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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27. 2021

그는 휴가중이야

[그림]빈센트 반 고흐, 낮잠(휴식, 노동)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고흐가 그려낸 휴식입니다. 노동하는 중간에 잠시 가지는 낮잠만큼 꿀맛 같은 휴식은 없겠죠? 사실 지금이야 유럽이 참 복지가 좋고, 휴식권이 보장된 지역이긴 하지만, 고흐가 그려낸 이 그림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긴 합니다마는 기왕 네덜란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휴식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꺼내보겠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근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는 구독 중이던 지역일간지 칼럼 코너 하나를 즐겨보았다고 합니다. 더치어(네덜란드의 언어)를 처음 배우는데 쉽게 지역소식을 설명해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해당 칼럼 부분이 백지 처리가 됐고, 3일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신문 지면에서 백지 영역을 본다는 것은 독재에 의한 검열이나, 탄압에 대한 저항의 기록이었고 그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는 21세기 선진국 네덜란드에서 이게 뭔가 하는 마음에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짧은 더치어 실력으로 이 코너가 며칠째 백지로 나오고 있는지 이유를 물었고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고 합니다.     

“Hij is op vakantie.(그는 휴가 중이야.)”     

Pieter_Brueghel_the_Elder_-_The_Dutch_Proverbs_-_Google_Art_Project

대한민국 휴가는 7월 말과 8월 초에 대부분 몰려 있죠. 대부분 공기업과 대기업이 그 시기 휴가를 시행하기 때문에, 협력업체 역시 그 시기에 휴가를 시행할 수밖에 없죠. 이뿐인가요. 가족 중 누군가 여기 속해 있다면, 휴가도 그에 맞춰질 수밖에 없죠. 휴가 시기조차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변호사나 법무사 역시 법원 휴정 기간에 맞추어 일제히 휴가를 시행한다고 하니, 휴식의 자유로운 선택도 어려운 나라입니다.     

시기의 문제도 문제지만, 노동자 한 사람이 휴가를 가면 그의 일은 다른 노동자의 업무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게 어려운 직종은 미리 야근을 불사하며 업무를 당겨 처리하고 휴가를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무사히 휴가를 떠났다고 끝은 아닙니다. 휴가지에서도 끊임없는 카톡 과 이메일 업무 처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슬픈 상황이 이어지죠. 하.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도 가고, 취업도 한다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죠.      

대한민국 노동자 중에서 늘 하던 대로 일을 하고 휴가를 다녀오고, 휴가 중에 전달받은 이메일이나 카톡 업무 지시를 무시할 수 있는 용감한 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노동자가 아니라, 이 상황이 이상하지 않거나 오히려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문화인거죠.     

대한민국은 대표적인 장시간 노동 국가라고 합니다. 2017년 기준 OECD 가입국 가운데 노동시간이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다음입니다. 다행히 노동시간이 조금씩은 줄어들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아직도 논란이고 노동현장에서는 골칫덩어리라고 합니다. 노동자의 휴식에 대한 인색한 사회적 인식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를 제대로 대우하지도 않고 노동을 천시하는 문화이면서 휴식을 요구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가혹한 문화도 개선되기 힘들어 보입니다.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팔자 좋고 생각 없는 투쟁으로까지 치부하니까요.     

노동할 수 있는 권리와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발맞추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전한 휴식 후에 제대로 된 노동이 가능할 수 있으니까요. 노동시간이 세 번째로 짧았던 노르웨이의 노동생산성은 한국의 두 배 이상이라는 통계를 보면 제대로 된 휴식 보장이 실질적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면 휴식할 수 있는 권리도 노동자 스스로 죄책감 없이 주장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 역시 노동자의 휴식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와 인식기반을 마련해야 하겠죠. 조화되지 않은 권리는 권리가 아닌 의무로 다가올 뿐이니까요.     

1948년에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 제24조에서도 휴식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해 놓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에는 노동시간을 적절한 수준으로 제한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세계인권선언이 70살이 훨씬 넘었는데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온전한 휴식할 수 있는 권리는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삶이 노동에 예속되지 않는 인생을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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