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nue May 19. 2024

숨은 K-Pop 명곡 100선, 아흔하나

거리풍경, 고찬용 제2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 1990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비운의 천재 뮤지션
고찬용


숨은 명곡 시리즈가 90회를 넘어가면서 그동안 작성한 글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독 '천재', '비운', '레전드', '최고' 등의 수식어들이 소개하는 아티스트나 노래 앞에 심심찮게 붙어있는 걸 느끼게 되는데, 이런 류의 단어들을 남발하다 보면 그 문장이나 글의 진정성이나 신뢰도가 급락할 수밖에 없다.


"뭐야~~, 뭔 비운의 가수, 천재 아티스트, K-Pop 레전드가 이리 많은 거야?"


더 나은 멋진 형용사를 구사하지 못하는 무지하고 어설픈 어휘력에 언제나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그를 잘 설명할 방법이 도저히 없기 때문이다.



고찬용은 1990년 제2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오늘 소개할 아흔한 번째 숨은 명곡인 '거리풍경'이라는 노래로 대상을 차지하며 데뷔한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2024년 올해 35년이 되는 가요제로 자타공인 K-Pop 역사상 가장 수준 높은 음악성을 겸비한 역량 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을 배출한 등용문으로 잘 알려져 왔고, 본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도 스토리(이승환), 자화상, 박인영, 조규찬, 나원주, HUE, 불독맨션(이한철), 김혜능 등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이다.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조규찬의 데뷔곡인 '무지개'가 대상 없는 금상을 차지했고, 이듬해 2회에서는 지난 열한 번째 숨은 명곡에서 선곡한 박인영의 '새로운 세상이' 금상을 그리고 오늘 소개할 '거리풍경'이 대상을 차지했다.


1990년 제 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기념음반 앨범 표지


'진짜 찐이 나타났다'며 수많은 음악 관계자들의 찬사와 함께 K-Pop에 데뷔한 그는, 곧 자신이 다니던 인천대학교의 노래 그룹 '포크 라인'을 중심으로 '낯선 사람들'을 결성하고 1991년 우리 노래 전시회 4집에 '무대 위에'라는 노래를 수록하며 데뷔하였고, K-Pop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 낯선 사람들 1집과 2집을 발매하게 된다.


K-Pop 역사상 항상 재즈 보컬 명반으로 회자되는 낯선사람들 1집(좌)과 2집(우)의 앨범 표지


낯선 사람들은 '한국의 맨해튼 트랜스퍼'라는 극찬을 받으며,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재즈 보컬 그룹으로 우뚝 서게 되는데, 범접할 수 없었던 보컬과 감성의 소유자였던 이소라가 탈퇴하는 위기 속에서도 차은주를 영입하고 보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음악을 들려주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고찬용은 안타깝게도 갑작스레 그의 인생에 찾아온 공황장애로 모든 음악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그룹의 기둥이자 핵심이었던 그의 활동 중단은 자연스레 낯선 사람들의 활동 중단으로 이어졌고, 이대로 레전드 보컬 그룹은 해체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K-Pop에서
그렇게 영원히 사라지는 듯했다.


2006년, 그는 10년간의 공백 후에라는 뜻을 지닌 'After Ten Years Absence'라는 그의 솔로 독집 앨범을 들고 홀연히 나타났다. 낯선 사람들 2집이 1996년에 발매되었으니, 꼭 10년이 되는 해에 다시 대중 앞에 컴백을 한 것이다.


그가 새롭게 선보인 음악은 마치 낯선 사람들 2집에서부터 이어진 음악적 연장선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히 신선하고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는 모든 멤버와 음악적 지향점을 협의하고 배려했던 그룹시절과는 달리 지극히 주관적이자 좀 과도한 표현으로 '이기적'이라 할 만큼 모든 노래가 그 자신을 향하고 있다.


작사, 작곡, 연주, 노래, 엔지니어링 및 프로듀싱까지 모든 노래 하나하나에 그의 열정과 손길이 가득 묻어나는 이 앨범은 그가 그저 움켜쥐고만 살아왔었던 10년간의 열정을 어떻게 참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그만의 자유와 여유 그리고 높은 수준의 음악성에 놀라게 되고야 만다.


2006년 10년만에 발표한 고찬용 1집과 그 후 6년이 지난 2012년 발표한 2집, 2023년 발표한 싱글 앨범 표지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사 전달력 측면에서 그의 발성인데, 스캣 형태의 창법이라 아무리 포장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싶어도 잘 들리지 않는 가사, 그렇기에 가사집을 보기 전까지는 이해하기 힘든 노래의 내용은 내겐 참 어렵기만 했다.


