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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Feb 07. 2024

전쟁이 그어버린 평화의 선

[도시] 루코바, 체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서쪽에 위치한 주민이라고는 800명이 채 안되는 루코바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이 작고 조용한 마을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한 교회 때문이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다 쓰러져갈 것 같은 낡은 교회인 성 게오르그 교회(St.George Church)는 1352년에 축성되었습니다. 교회가 만들어진 이후 이유를 할 수 없는 화재가 여러번 일어나기도 하고, 1968년 한 신도의 장례식 도중에는 갑자기 지붕이 내려앉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는 폐허가 되었고 그 누구도 돌보지 않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폐허가 된 장소가 그러하듯이 저주받은 곳, 유령이 나오는 곳 이라는 소문을 가지며 더더욱 교회는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이 마을에 거주하던 한 예술가가 교회를 설치예술의 장소로 탈바꿈 시켜버립니다. 

예술 작품은 석고로 만들어 놓은 32개의 유령이었습니다. 석고상 위에 흰천 까지 씌워놓고, 미사를 보듯이 의자에 앉혀 놓아서 언뜻보면 정말 유령이 기도를 드리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이 유령 작품을 단순히 폐허가 된 귀신의 집에 두는 괴기스러운 장식같아 보였지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이 교회가 위치한 루코바(Lukova)지역은 14세기부터 형성된 곳입니다. 지금도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루코바 지역은 특히나 독일과 가까이 위치해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17세기 경에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기도 해서 독일인들이 꽤 많이 이주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주해서 체코에 정착한 독일인들을 쥬데텐이라고 부릅니다.

(참조 : 루코바 시청 홈페이지https://www.lukova.cz/o-obci/historie-lukove)

 

사실 체코공화국이 체코슬로바키아이던 시절, 아니 그 이전 신성로마제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도 독일계 민족들의 이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경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늘은 체코 사람이었다가 내일은 독일사람, 다음날은 오스트리아 사람이기도 했었으니까요.  20세기 초반만해도 체코슬로바키아 인구 1300만명중 300만명 가까이가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 독일인이 어울려 사는 곳이었습니다. 

국경의 개념이 크게 없던 시절이니 민족성이라고 해봤자, 어느 동네 사람 혹은 누구네 가문 사람 정도였을 것입니다. 

 해가뜨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고 이웃과 큰 분쟁없이 살아가던, 게르만족이냐, 슬라브족이냐 하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가 아닌 모든 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1938년 체코공화국이 뮌헨협정으로 헝가리와 독일, 폴란드에 의해 분할점령되면서 더 많은 독일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되고 권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기존 체코인들과의 갈등은 시작됩니다. 1940년대 이후 나치의 잔혹함이 전 유럽을 뒤덮으면서 체코슬로바키아인에 대한 나치의  학살이 시작됩니다. 

남성들은 총살당했고, 여성들과 아이들은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몇몇  마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인명피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내에서는 독일개신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체코의 주종교였던  정교회성당은 폐쇄되었으며 사제들은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순교합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체코는 체코슬로바키아 내의 모든 독일인의 추방을 결정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모든 독일인들이 체코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쥬데텐 중에서는 신성로마제국 시대부터 수백년간을 체코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 아마  일부는 나치의 깃발을 꺼내 걸었기도 하겠지만, 아마 하루하루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그 이상이나 이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마치 한국전쟁 중에 아침 저녁으로 바뀌는 국군과 인민군에게 저항했던 이념이나 정치따위는 관심도 애초에 없었던 무고한 한국시민들처럼 말입니다. 


독일을 떠나지 못한 쥬데텐들에 대한 체코인 아니 체코정부에 의한 복수와 증오는 폭력과 함께였습니다.  오스트리아로 강제이주를 시키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브르노 죽음의 행진, Brno death March). 그 외에도 독일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도시에서는 무분별한 학살이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3만여명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체코의 불안정한 정치상황 역시 독일계 주민에 대한 체코인들의 증오를 방치하게 되면서 더욱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루코바 역시 이 증오의 학살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독일계 주민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에서 이웃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루코바의 낡은 교회에 있는 석고상들은 그 수많은 쥬데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입니다. 무섭고 으스스한 대상은 유령같은 그 석고상이 아닙니다. 증오가  불러온 증오로  같은 마을에서 지붕을  나란히 맞대고  함께 생활했던  이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다음날은 학살하고, 다음날은 다른 학살이 자행되게 되는 상황이 공포입니다.

 평화가 사라지는 순간은 이렇게 허망하게 찾아와서 허망하게 끝이나버립니다.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전제가 되어야  하는 가치가 평화롭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요? 그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거나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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