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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모 Feb 14. 2024

책혐러도 읽는 책① 청소년 감수성? 오글거려도 괜찮아.

야, 너두 읽을 수 있어!

2. 책혐러도 읽는 책 ① 청소년 감수성? 오글거려도 괜찮아.


여중생 감성에 불을 지피는 k-하이틴 성장 소설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 /탁경은


 누구나 덕후가 되는 중학교 1학년 시절, 밤늦도록 푹 빠져 읽던 소설이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늑대의 유혹>. 그림 하나 없는 노란 표지에 발랄한 폰트로 제목이 적혀진 이 책을 친구들과 돌려가며 몇 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고전 문학 전집은 꺼내도 보지 않더니 손에서 웬 책을 놓지도 않고 읽는 딸의 뒷모습을 엄마는 흐뭇하게 바라보셨지만, 다소 불온한(?) 책 제목을 뒤늦게 발견하곤 이내 당황해하며 책을 빼앗아가셨다. 이에 굴하지 않고 온 집안을 뒤져 숨겨진 책을 찾아내고 밤늦게까지 읽어가던 그 재미를 잊을 수가 없다. 


바로 그 문제작


 2000년대 초반, 작가 ‘귀여니’를 필두로 수많은 여고생 작가들이 쓴 ‘인터넷 소설’이 인기를 얻던 시절이었다. 쉬운 맞춤법도 틀리는 문장력에, 이모티콘에 의지한 감정묘사, 뻔한 신데렐라식 이야기 구성 등 가볍다는 비판을 받는 지금의 웹소설과 비교를 해봐도 문학적으로 훌륭한 소설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10대 소녀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힘입어 몇몇 소설들은 영화화되기도 했고, 작가의 소질을 인정받은 ‘귀여니’는 논란 속에 특례로 대학 입학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야기의 흡입력이나 파급력은 대단했다.


 인터넷 소설로 울고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 바쁘게 현실을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그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 열광하고 두근거리며 다음을 기대하던 중학생 시절이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이야기가 궁금했다기보단 그때 그 시절 ‘여중생 감성’을 다시 맛볼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소설을 검색해서 읽어보았다. 불과 5분이 지난 후, 여중생 감성으로 돌아간 내 모습이 아니라 손발이 잔뜩 오그라든 상태로 미간을 찌푸리며 인터넷 창을 종료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사랑은 추억으로만 남겨둬야 한다고 했던 누군가의 명언에 끄덕이며 그땐 이게 왜 그리 재밌었을까 의아해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 시절 나의 모습을 내가 가르치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무언가에 굉장히 열광하며 돌고래 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는 그들이 어련히 아이돌 오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겠거니 했는데, 한 소녀의 손에 책이 들려 있었다. 바로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이었다.

 표지와 제목부터 여중생 감성이 가득한 책이었다. 알고 보니 문학소녀였던 한 친구가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너무 재밌었던 나머지 몇몇 친구들에게 추천했고 그렇게 입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심지어는 여름방학 자율도서 독후감 숙제로 여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왔다. 그 내용 또한 의미심장했다.     

나는 이 책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올해에 읽었던 책 중 가장 재밌었던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이 나의 인생책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작가님 이런 책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6학년 때부터 책을 손에서 놓았거든요. 그래서 다시 책을 읽으려니 싫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책을 읽을 용기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이 책 내용으로 웹드라마를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ㅎㅎ     
마지막 이야기 다음도 너무 궁금한데 한 장을 넘겼더니 끝나 있어서 너무 아쉽고 작가님에게 ‘그다음 편도 내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머리에 장면 하나하나를 상상하면서 읽으니 더욱 재미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이 너무 어른스럽고 뭔가 흥미가 안 가서 안 읽으려고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친구들에게 추천해주어야겠다.     


 이들의 감상문을 읽던 나는 교과서 속 소설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열광적인 반응에 배신감을 느껴야 할지 기특함을 느껴야 할지 고민했지만, 자연스레 이 소설이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추억하려야 할 수도 없는 나의 중학교 1학년 시절의 모습이 그들에게서 보였기 때문이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기 시작했고 이틀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그 시절 인터넷 소설의 ‘상위 호환 버전’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통하는 ‘여중생 감성’

 모두가 선망하는 남자 주인공 동주가 있다. 인터넷 소설 속 '그놈'들이 돈도 많고 친구도 많고 싸움도 잘하는 일진들이었다면 동주는 수학도 잘하고 소논문 동아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만큼 모범적인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가면 모두가 수군댈 만큼 잘생겼다는 설정은 변함이 없다. 우리의 여자 주인공 서현이는 그런 동주에게 역시나 처음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서현이에게는 영혼의 단짝으로 붙어 다니는 푼수 친구 지은이가 존재한다.


