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순대국밥 좋아합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그런 당신이라서 항상 새로워.
내가 생각하는 모범적인 행동에 들어맞지 않더라도 상대의 행동에 웃어넘길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이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닌,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신혼 초 첫 생일을 맞이한 때였다. 수업이 밤 10시나 돼야 끝났기에 밤길이 어두웠다. 그런 날 위해 남편은 마중을 나왔다. 마중 나온 것은 물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없다니, 실망스러웠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따뜻했고 집으로 곧장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지만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듯했다. 그의 발걸음이 귀엽게 느껴졌지만 허무한 날로 마무리할 수 없어 결국 먼저 말을 꺼냈다. "내 생일인데 우린 저녁 맛있는 거 안 먹어?" 그에게 특별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연애할 때처럼 평범한 외식이었다. 시간이 늦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간이 늦어서 갈 데가 없잖아. 순대국밥 먹을래?"였다. 시간이 늦어서 갈 데가 없다니, 알아보질 않았으니 갈 데가 없는 것뿐이다. 지하철역 두 정거장만 가도 밤늦게까지 하는 펍 레스토랑들이 있다. 간단하게 치맥을 해도 좋다. 다음날 피곤할 수도 있으니 치콜도 괜찮다. 그가 내 생일인 것을 알고는 있던 걸까? 선물이 없으면 케이크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각 케이크라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 관뒀다. 그래도 어리숙한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이제야 말하지만 난 순대를 싫어했다.
서로 다른 너와 나
기념일이나 생일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달랐다. 그러고 보면 연애할 때도 대부분 선물은 내가 줬다. 연애를 짧게 하고 결혼했기에 챙길만한 이벤트가 별로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챙길만한 게 많았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맞이한 빼빼로데이날 그에게 손수 만든 디저트와 심사숙고해서 고른 옷을 선물해 줬었다. 그는 아주 만족스러워했고 행복해 보였다. 얼마 안 가 크리스마스가 됐고 회사에 갖고 다닐 가방을 선물해 줬다. 처음 받아보는 가방선물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밸런타인데이날 직접 만든 초콜릿을 건넸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이 내게 준 선물은 함께 하는 게임 아이템이었다. 그 후에 우리는 결혼했고 처음 맞이하는 남편 생일날, 맛있는 식당을 예약하고 주문제작 케이크와 커플 아이템을 선물로 준비했다. 그리고 내 생일에 돌아온 것이 순대국밥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구나..'라는 걸 결혼 후에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지나가듯 남편에게 "순대국밥은 좀 충격이긴 했어."하고 말하며 웃었다. 마음에 짐을 주기 위해 건넨 말은 아니었고, 그저 웃긴 에피소드 추억 정도로 건넨 말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함께 하는 맛있는 외식이었다. 그 후 남편은 생각이 많아졌는지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날 티파니 앤 코 목걸이를 사 왔다. 게임아이템만 받아봤던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전에 받은 게임아이템은 스마트폰 기종을 바꾼 뒤 계정을 잃어버려서 수중에 없었다. 그거라도 다시 되찾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새로 받은 선물이 생기다니!
디자인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식상하고 평범했다. 하지만 칭찬받고 싶어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진 남편을 보니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나왔다. 대견하구나, 이렇게 대견할 수가! 연애와 결혼 통틀어 처음 제대로 받은 선물이었다. 선물에 값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저렴한 선물이어도 상관없었다. 나를 생각해서 사 온 것이라는 게 중요했다. 옷에 센스가 없어 보이는 그를 위해 이쁜 니트를 심사숙고해서 고른 것처럼, 허름해 보이는 가방을 보고 챙겨주고 싶었던 그때의 나처럼, 그를 위해 특별한 케이크를 준비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그도 나를 생각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거 살 줄 아는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구입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긴 했다. 이런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듯이 묻기도 전에 장황하게 설명했다. 회사에 결혼한 선배가 "아내에게 티파니 앤 코 목걸이를 사다 주면 분명 좋아할 것이다."라고 말했단다. 남편은 내가 티파니 앤 코라서 좋아했다고 생각했을까? 난 티파니 앤 코가 뭔지도 몰랐다. 정말 단순한 발상이다. 우리는 역시 달랐다. 나의 세심함과 달리 그에게 세심함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난 어릴 때부터 접촉성 피부염과 귀금속 알레르기가 심했다. 그래서 액세서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염과 알레르기는 많이 좋아졌지만 오랜 세월 동안 액세서리를 하지 않아서 하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액세서리 좀 하라며 금목걸이를 선물로 주셨음에도 방치하다가 돌려드리기도 했었다. 결혼식 날에도 웨딩드레스 레이스에 접촉성 피부염이 일어나서 쇄골 밑을 긁으며 괴로워했었다. 남편이 사 온 액세서리는 금목걸이니 귀금속 알레르기와는 상관없었지만 '이 사람은 나와 정말 다르구나.'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내가 기대했던 대답은 "당신한테 어울릴 것 같았어."와 같은 말이었다. 기대했던 말과는 달랐지만 내 생각을 한 것이 있긴 했다. 내 나이를 생각해서 작은 펜던트보다 크기가 조금 있는 펜던트를 골랐다고.. 웃기고 어이없는 말처럼 느껴졌지만 귀여웠다. 나는 선물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도 목걸이를 목에서 풀은 적이 없다. 물론 건강검진받을 때 잠깐 풀긴 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은 액세서리를 보며 "이런 거 사다 주는 남편이라니, 너무 좋다."라고 말하곤 했다. 깊게 파고들면 로맨틱하지 않고 웃기다. 이래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선 속사정을 알 수 없다.
닮아가는 너와 나
서로 다른 너와 나는 닮아가기도 한다. "날 생각해서 선물을 사 왔다니!" 크게 감동받은 내 모습을 본 남편은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 노트북 써보는 거 어때?"라던가, "당신 사진 찍는 거 좋아하니 카메라 보러 갈까?"라던가, 내게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섬세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남편의 제안은 항상 적중했으며 현재는 받은 것이 훨씬 더 많다. 지금도 남편이 선물해 준 노트북으로 브런치에 글을 작성하고 있다.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만, 크게 방해물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포용했을 때 존중받음으로써 상대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