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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Mar 17. 2024

숨은 K-Pop 명곡 100선, 여든둘

다시 처음이라오, 문관철 : 1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1987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K-Pop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비운의 앨범은 무얼까?

예전, 어느 예능의 한 프로에서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법한 영화배우가 나와, 엄청난 흥행을 이룬 영화들을 언급하며 그때 당시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었던 과오를 익살스레 후회하던 일화가 생각난다.


사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비단 음악을 포함한 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우리 내 인생살이에서 비일비재하게 만나볼 수 있을 듯 한데, 조금만 생각의 폭을 넓혀보면, 우리 모두는 지난 내 인생 어느 지점에 선택했던 나의 결정에 따라 지금의 모습이 달라졌으리라 추정되는 것들에 매번 후회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아 그때 그 주식을 팔지 않았더라면!'

'아 그때 그녀와 입맞춤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 그때 그 모임에 나갔었더라면!'

'아 그때 그 제안을 거절했었더라면!'


후회를 반복하며 자리잡는게
우리내 인생인듯!


중요한 것은 만약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이 있어서,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인데, 결국 우린 이런 후회를 반복하는 삶을 살게 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와, K-Pop 역사상 최고 비운의 앨범 선정에 그 어떤 정량적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알려진 사실만을 기반으로 논리적 순위의 결정을 노력한다 할지라도, 결국 이러한 일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결과가 나올 수 밖에는 없다. 비운의 크기를 어찌 잴 수 있을 텐가!


하지만 나에겐 이러한 공정성의 문제를 떠나 주저 없이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앨범이 있다.


김현식 - 비처럼 음악처럼,
이문세 - 그대와 영원히,
김장훈 - 오페라,
김현식 - 다시 처음이라오


K-Pop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고 좋아했을 레전드 가수와 레전드 노래,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과 '다시 처음이라오',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 김장훈의 '오페라'.


마치 레전드 히트곡을 짜깁기한 옴니버스 앨범이라 오해를 살만한, 이들의 레전드 노래들을 먼저 부르고 하나의 앨범에 수록한 음반이 있다면 어떨까?


1987년 발매된 문관철 1집 앨범 표지


이미 일부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직 많은 대중들에겐 굉장히 생소한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 문관철. 그리고 그가 1987년 2월에 발매한 1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앨범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문관철은 불모지와도 같았던 K-Pop 내, 마치 보석과도 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래시브/아트락 밴드 시나브로의 보컬/기타리스트로 1981년 국풍 81 젊은이가요제에서 '을지문덕'이라는 노래로 연주상을 수상하여 K-Pop에 데뷔하게 된다. 시나브로는 같은 해 MBC대학가요제에 '안개'라는 노래로 참가하여 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문관철이 몸담았던 락그룹 '시나브로'가 데뷔한 국풍 81 젊은이가요제, '81 MBC 대학가요제 앨범 표지


시나브로는 당시 생소하게만 느껴졌던 장르적 특성 때문에, 높은 음악성과 연주 실력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이후 그들은 시나브로의 정규앨범을 발매하지 못하고 각자 활동을 하다가 결국 해체하게 되었는데, 문관철은 각자 활동을 시작할 당시 솔로 앨범을 준비하게 된다.


이 즈음 그는 방배동에 밴드의 이름과도 같았던 '시나브로'라는 작은 카페를 열었었는데, 이 카페는 당시 들국화, 김종진, 전태관, 김광민, 유재하, 박성식, 장기호, 권인하, 이병우, 조동익, 함춘호 등 여기 숨은 명곡에도 자주 등장하는 젊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는 시나브로의 멤버였던 김광민, 안지홍뿐만 아니라, 카페를 들락거리던 친한 동료/후배들인 빛과 소금의 멤버 박성식, 이장희의 동생 이승희, 그리고 유재하에게 그의 첫 번째 앨범에 실릴 노래들을 선물 받게 되는데 그 노래들이 바로, '비처럼 음악처럼', '그대와 영원히', '오페라', '다시 처음이라오' 등이었다. 


그는 지금 봐도 그저 후덜덜하게만 느껴지는 당대 최고의 연주/세션들과 함께 1984년 1집 앨범의 녹음을 마치고 발매를 준비하게 된다.


참여한 뮤지션들이
그냥 레전드!


