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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석 Dec 28. 2023

다산(茶山)의 원욕(願欲)

         ‘욕구(慾求, desire)’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 느낌이다. ‘욕구(慾求)’라는 말 자체가 어떤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욕심(慾心, greed)’은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욕심(greed)은 욕구(desire)와는 다르게 이기적이고 지나친 요소 때문에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욕심의 두리뭉실한 표현은 이 두 가지 낱말에 대한 이해와 용법에 혼돈을 초래한다. 이러한 혼돈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후기에 활동한 실학 사상가, 다산(茶山) 정약용의 욕구(慾求, desire)에 관한 이해는 선구적이며, 실질적이다. 다산(茶山)은 심경밀험(心經密驗)에서 원욕(願欲, desire)이란 말을 도입해서 욕구(慾求, desire)에 관해서 해설하고 있다. 다산의 원욕(願欲, desire)에 관한 해설은 매슬로(Abraham  Maslow)의 성장 욕구 이론과 다르지 않다.  


         우리 인간의 영체(靈體) 안에는 본래 원욕(願欲)이란 한 부분이 있다. 만약 이 욕심(欲心)이 없다면 천하만사에 대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생략) 내가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마음이 담백하고 욕심(欲心)이 없어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악을 행할 수도 없었으며, 문장을 지을 수도 없었고, 생산활동도 할 수 없었다. 곧 천하에서 버려진 한 물건과 같았다.


         다산은 ‘원욕(願欲)’이라는 단어를 쓰고, 바로 그 뒤에 '욕심(欲心)'으로 받아, ‘원욕(願欲)’을 욕심(欲心)으로 또는 욕심의 한 형태로 이해했다. 또한, 다산은 “백성이 이(利)를 좇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름과 같고... 백성이 해(害)를 피하려고 하는 것은 불이 습기를 피하는 것과 같다(여유당전서 11권).”라고 말했다. 

         이러한 표현에 근거해서, 어떤 학자들은 다산이 모든 욕심(慾心)이나 욕망(慾望)을 당연시하고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한 고등학교의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서 다산이 ‘물질적인 욕망(慾望)’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원동력으로 여겼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다산의 해설이나 주장에 근거해서, 다산이 인간의 모든 욕심(慾心)나 욕망(慾望)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결론지으면, 다산의 다른 강의나 주해에 나타난 그의 사상과는 다른 입장에 서게 된다(문성호, 2018). 특히, 다산은 욕심 중 ‘물욕(物欲)’에 대해 언급하며, ‘욕심(慾)’이 사람에 따라 ‘맑거나 탁한 차이’는 있겠지만, ‘욕심(慾)’ 때문에 ‘본성을 잃는 것’은 똑같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다산은 물욕(物慾)은 악을 행하게 하고, 도의(道義)를 추구’하는 욕심은 선을 행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다산은 “한 사람에게 욕심이 지극히 크면 그 욕심에 따라 죽어도 후회하지 않게 되는데, ‘탐욕스러운 사람의 욕심’은 재물을 위해, ‘열사의 욕심’은 명예를 위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라고 말했다. 

           다산은 탐욕(貪慾)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욕심(慾心)을 이해하면서, 백성의 기본적인 욕구(慾求)를 ‘원욕(願欲, desire)이란 말을 도입하여, 이를 당연시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보아야 한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백성의 원욕(願欲)을 물어서 간곡하게 그 뜻을 이루어주어야 한다”라고 하여 원욕(願欲)을 백성이 ‘원하고 구하는 것’이란 의미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성의 기본적인 욕구 또는 원욕과 관련해서, 다산은 백성의 부(富)에 대한 욕심을 당연시하였다. 

         다산의 욕심(欲心)에 대한 해설과 주장은 당시 동료 유학자들의 관심과 비판을 불려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산은 여홍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몸의 기호(嗜好)에 관해 설명하면서, 욕망(慾望)은 당연히 절제하고, 참아야 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다(문성호, 2018). 이처럼, 다산은 사람의 본성을 잃게 하는 욕심(慾心)이나 욕망(慾望)을 당연시하지는 않았다

         다산은 ‘願欲(원욕)’이란 말을 사용해서 백성의 생활과 안전을 위해서 생기는 원하고 구하는 것, 즉, 욕구(慾求, desire)를 당연시하였고, 백성의 원욕을 활용하는 정책과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산의 주장은 오늘날 사회 정책에도 효력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부는 국민의 원욕을 채울 수 있는 주택, 부동산 정책을 당연히 마련해야 하지만, 공동체에 해가 되는 욕심에서 나오는 국민의 주택, 부동산 투기는 억제하고 통제하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문성호 (2018). 다산의 ‘인간 욕구 욕망관’에 관한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내용의 정확성 연구. 교육과정 평가 연구, 21(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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