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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마흔일곱

가을빛 저무는 날, 전제덕(feat. BMK) : 1집 - 2004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너무
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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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부터인가 내 몸 구석구석, 마치 벌레가 기어 다니듯 목덜미에서, 겨드랑이를 거쳐 손목으로 슬금슬금 흘러내리는 땀, 얼음이 가득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커피마저도 금세 미지근해지는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는 요즘의 여름날.


자꾸 옛날이야기를 해서, 혹시라도 '라떼'를 시전 하는 꼰대가 된 것 같아 아쉽지만, 그래도 예전 여름의 날씨는 이 정도까지 곤혹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마치 뭐랄까 이제는 거대한 목욕탕 속 사우나에 몇 시간째 앉아 있는 것만 같이 뜨거운 열기가 목젖까지 올라와 숨이 턱턱 막히기에, 뜨거운 햇살이 온몸을 짓누르는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렵기만 하다.


이런 날씨엔 왠지 정신조차도 멍해지는 순간이 더러 있게 되는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어느 오후 거실에 이렇게 앉아 있다 보면, 지금은 내게서 너무나도 멀리 있기만 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가을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럴 때면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와, 어처구니도 없이 잊고 살아왔다고 굳게 믿었던 그녀와의 기억들도 가을의 눈부시도록 아름답기만 했던 청명함과 함께 떠올라지기도 한다.


더워 죽겠는데,
웬 옛사랑 타령?


2013년 하버드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더운 날씨일수록 사람들은 ‘감정 회상’을 더 자주 경험한다고 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신체의 피로감뿐 아니라 감성도 예민해져, 무의식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시기’였던 과거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인데, 지금 이 폭염 속에서 가을을, 그리고 옛 연인이 떠올려졌다면 그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SNS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여름철 감정 표현이 가장 예민하고 부정적인 경향을 띤다고 밝혀졌는데, 기온이 30도를 넘으면 짜증, 회의, 피로, 슬픔 같은 단어가 폭증하는 패턴을 보였고, 이는 곧 빈번한 '관계의 종료’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무더위 속에 뜬금없이 등장한 어느 가을날 그녀와의 기억에 너무 당황스러워하지 말자.


K-Pop 하모니카 연주의
선구자


오늘 소개할 백마흔일곱번째 숨은 명곡은 하모니카 연주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국내에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높은 수준의 연주와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낸 아티스트 전제덕이 2004년 발매한 첫 번째 솔로 앨범에 수록된 '가을빛 저무는 날'이란 곡으로 최고의 소울 보컬리스트인 BMK가 함께 피처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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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Top 하모니카 연주자이자 재즈 아티스트인 전제덕의 사진들


전제덕은 안타깝게도 생후 보름 만에 홍역을 앓아 뇌의 시신경이 파괴되면서 시력을 잃었다. 이 때문에 그는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이때 들어간 교내 밴드에서 북을 연주하다가 사물놀이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그는 친구들과 함께 사물놀이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게 되고 당시 사물놀이의 최고 놀이패였던 '김덕수' 산하의 사물놀이팀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사물놀이에 심취하던 그는 1996년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벨기에의 세계적인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의 연주를 듣고 나서 하모니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그의 연주에 큰 감동을 받은 전제덕은 투츠 틸레망의 모든 음반을 섭렵하였고, 끝내는 재즈 하모니카를 독학으로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재즈 하모니카 앨범 '우리 젊은 날'을 2004년에 K-Pop에 내놓게 된다. 그의 음악은 하모니카라는 악기의 연주를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고, 1집 이후 재즈 뮤지션인 말로의 음반을 비롯하여 조성모, 조규찬, 이적, BMK, 박상민 등 하모니카 세션 연주를 도맡아 할 정도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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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덕이 선보인 앨범 표지들


그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을 넘나드는 당시 다소 파격적이라고도 불렸던 '하이브리드 소울'이라는 장르를 선보인 2집 'What is cool change'를 2년 뒤인 2006에 발매했고, 2008년에는 리메이크 앨범인 'Anther Story', 그리고 오랜 시간의 공백을 거쳐 2014년엔 3집 'Dancing Bird'를 발표했으며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리메이크 앨범 'And so it goes'를 선보이고 있는데, “Breezin’”, “Englishman in New York”, “Dark Eyes” 같은 곡들이 하모니카로 새롭게 해석되어, 그의 음악은 이전보다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곡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소리가 있는데 바로 BMK (Big Mama King)이다.


