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우산, 김경식 : 하나뮤직 Newface - 1999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내게도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같았던 음악
음악을 알게 되고 또 하나둘 좋아하게 되면서, 수많은 레전드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접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 마법과도 같은 전율과 감동에 취한 나머지 무슨 숙명과도 같이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과 함께 참 오랜 시간을 지낸 적이 있다.
지금은 옛 싸이월드 감성팔이 때문에 희화화된 점이 있긴 하지만, '음악은 나라에서 허락한 합법적 마약'이라는 그 유명한 게시물에 대해 미워할 수 없이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까닭은 어쩌면 나 또한 그만큼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기 때문일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들을 수십 번씩 미친 듯이 리와인드해 듣는 와중에서도, 또 다른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이 모락모락 피어나, 마치 스펀지와 같이 온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내 머리와 가슴속에 담아 두고 싶었던 그 시절.
얼마 전 숨은 명곡 아흔다섯 번째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처럼, 가장 대중적 음악 공급처였던 라디오 속 내 감성과 딱 맞았던 최애 프로그램 DJ가 소개하는 노래제목과 아티스트 이름을 연필로 필기해 가며 외워두었다가, 레코드샵으로 달려가 음반을 구입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끔은 삶의 전부라 과장해도 모자람이 없었던 그때의 나, 그리고 언제나 새로움으로 나를 가득 채워준 음악. 난 언제나 갈망했고, 또 항상 새로움을 찾고 있었다.
어느새부터
포기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는 않다.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아티스트와 수많은 노래들을 더 이상 내 뇌신경속 기억회로와 저장장치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부터인 것도 같다. 어쩌면 음악으로 받았던 감동과 새로움 들을 이젠 다른 곳에서 채우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쓸데없는 감동보다 먹고사는 현실이 중요하게 된 이유도 클 테다.
2019년부터 음악저작권을 관리하는 법인인 KOMCA에서 관리하는 국내 곡들을 살펴보면, 조금씩 그 숫자가 늘어가고는 있지만 매년 약 10여 만곡의 새로운 노래들이 저작권을 등록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국내 저작권을 관리하는 법인은 이외에도 KOSCAP이라는 곳도 존재하니, 아마 실제 발매되는 곡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략 한 달에 K-Pop에만 한정하여 1만여 곡이 신규로 발매된다고 가정한다면, 하루 평균 300여 개의 곡들이 매일 새롭게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평균 약 4분의 길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를 모두 듣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00분, 20시간 남짓 걸리기에 보통 사람이 이를 모두 듣는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수십 년간 같은 노래들만
듣고 사는 우리
게다가 우린 수년, 수십 년 전에 이미 발매된 취향불문 모두가 인정하는 레전드 명곡들을 청취하는 데에도 굳이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검색하거나 정보를 습득하려는 노력에 소홀해졌다.
그러니, 언제나 우리의 플레이리스트는 수년 째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비단 음악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늘어난 노래와 정보들 때문에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산업 전반의 비즈니스 모델과 서비스로의 '큐레이팅'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옴니버스 앨범이 넓은 의미의 큐레이팅 서비스이기도 했다. 큐레이터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앨범 속 대부분의 노래들은 내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기에 정처 없이 레코드샵을 뒤지는 수고를 덜어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동아기획, 그리고 그를 계승했다고 보는 하나기획에 이르기까지 나의 취향 100%를 만족시켜 줬던 언더그라운드 옴니버스 앨범들을 통해 새로운 아티스트나 프로듀서, 뮤지션들을 발견하기도 했고, 정규 앨범에 실리기 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들을 한 두곡 미리 들어보는 행복한 경험이 되기도 했다.
LP와 CD의 시대에서 스트리밍의 시대로 음악 미디어, 채널, 소비의 형태 등 산업의 모든 것들이 바뀌게 되면서, 멜론을 필두로 다양한 음악 플랫폼 들은 예전보다는 보다 손쉽게 장르별, 아티스트별뿐만 아니라 각종 TPO에 따른 쟁쟁한 음악들을 추천해 주기도 했고, AI의 기술이 이미 그 상상력을 뛰어넘기 시작한 요즘에는 그냥 좋아하는 노래하나를 틀면 나의 성향을 감지한 알고리즘이 최적의 노래들을 다음곡들로 틀어주는데, 그 취향 저격의 정확도가 경악할 수준으로 놀랍기만 하다.
