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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예순하나

내 쓸쓸한 일요일, 진호 : Mr. 로빈 꼬시기 - 2006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만나는 사람 있어?

'없어'

'아니 왜? 이제 만날 때도 되었잖아?'

'몰라, 그냥 혼자가 편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서로 파편화된 옛 기억의 조합을 맞춰야 겨우 기억이 살아나는 요즘, 5년여 만에 만나게 된 친구와 그동안 소복이 쌓아두었던 이야기 송이송이를 헤집고 있다가, 잠시 숨 고르기를 하던 와중에 친구는 문득 나의 연애 상태를 물었다.


어쩌면 늘 반복되는 질문에 반복되는 뻔한 대답을 하는 나였지만, 너무나 진지하고 또 자세하게 물어보는 친구 때문인지 평소라면 단순히 한두 번의 질답에 끝나는 주제였지만, 이 날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지나온 나의 연애 이야기들부터 지금까지를 설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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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깊은 생각 없이 내뱉는 상투적 문장들이, 한 두 단계만 깊숙이 '푹'들어가 설명하다 보면, 나도 예상치 못했던 나의 심리나 현재의 생각들과는 전혀 다르게 정리되어 있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주제 자체가 좀 껄끄럽기에 굳이 수면 위로 끄집어내고 싶지 않기에 그랬던 것 같다.


대충 얼렁뚱땅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렸기에 친구는 눈치챘는지 잘 모르겠지만, 솔로의 이유로 늘 내뱉었던, '혼자가 편하다'는 합리화에 하나둘 실눈 같은 금이가고 있음을 이날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혼자가 편한 건 가?'


사실 이도 틀린 대답은 아니다. 국내외 연구결과나 설문조사에서 항상 '솔로인 이유'의 상위권으로 반복되는 대답들을 살펴보면, “그냥 혼자 사는 게 좋다/자유롭다”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이나 성별, 국가에 따라 일부 다르긴 하지만, '개인지향·자유 선호', '적합한 상대/만남 기회 부족과 데이팅 앱 피로', '비용·시간·안전 리스크'가 핵심 축이고, 이 세 축의 비중은 국가·성별·연령대에 따라 달리 조합되는 걸 알 수 있다.


어쨌든 친구에게 주저리주저리 온갖 이유들로 치장하다 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
연애하고 싶은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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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r. 로빈 꼬시기' OST 앨범 자켓


오늘 소개할 백예순한번째 숨은 명곡은 2006년 겨울에 개봉한 'Mr. 로빈 꼬시기' OST에 실린 정재형 작곡/작사/편곡, 진호가 부른 '내 쓸쓸한 일요일'이라는 노래다.


Mr. 로빈 꼬시기는 김상우 감독의 장편 데뷔 작품으로 엄정화, 다니엘 헤니가 주연을 맡은 전형적인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이다. 국내 누적 관객수는 67만 명 정도로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고 보기엔 어렵다.


잠시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외국계 M&A 회사 애널리스트 ‘민준’(엄정화)은 “진정한 사랑”을 믿지만 번번이 차이곤 하는데, 최근 이별의 멍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아침, 접촉사고를 내고 보니 상대가 새로 부임한 한국지사장 ‘로빈 하이든’(다니엘 헤니) 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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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겨울 개봉한 영화 'Mr. 로빈 꼬시기'의 주요 장면


냉정한 현실주의자인 로빈은 연애를 “권력 게임”으로 규정하고, 상사와 부하로 얽힌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서로의 연애 세계관에 조금씩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민준은 잠시 로빈의 연애 공식을 따라보지만 끝내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마음의 언어”라는 자신의 신념으로 회귀하고, 로빈 역시 과거 상처와 집착을 내려놓으며 진짜 연인과 사랑의 관계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독특한 것 중 하나는 남주인 다니엘헤니가 거의 영어, 여주인 엄정화가 주로 한국어로 말하지만 서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이중언어 대화’ 설정인데, 생각보다 이게 부자연스럽지가 않아서 굉장히 흥미롭고 또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https://brunch.co.kr/@bynue/123


https://brunch.co.kr/@bynue/158


이 영화의 음악감독은 지난 숨은 명곡 시리즈에도 많이 회자된 정재형이 맡았는데, 그와 영화 OST와의 인연은 1997년 '마리아와 여인숙'으로 올라간다. 이후 그는 '중독', '오로라 공주', '미스터 로빈 꼬시기',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우리 집에 왜 왔니', '쩨쩨한 로맨스',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의 꽤 많은 필모그래피가 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OST 민준(엄정화)의 테마로도 알려진 '내 쓸쓸한 일요일'이라는 노래로 이별 뒤의 공허함, 겨울 도심의 고독을 담아 민준의 외로움과 내적 독백을 강조하는 시퀀스에서 사용되었다.


