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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예순넷

왜일까, 윤영로 : 1집 - 1990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힘내, 친구야!


얼마 전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여전히 쉽지 않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친구,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었던 나였기에, 이젠 적당히 무뎌져있을 법한 내 마음도, 초점 없는 두 눈과 다 터져버린 입술로 애써 미소 지으며 나를 반기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그렇게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힘들어하는 친구의 온몸을 부셔져라 꼭 껴안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줬다.


그 어떤 위로도 그의 마음을 치유할 수 없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상실은 또 익숙해짐을 견디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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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 노르웨이의 숲'


가장 감수성 깊었던 나이에 나와 같은 80~90년대의 사회적 문화를 경험해 왔던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존재를 모르기는 쉽지 않다.


사실 우리에게는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책 제목보다 '상실의 시대'로 보다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속에 국내 출판 역사에 길이 남을 마케팅의 전설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원작은 1987년 일본에서 비틀즈 앨범에 실린 노래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를 제목으로 발매되었는데, 이듬해인 1988년 국내에 같은 제목으로 출간했지만 너무나도 저조한 판매량을 보였었고, 1989년 문학사상사가 하루키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은 뒤, 제목을 청춘의 상실감이 두드러진다는 점에 착안해 '상실의 시대'로 바꾸어 새로운 번역/기획으로 출간하자, 첫해 3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지금까지 한국인이 사랑하는 슈퍼 스테디셀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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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상실의 시대(문학사상사), 노르웨이의 숲(문사미디어), 노르웨이의 숲(민음사)의 책 표지들


참고로 2000년 초/중반만 하더라도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설에 대한 조사의 결과 중 언제나 상위권에 등장했던 이 소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교보문고의 '2025 상반기 북로그'에서도 여전히 판매 순위 리스트 안에 포함되어 있어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찐'으로 사랑하는 소설임을 알 수 있다.


2008년 문사미디어에서는 같은 문학사상사 대표였던 임홍빈 씨가 번역한 내용으로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과 일본 원작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잠시 책을 발간하기도 했고, 2013년 문학사상사와의 계약이 끝나자, 민음사가 새로운 번역본을 내면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게 되는데, 원제를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맞는 일이 될테지만, 여전히 내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에서 묻어나는 추억의 향기들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에, 이를 매정하게 놓아버리긴 힘들 것만 같다.


나의 상실을
치유해 주었던 그 노래


오늘 소개할 백예순네번째 숨은 명곡은 1990년 발매된 윤영로 1집에 수록된 김현철 작사/작곡/편곡, 윤영로가 노래한 '왜일까'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이미 숨은 명곡 쉰다섯번째로 소개한 '오늘 여행'이 수록된 윤영로 1집 앨범 앞면 마지막 4번째 트랙에 수록된 곡으로 지난 포스팅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오늘 여행'과 더불어 끝까지 숨은 명곡 선정을 고민했던 작품이다.


https://brunch.co.kr/@bynue/112


이 노래는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듯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붙들 새도 없이 떠나간 사랑했던 사람들이 생각나, 온몸을 짓누르는 그리움에 견디기 힘들었을 때, 따뜻한 손으로 내 축 처진 어깨를 두드려 주던 오래된 친구와도 같이, 난 이 노래로 위로받았다.


사랑했던 친구들, 그리고 나의 아버지.


그래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차분한 윤영로의 목소리가 나의 20대의 상실과 치유를 담은 어느 하루의 시간 한 조각을 천천히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고 지금은 담담하게 그 상실로부터 성장하게 된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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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발매된 윤영로 1집의 앨범 표지


이 노래는 김현철의 초기 작품으로 그의 1~2집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코드 진행과 편곡 등, 그의 어릴 적 순수한 감성이 아주 잘 묻어나 있는데, 그가 작곡한 수많은 히트곡들 속에 내가 가장 애정하는 노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왜일까 낯설지 않은 텅 빈 골목길
아직도 곁에 있는 것 같은 그 모습


상실의 아픔은 마치 기생충과도 같아서,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예고도 없이 심장을 뚫고 나와 우리의 폐부를 찌르고 만다.


어느 날, 처음 와본 어느 동네.

무엇에 홀린 것처럼 들어서게 된 낯설지 않은 텅 빈 골목길,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어렴풋한 그와의 추억.


기억이 점차 선명해지고 또렷해져 조금씩 아파 와 숨을 쉴 수 없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언제나 그랬듯, 우린 다시 치유되고 또 성장하게 될 테니까.




왜일까

윤영로, 1집 - 1990


작사 : 김현철

작곡 : 김현철

편곡 : 김현철

노래 : 윤영로


왜일까 차가운 바람 느낄 수 없는 무뎌진 가슴

왜일까 방안 가득히 흩어진 한숨


왜일까 방금 끄고 또 담배를 무는 답답한 마음

왜일까 별다른 이유도 없는 서글픔


왜일까 낯설지 않은 텅 빈 골목길

아직도 곁에 있는 것 같은 그 모습


지난밤 꿈에 보았던 그대의

많이 야윈 그 근심에 찬 얼굴은 왜일까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gtxC3qZyh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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