본 숨은 명곡 시리즈에 유달리 많이 언급되는 그 시절의 옴니버스의 앨범들은 어쩌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할 수 없는 앨범 기획 단계에서부터의 큐레이션이기 때문에 보다 인간적이고 또 감성적이기도 한데, 오늘은 1999년 하나기획에서 만든 신인 가수들을 소개하는 옴니버스 앨범 'Newface'에 실린 김경식 작사/작곡 '조그만 우산이라는 노래를 아흔일곱 번째 숨은 명곡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앨범은 하나기획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신인 음악인 8명의 노래를 2곡씩 실은 옴니버스 앨범인데, 오랫동안 이들과 음악적 교류를 쌓아왔던 코러스 출신 양영숙, 라이브 키보드 세션을 도맡았던 이경, 조동진/조동익의 친동생이자 영화감독, 뮤지컬 배우, 기타리스트, 작사/작곡가 등의 다재다능함을 가진 조동희, 유재하 음악가요제 출신, 김경식, 김석준, 김세운, 16년 차이의 멤버였던 김용수, 그리고 명순호 등이 함께 참여했다.
오늘 노래의 주인공인 김경식은 1996년 제8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그림 지우개'라는 곡으로 금상을 차지하여 K-Pop에 데뷔하였고, 본 앨범에서도 자신의 노래가 첫 번째 트랙에 수록되는 영광 아닌 영광을 누리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본 앨범 이후의 음악적 활동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드럼, 베이스, 기타, 일렉 피아노와 함께 흥겨운 리듬으로 시작되는 전주는, 듣기 좋게 잔잔히 깔리기도, 또 한껏 즐거운 흥을 돋우기도 하는 Brass의 다채로운 연주와 함께 미성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김경식의 보컬이 어우러져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노래가 시작되면 베이스, 일렉피아노, 드럼으로만 조합된, 굉장히 절제된 소수의 악기들 만으로 연주가 이어지는데, 역시나 그렇게 튀지는 않지만 노래의 중심을 담고 있는 현란한 베이스의 연주에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조동익'스러움이 물씬 느껴지게 된다.
노래가 진행되면서 하나둘씩 그 심플한 연주에 추가되는 기타, 드럼, Brass들의 악기들은 후렴구에 다다 들어 마치 조화로운 합창과 같이 느껴지다가도, 중간 간주에서 도드라지는 수준 높은 일렉 기타의 솔로 연주엔 저로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어지는 Rock Feel까지도 맛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한 가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은 간주에 나왔던 묵직하고도 현란했던 기타 솔로가 노래의 클라이 막스가 지나는 마지막 부분에 함께 했으면 어떨까 싶다.
내 꺼 쓰고 가~!
노래를 듣다 보면 내가 다 온몸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머쓱해지는, 어느 B급 로맨스 영화에서 나올 법한 아련했던 그때 그 시절 기억이 생각나기도 한다. 우산을 건네주고 온몸이 흠뻑 젖어 집까지 뛰어오던 비 오는 날, 며칠 동안 감기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마음만은 하늘을 날 듯 기뻤던 그 순수했던 그때.
대부분 비와 관련된 노래는 감성적인 멜로디와 리듬으로 차분하고도 서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조그만 우산'은 그런 선입관을 보기 좋게 벗어나 그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흐뭇함을 전달해 준다. 떨어지는 빗속에서도 웃음 짓는 장난끼 어린 연인들의 모습들처럼.
그리고 내게도 '피식',
기분 좋은 웃음 한 줌을 슬쩍 건네주기도 한다.
마치 장마가 시작되는 오늘, 무척이나 시원해진 저녁 바람처럼...
작사 : 김경식
작곡 : 김경식
노래 : 김경식
아주 조그만 우산 꼭 받아 든 너의 모습
어지러운 빗물에 그냥 바라보았던
내 여린 맘 비웃고 달아난 저 빗방울 이슬과 같이
그대 우산 위에도 떨어지네
그대 그 미소에 흠뻑 젖은 내 마음에 가득
쏟아지는 빗속에 두 발을 적시고
내 맘 어디에 쉴 곳 있을까 또 찾아보는 내 모습은
이 비가 되어 내려오네
거리에 많은 사람들의 엇갈리는 모습들 속에
멀어지는 네 모습을 바라보는 저민 외로움
내 가슴에 어린 그 마음 간직 할 거야
창문밖에 내리는 비에 그대 오늘 또 생각나
거리 끝 불빛 아래 그대 모습이 보여
오히려 눈에 띌까 난 또 숨어 버리고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뒤돌아서는
마주치는 거리에 그 수많았던 얘기들은
언제나 나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게 하리
이 길 위를 따라 다가오는 그대는 다시 내 앞에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