BMK(본명 김현정)는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성악을 공부했는데,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재즈 보컬을 익히며 성장했고, 국내 재즈계 거물들과 무대에 서게 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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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솔로 앨범 "No More Music"의 타이틀곡 ‘꽃피 봄이 오면’과 그녀가 보여준 가창력이 점차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이후 "Soul Food"(2005), "999.9"(2007) 등의 앨범을 통해 꾸준한 음악적 존재감을 쌓아왔으며, 2011년에는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여 그녀가 가진 멋진 재능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잔잔하게 가을을
기억하게 하는 노래


노래는 전주 없이 바로 BMK의 보컬과 함께 시작한다. 이 노래에서의 BMK는, 우리가 아는 가창력으로 무장한 높은 성량의 힘 있는 음색이 아니고, 오히려 울컥하는 감정을 꾹꾹 누른 채, 마치 울음을 참고 있는 사람처럼, 나직하게, 천천히, 절제된 톤으로 옛사랑을 그리워하듯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준다.


중간 간주에 울러 퍼지는 전제덕의 하모니카는 이후 BMK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져 마치 말없이 서로를 감싸 안아 주는 듯 말 한마디 없어도, 단지 소리만으로도 감정이 전달될 수 있음을 이 곡은 충분히 증명해 내는 것만 같다.


음악은 그리움을
내게 붙잡아준다


'가을빛 저무는 날'은 크게 외치거나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감정을 데우듯 마음속에 스며들어 가는데, 멀리서 지는 가을빛과 함께 잊혀졌던 내 그리움을 세련되고 모던한 감각으로 그대로 되살려 내곤 한다.


이 음악은 실제로 가을에 들어도 너무나도 좋지만, 특히 오늘처럼 숨이 막히고, 감정이 너무 둔해졌다고 느껴질 때 잊은 줄 알았던 그 이름, 그리고 그 얼굴이 떠올라, 흐릿해지고 무뎌졌던 감정이 내 속에서 나를 다시 깨우는 것만 같다.


이 뜨거운 여름, 지친 감정의 틈 사이로

잊혀졌던 진한 가을빛 하나쯤을 마음속에 들여놓아도 좋지 않을까?




가을빛 저무는 날

전제덕, 1집 - 2004


작사 : 이주엽

작곡 : 전제덕, 정수욱

편곡 : 정수욱

노래 : BMK


가을빛 이렇게 눈부신 날에는

그대여 눈감고 노랠 불러봐요


우리 잊었던 노래가 흐르고

괜시리 바람에 잠기고


빛바랜 나뭇잎 조용히 손을 흔드네


가을빛 저무는 그리운 날에는

그대여 조용히 이름을 불러봐요


우리 잊힌 그 이름 부르면

저 멀리 저무는 하늘엔


추억이 하나 둘 조용히 불을 밝히네


아 고운 햇살은 어디서 나에게 흘러왔는지

아 맑은 바람은 말없이 어디로 다시 흘러가는지


내가 꿈꾸던 모든 시간들

저기 가을빛처럼 저물어가던


그대 빛나던 얼굴 빛나던 모습

아직 내 가슴속에 노래로 남아


아 고운 햇살은 어디서 나에게 흘러왔는지

아 맑은 바람은 말없이 어디로 다시 흘러가는지


내가 꿈꾸던 모든 시간들

저기 가을빛처럼 저물어가던


그대 빛나던 얼굴 빛나던 모습

아직 내 가슴속에 노래로 남아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4IIG56mV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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