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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Jun 08. 2024

환자분께 책 선물을 받다

입원 환자분들께서는 종종 커피, 간식. 샌드위치  등등을 사다주시는데 

(나는 희한하게 홈런볼을 많이 주신다… 이 얘기를 친구들이랑 하면서 너가 홈런볼 좋아하게 생겼나봐~ 너는 웨하스 좋아하게 생겼다... 이러면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처음으로 책선물을 받았다.


농양 환자분들은 드레싱을 적으면 하루에 한번, 많으면 네번씩 하고, 주말/공휴일 관계없이 매일 드레싱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치의와 환자는 자주 보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라포(rapport)가 끈끈해지는데

장기 입원해 계시던 농양환자분이 계셨다.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갈 정도로 통증이 심한 질환이라 오랜 입원기간동안 힘드셨을텐데, 항상 웃는 모습이 참 멋있으셨다. 그분의 침대에는 항상 책이 한권씩 있었는데, 드레싱 때 읽고 계신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나도 책읽는걸 좋아한다고 말씀드리기도 했다.


퇴원 후, 환자분의 외래 예약날이었다. 오후 예약이었는데, 점심시간에 병원에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나시더니 책 한권을 쥐어주셨다. "선물이야!" 나는 처음에 너무 당황해서 인사를 제대로 못드렸는데,

외래진료때 감사인사를 드렸다. "책 뒤에 싸인해주세요~" 라고 하니 돌아온 대답이 "안 돼, 이제는 내 책이 아니니까" 

환자분께 제가 책선물은 처음 받아봐서, 기념하고 싶다고 하니 싸인을 해주셨다. 

진료 시간에는 바빠서 못 펼쳐 보고, 생일 편지를 고이 간직했다가 집에 가서 읽어 보듯, 외래가 끝난뒤 열어본 책 뒤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 참 힘들고 지겨우셨을 수도 있는데, 병원 생활이라는건 보통 부정적인 스펙트럼에 있는 경험이니까.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표현해준 것이 감사했다.


지금 이 책은 읽는 중이다. 이런 좋은 책을 선물해주심에, 좋은 사람을 통해서 좋은 책을 발견함에 감사하다.


나는 내 일이 힘들 때마다 이런 기억으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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