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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숙 Aug 12. 2022

우당 이회영 선생님을  생각한다

통인동 128번지 낭독음악극을 본 후



   평생을 부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 일제강점기하에서 지금의 약 3조 원에 해당하는  재력가였던 우당 이회영 선생님을 헤아리는 일은 어쩌면 불가한 일일 수도 있다. 내가 부자였다면을 전제해서 말할 때는 가능하지 않기에 책임감 없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돈이 많아서 책임감 있게 말할 자리라면 거의 누구라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미래를 담보하지 않고 전재산을 내놓는다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다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결정이  위험부담이 큰 것이다.  아마 그 누구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부자를 표현할 때, 자린고비나 놀부나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이 거의 대부분이다. 경주 최 씨나, 이회영  선생님 가문을 예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야기하는 정도다. 경주 최 씨 가문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많이 내놓았던  도덕적 의무를 행했던 가문은 맞지만 자신들이 누릴 것은 유지하면서 선행을 했던 가문이다. 그 일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당 이회영 선생님과 형제들은 일제강점기하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들의 전재산을 일본인이 눈치 못 채게 헐값에 팔기까지  하면서  처분했다. 만주에 가서 신흥 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지사들의 뒷바라지에 화수분처럼 돈을 쓰다 보니 세월 속에서 막상 자식들의 끼니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곤궁해지기에 이르렀다. 마지막에는 두 딸을 빈민 구제기관에 맡길 지경이 된 그 상황에 나는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구를 위한 일이었는지, 그 일은 꼭 그렇게 했어야 하는지 마음속에서 절규하는 내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그 시대 그 재산과 돈, 사회적인 지위였다면 대대손손 대접받으며,  조선의 제일 명문가로서  좋은 집에서 평생 좋은 음식만 먹고 살아도 남았을 가문에서 태어난 자손들이었는데   삼순구식을 하고 자기 자식을 자기 손으로 키우지도 못하기에 이르렀다니  정말 범인의 결심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희생과 헌신에 대한 답은 분명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어떤 것으로 값할 수 있을 것인가,


   그분들의 그런 노력 덕분에  광복도 이루고, 지금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고마워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분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책임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또 그들을 우리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 물론 그분들의 의지로 선택해서 하신 것이지 누군가 강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배제하고 오롯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들의 것을 전부 내놓고 한 일이다. 그분들의 후손이 그런 부모님 때문에 불행하거나 궁핍한 삶을 살게 하는 나라는 어떤 면으로 봐도 바람직한 나라가 아니다.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해도 빈손인 채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집착하고 소유하는 범인들의 삶이지만  이회영 선생님과 형제들의 숭고한 뜻과 실천은 깊게 마음에 새기고 싶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숭고한 뜻을 지녔던 분들을 가슴에 기억하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그분들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으로라도 행복을 언제나 빌어 주고 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한 줌의 흙으로  이 세상을 떠난 분이지만, 그 정신만큼은 하늘에서 오늘도 혁혁하게 빛날 고  우당 이회영 선생님을 생각한다.


우당  이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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