Piano : 변성룡, Keyboard : 변성룡, 박성식, Guitar : 이병우, 김현종, 최춘호
Bass : 장기호, 조원익, 신형권, Drum : 안기승, 강원기, Percussion : 이승희
Music Director : 이승희, Producer : 시나브로 


하지만, 기획사나 제작자의 도움 없이 홀로 앨범을 준비하던 그는 앨범 발매에 들어갈 돈을 마련하기 어려웠고 그의 앨범 발매는 점점 더 늦어지게 된다.


1986년 김현식 3집, 1985년 이문세 3집, 1996년 김현식 7집, 1999년 김장훈 5집, 2013년 김현식 8집 앨범 표지.


3집 앨범을 준비하던 김현식은 그의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에게 수록될 노래들을 부탁하게 되었고, 이때 박성식이 만든 '비처럼 음악처럼'을 듣게 된다. 문관철이 이미 녹음했던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박성식에게 간청하여 1986년 그의 3집에 노래를 싣게 되었고, 이 노래는 김현식 최고의 히트송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비의 노래로 사랑을 받게 된다.


이때 김현식은 문관철에게 양해를 구했다고는 했지만, 아마 당시 굉장히 엄하고 인기가 높았던 선배였던 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대와 영원히'의 경우는 당시 '시나브로'에서 숙식을 하다시피 했던 유재하가 아침에 특유의 긴 머리가 더벅머리가 된 채 일어나 앉아있는 문관철의 모습을 보고 만들어 83년 선물한 노래이다. 유재하는 이후 이문세에게 이 곡을 준 사실을 잊고 있었다고 하고 문관철은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이문세의 목소리를 라디오에서 처음 듣고는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그대와 영원히'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이문세의 3집에 실려 많은 사랑을 함께 받았고 유재하와 이문세를 대중에게 알리게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후 문관철은 이 두 곡의 발매년도 보다 1~2년 늦은 1987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자신의 앨범을 세상에 내놓게 되지만 대중에겐 외면받고 만다.


워낙 대중적으로 높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가진 곡들이기에 이 안타까운 두 일화를 가지고 몇몇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문관철의 곡이 원곡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하였고 또 이를 반박하는 일들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앨범 녹음이 아닌 발매가 우선이고 이를 작사/작곡한 이도 문관철 본인이 아니었을뿐더러,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언제 발표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앨범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고,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당사자끼리의 어떤 공식 계약도 없을 것이 분명하기에, 원곡은 김현식과 이문세가 부른 버전이 맞다.


하지만 모든 일들을 그렇게 일명 '법대로'만 바라볼 수는 없기에 문관철 입장에서만 보면 억울한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하고 또한 도의적인 부분으로 그 범위를 넓혀보면 그것이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았든 간에 비난받을 요소가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들 모두는 함께 미래를 꿈꾸던
동료이자 가족 아니었던가?


다만, 문관철이 이 두 레전드들과 비교하여 노래를 잘 소화하지 못했다거나, 먼저 발매했다 하더라도 그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거라는 추측은 원곡을 이야기하는 Originality 관점에서는 논점이 아예 다른 이야기이니 논외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머지 김장훈이 불러 히트한 '오페라'와 김현식이 사후 발표한 '다시 처음이라오'는 원곡이 문관철이 부른 1집 노래가 명확하기에 더 이상의 논란은 없어도 될 것 같다.


1990년, 1993년, 2011년 발매한 문관철의 2, 3, 4집 앨범 표지


이후 문관철은 1집에 실렸던 '다시 처음이라오'를 다시 리메이크하여 앨범 타이틀 곡으로 싣고, 대부분의 노래를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하나였던 조동익이 편곡을 담당한 2집을 발표하지만 대중에게 큰 반향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그는 1993년 동서남북의 멤버였고, 다수의 영화 OST를 프로듀싱했던 박호준이 프로듀서와 편곡을 맡았던 3집을 발표하지만 완성도 높은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대중에게 외면받게 되고 그는 긴 공백기를 갖게 된다.


지지부진했던 음반 판매와 호기롭게 시작했던 사업의 실패로 인해 오랜 은둔 생활을 하던 그는 18년의 긴 시간을 지나 본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도 자주 등장한 박광현이 프로듀싱을 맡은 Jazz 앨범인 4집 'Boot From Memory'를 2011년 발표하고 현재까지 활동에 있다.


문관철의 노래하는 모습, Facebook 및 기사 발췌


어쨌든 문관철 1집이 수많은 명곡들이 수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하지 못한 비운의 앨범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앞서 잠시 언급하긴 했지만, 혹자들이 당시 그의 노래들이 흥행하지 못했던 이유를 빌미 삼아 의도적으로 잔인하게 쏟아내는 앨범에 대한 혹평은 동의하기 힘들다. 


