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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숙 Apr 21. 2022

술의 세계

영조의 금주령과 정조의 불취무귀의 딜레마

불취무귀(不醉無歸):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말은  과거에 급제한 성균관 유생들을 실컷 취하게 한 후 덕을 시험해 보겠다는 정조의 술과 관련한 고사에서 나온 말



   조선시대 이전의 기록에도,  이후의 기록에도 금주령은 등장하고 영조 임금은 12년에 걸쳐 지속한 도 있을 만큼 금주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종묘 제사에 쓰는 술 때문에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제재를  하지 못하자  감주(예주)를 쓰는 것으로 하고 백성들에게도  금주령을 내려  어긴  사람에게 강력한 벌을 내린다.  음주의 폐해에서 나온 결정이기도 하고, 홍수나  가뭄 등으로 오는 곡물의 품귀 현상에 대한 염려에서 온 것이기도 했다. 12년의 금주 기간이었으면  마시던 사람도 술맛을 잊어버릴 만한 긴 시간이었지만 숨어서 마시는 사람도, 불법으로 제조한 사람도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술을 이어올 수 있었기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음주가무의 역사는 단절된 적이 없었던 것이리라.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 시절에도 곡물을 아끼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허가 없이 집에서 술을 담그는 밀주가 금지된 적이 있었다. 별로 범법을 저지를 만한 배짱도 담력도 없었던 우리 가족인데 쉬쉬하며 불법적인 일을 협력하여 했던 일중  유일한 것이 동동주라는 밀주를 담근 일이다. 마을 사람들 모르게 해도 누룩과 함께 발효되는 시큼한 냄새의 주범은 동동주로 스멀스멀 온 집안을 감싸는 공기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강했다.  신고한다면 벌금을 물고 법률적인 책임을 지는 일을 굳이 했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드는 그 일을 우리 어머니는 반주를 드시는 아버지를 위해서 허리 굽으신 연세가 되도록 하셨었다.  소주, 맥주, 양주는  마다하시고   식탁에  동동주를  올려 반주를 드시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우리 4남매는 신기하게도 술에  관심 없어했다.  집에서 가족끼리 같이 술을 마셔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새 식구로 사위나 며느리가 들어오면 그런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관계가 쉽게 풀어지기가  어려운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술에 관해서 복병이 우리 아이들이었다. 술과 아이들과 연결도 안 시키고 있을  때 남매 둘이 한 해에 동시에 대학에 들어갔다. 무슨 대학의 젊은이들의 술 문화가 그랬는지 둘이 순서를 바꾸어 술을 마신 채 들어오니  당황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취한 사람만 봐도 놀라고 그 모습이 싫어서 피 정도였는데 자식이 내 앞에서 보인  술 취한 모습은 낯설어서 피하고 싶었다. 고통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면 맞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만큼 싫었다는 얘기다.  술은 먹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안정을 주는지는 모르지만 여러 가지로 사람을 망가뜨리는 기능은 탁월한 것 같다. 건강도, 인격도 좌지우지하는 술의 위력을 보면서 영조의 금주령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조의 불취무귀도 인간 판단의 잣대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술에 의해 벌어지는 많은 부정적인 폐해 말고도 물론 좋은 점도 많을 것이다. 심리적인 이완에서 오는 융통성, 관대함, 여유로움, 낭만까지...


  젊은 시절, 직장 생활할 때나, 시댁 식구들과의 모임에서  술을 안 마시는 것을 고수하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술잔을 누구도 나에게 건네지 않는다. 코로나의 창궐 이후에는 그런 문화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하다 보니 내게 술은 인연이 아주 멀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술도 안 마시는 내 삶이 너무 재미없게 느껴진다 하기도 하지만 굳이 술 마시는 습관이나 기호를 이 나이에 길들이고 싶지도 않다.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조차 모르겠고, 기분이 얼마큼 좋아지는 지도 알 수 없기에 그냥 이제까지처럼  안 마시고도 마신 듯이 즐겁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낙천적으로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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