2012년에 발매된 2집 'Look Back'은 고찬용이 지향하는 음악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 보다 대중적으로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앨범이라 생각되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발성은 은혜롭게도 훨씬 듣기 편해져서 이젠 그가 툭툭 던지듯 내뱉는 정교하고도 독창적인 재즈 리듬감에 더해진 가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K-Pop에 이런 장르를
이렇게 소화하는 뮤지션이 또 있을까?


1집과 2집 모두는 평론가나 음악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앨범이라 보기는 어렵다. 고찬용만의 색깔이 너무나 짙게 드리워져 K-Pop 내에서도 굉장히 작은 공간 내에 들어서야만 알아볼 수 있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또 다른 10년 동안 정규앨범이나 싱글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


그러던 2023년 여름, 그는 '꿈만 같아'라는 싱글 앨범을 언제나 그랬듯 우리에게 또다시 무심하게 '툭' 건네주었는데, 마치 '낯선 사람들' 시절을 그리워하듯 사람을 바라보게 되는 그의 마음을 담담히 잘 담아낸 수작이라 생각한다.


1990년 제 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기념음반 앨범 표지


오늘 소개할 아흔한 번째 숨은 명곡은 이미 마니아층에게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명곡, 1990년 제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기념음반에 실린 대상곡 '거리풍경'이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반가움을 잊을 수 없다. 그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고급지고 세련된 Woking Bass 주법의 재즈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나왔구나라는 환희에 좀 더 가까웠다. 그만큼 고찬용이 K-Pop에 가지는 입지는 그의 수십 년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당시 어쿠스틱 기타를 좀 친다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은 이 노래의 연주를 하느냐 못하느냐로 그 수준이 나뉠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소화하는 뮤지션은 드물었다.


그의 이런 비교할 수 없는 연주 기법과 노래는 낯선 사람들 1집의 '낯선 사람들'과 '해의 고민'등의 잊을 수 없는 명곡들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벌써 30년이 지난 노래들이지만 이만큼의 한국적 재즈 감성과 화음을 들려주는 보컬 그룹을 본 적이 없다.


Hammond Organ과 함께 현란한 기타 연주로 시작되는 노래는 레전드 조동익의 풍부한 감정이 덧붙여진 편곡으로 Synth Brass와 드럼, 그리고 재즈 베이스로 이내 듣는 이의 마음을 흥겹게 만들어 준다.


이 노래의 가사는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거리의 평범한 일상을 고찬용식의 동화적인 감정과 대화법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마치 우리 하루하루 속에서 흔히 만나 볼 수 있는 창문 밖 거리 풍경이 연상되기도 한다.


밤이 내리면 모두가 아름답고,
내 꿈은 춤추네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살기 싫어서 한참 긴장감 가득 하루를 살았던 예전의 내가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했고 또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에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와 그때의 나를 다시 좀 돌이켜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성공에 대한 집착에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머리끝까지 채워야 오히려 편했고, 잠시 내 몸을 쉬어가야 한다는 경고에 떠난 여행이나 쉼조차도 온전히 내게 충실하지 못했다. 어쩌면 진정 나를 위한 것이라기 보단 내 주위로 형성되는 가상의 나의 모습을 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쉬는 것도 멋진 척..


이젠 나이가 들어 나름대로의 지혜가 쌓였다며, 또 다른 착각 속에 감정팔이식 그때를 회상해 보면 왜 그리 강박관념에 경직되어 살았는지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때 조금만 허술했었으면, 그냥 좀 쉬었었으면 어땠을까. 그럼 또다른 후회가 생겼을까?


가끔은 저 거리에 뛰어다니는 웃음 띤 주인공 같은 사람들이 되지 않아도 되니, 오늘은 방관자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멍하니 거리의 하루를 시간의 흐름을 무던히 바라만 보는 건 어떨까?


모든 하루가 특별할 필요는 없으니!




거리풍경

고찬용, 제2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 1990


작사 : 고찬용

작곡 : 고찬용

편곡 : 조동익

노래 : 고찬용


회색빛 구름에 싸인 푸른 하늘

그 속엔 초록색 나무가 보이고

새소리 아름답지요


하나 둘 별이 내리네 눈부시게

그 속엔 사람들 웃음도 보이고

거리는 밤을 만나네


밤이 내리면 모두가 아름답고

내 꿈은 춤추네

상냥하던 가로수 이젠 졸리운지

꾸벅 꾸벅 꾸벅


이젠 모두 잠들었네 고요하게

새들도 초록색 나무도 모두가

아침을 기다리지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oyF2z8AbQa8

매거진의 이전글 숨은 K-Pop 명곡 100선, 아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