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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골 May 16. 2024

와인 모임에서 사람 만나는 건 별로이리라 짐작하는 이유

인적 젠트리피케이션

 서울대 <인간관계의 심리학> 강의가 예전같지 않아졌다고 하는 이유, <3대 연애 동아리>가 생각보다 조용하다고 하는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좋은 후기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새로운 인적 구성으로 채워지고, 다들 "여기는 연애를 염두에 둔 모임이지"라고 의식을 하고 (특히 여자는) 경계가 높아지면서 초반에 유대를 구축하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만드는' 모임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그런 모임에 한 번도 안 가봐도 확신할 수 있다. 와인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레 다같이 마시는 빈도가 많아지게 마련이고, 술이 들어가면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들이대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 사실을 여자도 알고 남자도 알고, "밤에 잠을 잘 못잔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알고 내심 1~3개월만 만나려는 남자도 알고,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사람들도 안다.

 혼술하는 사람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혼술은 문신과 큰 틀에서 유사하다. 그것 자체에 무슨 잘못이 있는 건 아니지만 비율과 경향성에서 차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요컨대 공통의 대의가 없는 모임은 금방 열화하고 타락한다. 건물 같았으면 임대료를 높여서 버틸 수 있는 건실한 상가들만 남았겠지만 모임은 입구컷을 안 하다가 변질되는 게 부지기수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상권이 변질된다고 유비할 수 있다.

 이걸 방어하는 수단이 학벌로 거르거나 애초에 주제 자체를 건설적이거나 귀찮거나 난이도 높은 액티비티(독서 스포츠 밴드 공부 요리 자아성찰 등등)로 삼는 것이다. 다만 술과 연애가 주축인 게 가시화되면 학벌로 걸러도 썩 바람직한 장이 되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곳에 가면 같은 성별에게 날이 서 있는 사람이 일반적인 모임보다 많다. 꼭 와인 제조를 하려 한다면 좋은 대형모임 내에서 와인 소모임을 찾아들어가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 데 모여 넷플릭스를 보는 모임

 넷플연가가 정말 획기적인 신개념 모임으로 홍보가 되어 있는데, 직접 활동해본 분에게 듣기로 다른 모임 서비스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는 않다고 한다.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은 유의미하게 집을 좋아하는 경향은 있을지 몰라도, 그 취미가 특별히 나쁘거나 건설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다른 모임보다 독보적으로 나을 인과성이 보이지는 않고, 내 짐작이 틀리지 않은 듯하다.


 한편 요새는 4:4 미팅 서비스에서 책을 가져오게 해서 그 책으로 파트너를 정하거나 하는 식의 수단을 씀으로써, 유저 풀이 일반적인 풀에서 너무 괴리되지 않게끔 방지하는 수단을 쓰는 업체들도 있다고 한다.

 기왕 특정 트리거를 통해 유저 풀을 선별할 거면, 비교적 뻔한 책보다 아예 허들을 확 높이는 액티비티를 동반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초반 유저 수를 모으는 건 어려울지언정 한 번 자리만 잡으면 '바람직한 만남'으로 정평이 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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