 인상적인 것은 여자 주인공에 대한 설정이다. 대부분의 인터넷 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이 귀엽고 순진한 외모에 어리바리하고 약간의 백치미가 있는 성격이었다면 서현이는 그렇지 않다. 학급 반장으로서 리더십도 있고 입시를 대비해 소논문 동아리에 가입할 만큼 현실적이며 잠깐의 가출도 할 만큼 대범하기도 하다. 왕자님의 간택을 기다려야 하는 신데렐라보다 <speechless>를 부르는 당당하고 능동적인 자스민을 보고 자란 요즘 세대에 훨씬 통하는 여성 캐릭터다. 인터넷 소설에선 큰 역할이 없었던 단짝 친구 캐릭터가 이 소설에선 주인공과 훨씬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고 갈등도 일으켜 청소년기 큰 화두 중 하나인 ‘우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그렇지만 모두의 짝사랑 대상인 남자 주인공이 유독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여자 주인공에게만 꽂혀 일방적으로 고백을 한다는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통하는가 보다. 서현이는 중학생 시절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고백하려다가 실패로 돌아간 경험 때문에 누군가를 선뜻 좋아하기가 두렵다. 그런 서현이가 아무리 거절해도 동주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다가가는 직진남이다. 서현이가 가출을 하면 한걸음에 달려와 위로해주는 로맨틱함도 있다. 이런 동주 캐릭터에 대한 여중생들의 감상은 한 친구의 독후감 속 한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제발 우리 학년에 이런 남자애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 ㅠㅠ’    

  

가상캐스팅까지! 진짜 웹드라마화 되나요?


로맨스에서만 끝나지 않는 ‘성장’

 동주 같은 캐릭터는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산타클로스와 같다는 걸 깨달아버린 30대로서 돌고래 비명을 지르며 이 책을 읽진 않았지만, 대신 서현이를 통해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추억하며 훈훈한 미소를 지을 순 있었다. 주변 인물인 지은이, 아름이 캐릭터는 그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해주었고, 반복되는 일상 중에서도 주변 친구들과의 사건을 통해 성장하는 서현이를 어느새 응원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서현이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생생하고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인물인 현수다. 현수는 방화로 살인을 저질러 소년원에 있는 열아홉 살의 소년이다. 소논문 동아리에서 범죄학을 주제로 소논문을 쓰게 되었고, 서현이는 소년원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속 현수를 인상 깊게 기억하여 자료조사 차 현수에게 편지를 보낸다. 서현이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현수는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었기에 그에 대한 옹호와 신뢰를 담아 편지를 썼고, 처음엔 까칠했던 현수 역시 조금씩 마음을 연다. 현수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자신의 불우한 성장배경과 살인 사건의 뒷이야기를 서현이에게 편지로 털어놓았고 서현이는 ‘소년 범죄자가 되는 데에는 후천적 요인이 크다.’ 는 주장을 담아 소논문을 쓰게 된다. 


 서현이와 현수가 주고받는 편지는 매 챕터 가장 뒤쪽에 하나씩 나온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로만 이루어진 소설인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에서 작가는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현수의 직접적인 목소리와 관련 이야기들은 편지로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현수라는 인물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편지로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의 존재에 대한 위로를 나누고 시야를 넓히며 서현이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그렇다. 나와는 배경도, 경험도, 처한 환경도 다른 누군가를 존재 자체로 이해하는 모습에 독자 역시 성장하게 된다.



엄마와 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청소년 소설

 이쯤 되면, 이 책의 제목인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에 대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서현이는 과연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을 정말로 누구와 나눈 것일까? 이 책의 진정한 남자 주인공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독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테지만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세대를 넘어 엄마와 딸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동주와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현이의 일상적 고민과, 현수와의 편지를 통해 깊어지는 서현이의 내면세계를 함께 따라가며 청소년들은 공감과 설렘을, 어른들은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여나 제목만 보시고 오해한 어머니께 나와 같이 책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다면 기꺼이 어머니께도 책을 권해드릴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는 10대들은 다음과 같은 해쉬태그에 유념하며 책을 읽어가면 좋겠다. 

#첫사랑 #친구관계 #손절 후 회복(?) #부모님과의 갈등 #가출 #마음 성장


 이 책을 읽는 어른들은 아래와 같은 해쉬태그에 공감할 것이다.

#학창시절 추억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진정한 '관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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