이 노래를 부른 진호(본명 임진호, 예명 naA)는 2004년 '바람에 오르다'라는 어쿠스틱 밴드를 결성하고 한국 외대, 이화여자대학교 등의 가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 2006년 코다마 한일 가요제에서 창작곡으로 대상을 수상한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진호는 '바람에 오르다'의 활동과 더불어 2006년 손예진, 감우성 주연 SBS 미니시리즈 연애시대 OST의 타이틀 곡인 '만약에 우리'를 불러 K-Pop에 데뷔했고,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는데, 아마 이 드라마에 열광했었던 수많은 청춘들은 이 곡의 전주만 들어도 두 주인공의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었던 연애의 추억들이 생각나 흐뭇한 웃음을 지을 것도 같다.


'바람에 오르다'는 이후 2008년에는 신해철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어쿠스틱 보사노바로 편곡하여 프로젝트 앨범이었던 '인디라디오'에 싣게 되면서 공식 K-Pop에 데뷔하게 되는데, 개인 활동보다는 그룹의 활동을 주로 하며 클래식과 재즈의 아우르는 장르의 노래들을 발표하게 된다.


그녀는 Mnet에서 주최한 보컬 오디션 경연대회였던 '보이스 코리아' 시즌 1에 출연하며 다시금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는데 이때 4강에 오른 유성은과의 첫 대결에서 떨어져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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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진호의 사진들


정재형 특유의 감성적이고 클래식한 피아노의 연주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청초하고 맑은 진호의 보컬이 어느새 나른한 어느 가을 일요일 오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있는 나의 곁에 다가와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다.


진호의 목소리를 잘 듣다 보면 깨끗한 음색 속에 간간히 묻어나는 매력적인 '탁성'을 느낄 수가 있는데, 진성과 가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부르는 그녀의 음악적 기교에 그저 내 입가에는 한없는 미소만이 그득해진다.


추억의 내 상처가 눈물지을 사랑이 될까 봐
난 또 두려워져요


숨겨왔던 내 마음을 들킨 듯, 가사 하나하나가 내 폐부를 찔러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고통이 서서히 익숙해질 때쯤, 어느새 노래에 어우러지고 있는 베이스와 드럼의 느린 비트를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내 마음을 모두 알고 있는 듯, 오늘따라 더 서글프게만 느껴지는 트럼펫 연주 그리고 지나온 기억들을 천천히 하나둘 소환하게 하는 String이 점점 더 무르익어 갈 때, 마치 내게 소리치듯 내뱉는 진호의 그 한마디.


자신이 없어 내가 사랑하는 일
자신이 없어 누군가의 사랑받는 일


그렇게 깨닫게 된다.


'그래, 그저 혼자가 편했던 게 아니라, 두려운 거였어.'


나는.....




내 쓸쓸한 일요일

진호, Mr. 로빈 꼬시기 OST - 2006


작사 : 정재형

작곡 : 정재형

편곡 : 정재형

노래 : 진호


어느 눈이 내리는 밤 우연히 누군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날이 오면


편안한 웃음 가진 따뜻한 눈빛을 가진

그런 너를 꿈을 꾸죠


혹시 바람이 불어와 추억이 날 흔들어도

다신 무너지고 싶지 않아


누구에게 익숙해진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그런 내가 아니기를


눈을 감고 거리를 나서도 조용히 미소 짓는 연인들

행복한 웃음소리에 묻힌 내 쓸쓸한 일요일


나 사랑 믿고 싶지만 기대어 울고 싶지만

추억의 내 상처가 눈물지을 사랑이 될까 봐 난 또 두려워져요


나 꿈을 꾸고 싶지만 내 마음 열고 싶지만

나의 사랑 부담돼 날 떠나갈까 봐 자신이 없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나 꿈을 꾸고 싶지만 내 마음 열고 싶지만

나의 사랑 부담돼 날 떠나갈까 봐 자신이 없어 내가 사랑하는 일

자신이 없어 누군가의 사랑받는 일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BOvtKidPL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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