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해질 때가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자아와 태도가 때때로 존중받지 못할 때.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아, 비난을 받을 때.
부푼 꿈과 건강한 생각들로 부풀려놓은 나의 자아는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누군가 긴 바늘로 '펑-!' 나의 풍선을 터뜨려버린다.
힘이 없어 그렇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아쉬운 사람, 모자란 사람, 어딘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 밖에 없으니 매번 약자가 되었다.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보아도 돌아오는 건 조소.
비록 가진 게 몸뚱이 일지라도 그거 하나 믿고 밀고 나갈 깡과 악이 내게는 없는 듯하다.
인간은 왜 태어나야 하는 것이며, '나'라는 인간이 태어난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이며,
살아가며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살아냄이 이유인 것인지.
존재함에 감사하지 못하고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날들이다.
존재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존재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실에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오늘.
인간에게 있어 행복의 기본적인 조건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자기 결정이론
첫째, 내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즉, 자율성.
둘째,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낫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성장함에서 오는 유능감.
셋째, 내가 잘하는 것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누군가가 있는 연결감.
가장 가까운 이에게조차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나는 이 세 가지 중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존중과 이해 없이도 내가 먼저 나를 존중하고 이해해주고 있다면, 그것대로 나은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나를 더 무력하게 만든다.
고작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고 있는 자아라는 거니깐.
'이해 따위 필요 없다. 존중 따위 필요 없다.'라고 외치며 나의 존재를 인정하기에는 아직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많이 부족하다. 이 부족함이라는 단어가 존재에 적합한 단어는 맞는가? 괜한 의구심을 품는다.
그냥 '존재' 자체로는 이 세상을 살 수 없다.
끊임없이 걸어야 하며 뛰어야 하고 날기도 해야 한다.
비는 쉬지 않고 내린다.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가. 가는 길에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가끔은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창문을 적셨던 빗물이 마르듯, 증발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