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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보 샘 Dec 06. 2022


모두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주세요

  '톰팃톳'을 읽고


 모든 아이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주세요!     


  삶이 무기력하고, 무언가에 주눅이 들어 우울이 다가올 때면 ‘톰팃톳’을 부른다. 착하거나 부지런한 사람만이 행운을 얻는 평범한 스토리가 아니라 좀 게으르고, 허풍을 떠는 사람에게도 해피엔딩을 선사하는 독특한 이야기! 가끔 우리에게도 행운을 꿈꿀 여유가 필요하다. 딱딱하게 구원진 파이가 부드러워질 정도의 시간만 기다릴 수 있다면, 우리도 ‘톰팃톳’을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유럽의 어느 마을에 가난한 어머니와 딸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저녁으로 파이 다섯 개를 준비한 후 찬장에 넣어두라고 딸에게 말했다. 딱딱하게 구워진 파이를 부드럽게 하려고 기다림의 시간을 둔 것이다. 하지만 딸은 어머니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파이 다섯 개를 다 먹어치웠다. 어머니는 딸의 행동에 너무 속이 상해 물레를 돌리며 노래를 불렀다.

 “내 딸은 먹보, 파이를 다섯 개나 먹어치우는 생각 없는 먹보.”    


 


  마침 그 앞을 지나던 왕이 노래 가사가 궁금하다며 다시 듣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노래를 바꿔 불렀다. 

 “내 딸은 재주꾼, 황금 실을 다섯 타래나 만들어내는 천하제일 재주꾼!”

 왕은 그 노래를 듣고 능력이 출중한 당신의 딸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 후 황금 실 다섯 타래를 만들지 못하면 딸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조건도 말했다. 놀랍게도 딸은 황금 실 다섯 타래를 가뿐하게 만들어낸다. 갑자기 나타난 긴 꼬리 괴물이 황금 실 다섯 타래를 만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한 고개 넘어 더 험한 고개가 다가오는 것처럼 긴 꼬리 괴물의 도움을 받은 딸은 더 힘든 일을 해결해야 했다. 한 달 안에 괴물의 이름을 맞히지 못하면 그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수락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행운은 딸의 편이었다. 사냥을 나갔던 왕이 긴 꼬리 괴물이 부른 노래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톰팃톳, 절대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름!”

  결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괴물의 이름을 알아맞힌 딸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모든 자식이 이럴까? 나도 동화책 속 어머니처럼 물레를 돌리며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내 딸 방은 돼지우리, 방에서 냄새나는 다섯 켤레의 양말이 나온다네.”

 쓰고 보니 속이 시원해서 웃음이 나온다. 물론 다섯 켤레는 실타래 다섯에 맞추고 싶어 과장한 것이지만 적어도 양말 한 켤레는 사실이다. 돌돌 말아 휙 던진 흔적. 방을 잘 치우지 않는 딸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면, 치우려고 했다는 변명이 날아든다.

 “엄마는 매번 너무 빨라. 난 정말 치우려고 했어.”


  그러고 보니 딸과 나의 속도가 같을 수는 없다. 자료 검색은 딸이 빠르고, 첨삭 속도는 내가 빠르다. 딸은 계단을 오를 때 빠르고, 나는 더러운 것을 치울 때 빨라진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느려지고, 딸은 청소를 할 때 느려진다. 서로의 삶에 따라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딱딱한 파이가 부드러워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딸과 내가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톰팃톳’은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민담처럼 약간씩 줄거리가 다르기는 하지만 얼떨결에 행운이 찾아오는 구성은 같다. 나는 이야기의 여러 부분 중 딸과 어머니의 관계가 재미있어서 이 책을 자주 읽는다. 파이를 다섯 개나 먹고, 엄마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사실은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는 건지, 어쨌든 먹보라서 엄마의 속을 상하게 하는 딸. 엄마는 화가 나서 딸을 먹보라고 소리치며 노래 부르지만 그건 자신의 속을 달래주려고 할 때뿐이다. 남들 앞에서는 특히 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 앞에서는 딸을 자랑해야 한다. 허물은 덮어주고 아름다운 모습을 부각해서.     

 “내 딸은 재주꾼, 황금 실을 다섯 타래나 만들어내는 천하제일 재주꾼!”


 사실 이 노래가 독자에게는 허풍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어느 정도는 사실을 담고 있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그려진 이상적인 딸의 모습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먹보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황금 실타래를 자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 


  가난한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혼자 파이 다섯 개를 다 먹어 버린 먹보 딸. 처음에는 그녀의 모습이 내 딸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상에! 나를 더 닮았다. 엄마는 말을 안 듣는 내가 얼마나 얄미웠을까.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왜 엄마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화를 냈다가도 밥때가 되면 뜨거운 밥을 먹어야 한다고 삐친 나를 달래서 상 앞에 앉혔는지를. 매일 블라우스 빨아서 다리미질할 시간에 제발 공부나 좀 하라고 했다가도 막상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손을 흔드는 나를 보면 환하게 웃음 짓던 엄마. 엄청 촌스러운 옷을 입고 

 “이상하지 않아?”

라고 물으면

 “예뻐, 넌 뭘 입어도 예쁘다”

라고 황당한 대답을 하던 고슴도치 친척.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톰팃톳’ 이야기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딸이 온갖 시험을 다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성취한 데는 어머니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그녀는 분명 딸이 잘되기를 바라며 새벽마다 일어나 기도를 드리거나, 딸의 소식이 궁금해 궁궐 앞을 서성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신성한 기운이 아무 힘도 없는 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딱딱한 파이에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모든 아이에게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홀랑 다섯 개의 파이를 먹어치우거나, 다섯 켤레의 양말을 던져놓는 아이가 있다고 해도 그 미움이 오래갈 수 없다. 어머니의 눈에는 황금 실타래를 다섯 개나 자아낼 수 있는 소중한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릴 수 있다. 


 “내 딸은 황금 실타래보다 소중한 사랑,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내 가슴속 붙박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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