재평가가 꼭 필요한
K-Pop 레전드!


문관철은 K-Pop에서 정말 몇 안 되는 프로그래시브/아트 락 밴드의 멤버로 쉽지 않은 장르를 선도하는 음악가였고, 그 당시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엔 생소한 샤우팅이 그득한 창법을 구사했다. 물론 그의 솔로 앨범인 1집에서는 밴드 활동 시보다 많이 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독특함이 아직도 살아있으며, 가수 권인하는 이런 그를 두고 시대를 앞서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김현식의 블루지함과 이문세의 감미로움을 함께 두고 비교하면서 그의 보컬은 마치 책을 읽는 듯이 딱딱하고 불친절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곡에 대한 각 뮤지션 고유 영역인 '해석'이 달랐을 뿐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취향의 문제라 생각한다.


게다가 현재 이슈가 되어 크게 히트한 4곡 이외에 이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을 하나둘 살펴보면, 그 음악적 완성도나 세련미에 감탄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특히 마지막까지 숨은 명곡의 선정을 두고 고심했던, '오우동동가'의 경우 그 시절 어떻게 이런 펑크함이 묻어나는 곡을 미친듯한 연주 실력과 함께 만들 수 있었는지 그의 재능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오우동동가는
진짜 최고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oTJScjuwAs

문관철 1에 수록된 김광민 작곡의 오우동동가


오늘 소개할 여든두 번째 숨은 명곡은 1987년 발매한 문관철 1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실린 이승희 작사/작곡의 '다시 처음이라오'라는 노래이다.


진짜 문관철 다운
문관철의 노래!


이 노래는 김현식 사후인 1996년에 7집에 미 발표곡으로 실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곡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상에서 듣기 애처로울 정도의 갈라진 목소리로 부르는 김현식의 애절함을 기억하며 그가 만든 미발표곡 노래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노래는 논란의 여지없이 문관철이 부른 버전이 원곡이며 김현식이 커버한 노래일 뿐이다.


7집에 실린 이 버전에서는 원곡의 1절만 김현식, 그리고 뒤이어 김장훈이 1절을 다시 부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문관철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원곡의 가사 모두를 부르지 않은 점, 그리고 문관철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점 등에 대해 그를 배려하지 않았다며 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피아노, 드럼, 베이스와 함께 신시사이저의 메인 멜로디가 어우러지며 시작되는 이 곡은 전형적인 소프트락 발라드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전주를 지나 노래의 시작에 다다르게 되면, 다소 거칠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음속 감성을 여과 없이 모두 뿜어대는 문관철의 보컬을 만나게 된다.


노래는 마치 어쩔 수 없이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안타까운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 듯, 가슴이 절로 에여지는 가사와 함께 풀어내는데, 마치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가 도돌이표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인 것 같아 마음을 들킨 듯 애처롭기만 하다.


우린 어디쯤 또 얼마큼 온 건지?
다시 걸어가도 되는 건지?


언제나 목표가 뚜렷하지 못했다.

그저 남들과 함께 하는 이 길이 옳고 바른 길이라고,

내가 원하는 세상이 이 길의 끝에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또 안위하며 걸어왔다.


어느덧 주위를 둘러보면,

함께 걷고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들 모두는 사라지고,

외로운 길가에 홀로 서성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수천만 번이나,


이곳이 어딘지, 또 얼마나 온 것인지 궁금해했고,

때론 다시 걸어가도 되는 것인지 한참을 망설이기도 했다.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우린 매일 험하고 거친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 가끔은 나를 막아선 장애물에 이곳이 나의 끝이라 나의 마지막이라 생각할 때도 있다. 이젠 모든 게 다 끝난 것처럼.


잠시 길가에 앉아 비 오듯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긴 한숨과 함께 숨 가쁘게 걸어온 길들을 바라보다 보면, 언제나 그곳에는 또 다른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쉽게 놓아버리지 말자. 그래 다시 처음이다!




다시 처음이라오

문관철, 1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1987


작사 : 이승희

작곡 : 이승희

노래 : 문관철


어디쯤 왔을까 얼만큼 걸었나

옮겨진 발걸음을 또다시 옮길까


서러움 애써 달래 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풀잎에 떨어진 한 방울 이슬은

밤새워 헤메인 바람에 발자욱


서러움 이제 잊어버리고 먼 하늘 바라보면

떠오른 저 붉은 태양은 나에게는 다시 처음이라오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eqVpHOxw_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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