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몇십 년 만에 치매에 걸린 채로 돌아온 남편을 돌봐주며 삶을 놓지 않으려는 안진진 엄마의 절박함을.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이자 지루한 인생으로부터의 해방이었을 안진진 이모를. 사랑이 아니라 유사 사랑일지라도 더 안전한 기로를 택한 안진진을. 끝없는 모순으로부터 온전한 이해는 시작된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우리가 삶에 대해 깊이 빠져들어 살아야 하는 이유다. 안진진이 어느 날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며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하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어떤 책이든 우리에게 삶의 해답을 알려줄 순 없겠지만 색안경 없이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더 충실히 임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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