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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제 Jan 11. 2023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는 것 2

그냥 편하게 살면 안 돼?



결혼하기 전부터 그랬다. 공부든, 일이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여야 했다. 정리 정돈하고 말끔히 치워놔도 다음날 제자리에 있지 않은 물건들이 보이면 답답함이 밀려왔다. 딸이 청소를 열심히 하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편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께 치워도 끝이 없다고 느껴진다며 고민을 토로했던 날이 있었다. 나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버지께 잔소리를 했다. "물건 좀 제자리에 둘 수 없어?" 나로 인해 부모님의 날카로운 대화가 오고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두 분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와중에 들려온 아버지의 말, "그냥 편하게 살면 안 돼?" 머리에 차가운 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띵했다. 내가 불편하게 한 것인가? 아버지 입장에서는 내가 갑갑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랐다. 그 뒤로 거실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정리를 하더라도 주로 내 방만 정리했고, 주방은 가끔 설거지만 도와드렸다. 이 생활이 익숙해지니 나 또한 편해졌다. 할 일이 줄어들었고 내 공간에서 내 시간을 더 길게 보내게 됐다. 다만 현관 앞의 방에만 박혀있다고 '문간방'이라는 별명이 생겨버렸다. 나중에는 방을 바꿨지만 나 자체가 문간방이 돼버렸다. 그래도 내가 추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내가 하는 방식이 옳다고만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거실이 내 마음에 드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편안해 보였다. 단점은 있었다. 거실만 보면 여전히 답답함이 느껴져서 방문을 항상 닫게 됐다.




이 경험 때문일까? 남편과 결혼하고 서로 전혀 다른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지만 부딪힌 적이 없다. 하지만 답답함은 여전했었다. 부부라서 방을 같이 쓰기에 방문을 닫고 있는 걸로는 수습이 되지 않았다. 한때는 아이들의 놀이방, 공부방처럼 남편에게 어지르는 방을 따로 만들어줄까 싶었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문간방을 탄생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내가 더 열심히 청소에 매진하는 수밖에. 결국 나는 무릎 염증을 얻게 됐다. 그런데도 남편에게 싫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이게 편한 것이다. 각자 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른데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에만 맞춰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아버지처럼 편안해 보였고,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예의주시하게 됐다. '티슈를 들었군. 뭐 하는 거지? 코를 풀었군. 휴지는 어디에 두는 거지?' 레이더망에 포착된 쓰레기는 나의 머리에 입력되고 보류 상태에 잠시 머무른다. 그리고 집안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어와 휴지통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주 깔끔하다. 그러다 문득 실험을 해보고 싶어졌다. 사용한 치실을 세면대에 둔 것이 레이더망에 포착됐던 날이었다. 처음으로 남편에게 청소, 정리 관련 대화를 했다. "혹시 저 치실은 또 쓰려고 둔 거야?" 남편은 버리는 것을 깜빡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버리겠다고 말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나흘.. 한 달이 됐다. 그렇다. 남편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의 실험은 이만 종료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나의 실험에 대해서 말하며 서로 웃겨서 웃었다. 그날 남편은 잊지 않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치실을 버렸다.


그날 알게 된 것은 남편은 상당히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정리를 며칠 하지 않더라도 지저분함을 느끼지 못한다. 관대함 또한 상상 그 이상이기에 나에게 잔소리를 할 일이 없었다. 나만 남편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남편 또한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남편은 그 생활이 편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관대함을 알게 된 것은 나에게 큰 수확이었다. 이것은 무릎 염증을 계기로 아주 유용하게 쓰이게 됐다.




염증이 생긴 뒤로 무릎을 굽히기만 해도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부은 것이 아닌데 부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통증이 미묘하게 느껴지곤 했다. 욱신거리기도 하고 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리 정리정돈이 중요해도 내 몸보다 중요하진 않아서 나름대로의 휴식을 취했다. 집은 갈수록 난잡해져 가는 것 같은데 아주 편안해 보이는 남편의 모습은 흥미로웠다. 식탁에 식사했던 그릇들이 그대로 있는데 한쪽으로 밀어놓고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나왔다. 이 남자는 아버지보다 고단수였던 것이다.


헌데 사랑이 있어서였을까? 귀여웠다. 그리고 웃겼다. 그런 남편을 몇 년간 보고 살다 보니 나도 같이 동화됐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돼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혼 초에 비하면 아주 발전한 상태다. 바닥에 허물을 벗듯이 놓인 양말과 옷은 유용하기까지 하다. 지나쳐가다가 양말을 집어 들고 던지면 우리 집 강아지 꼬미가 신나게 달려가서 낚아챈다. 널브러진 옷은 꼬미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두다가 결국 내 손으로 치우게 되지만, 상상 그 이상의 관대함으로 잔소리가 없는 남편은 살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주부지만 가끔은 집안일에 소홀할 때도 있다. 이렇게 나의 휴무일은 스스로 만들게 됐다. 내가 남편에게 사랑으로 동화된 것처럼 남편도 나에게 동화됐다. 결혼초 보다 하는 일이 늘어났다. 쓰고 난 그릇은 싱크대에 자연스럽게 두고, 휴지를 쓰고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고 하더라도 몇 시간 뒤에는 스스로 치운다. 그리고 비위가 약한 나보다 남편이 욕실 청소를 열심히 하기도 했다. 또 바닥 청소를 유독 열심히 하는 나를 위해 좋은 청소기를 알아봐 주기도 했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단점만 있지 않았다. 남편은 나의 답답함을 고쳐주는 주치의가 돼줬다. 그리고 난 이제 더 이상 문간방이 아니다.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어도 편안하고, 부모님 댁에 가서 거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더라도 편안하다. 어지럽혀져 있는 먼지 쌓인 골동품 같은 물건들을 보며 '우리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됐네. 말끔하게 청소 한번 해드리긴 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시절이 그리우신지 가끔 청소를 해달라고 하기도 하신다. 지금은 답답하지 않지만, 답답하게 느껴졌던 거실에 앉아 대화를 해보니 부모님 두 분 모두 내가 청소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당시에 청소와 정리정돈에 목매달던 내가 갑갑하게 느껴지기보단 자신들과 다른 딸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것이다. 내가 불편하기보단 아버지는 그 생활습관이 편했을 뿐이다. 다만 불편한 것이 있다면 서로 다른 너와 나를 인정하지 않고 뭐라고 하니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정리정돈에는 아주 느리고 관대한 아버지셨지만 사랑 앞에서는 빨라지기도 하신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던 날, 비위가 약해서 건들지도 못하던 배수관을 새것으로 금세 교체해 주셨다. 한 부분만 보고 불평을 쏟아내느라 몰랐지만 아버지께서는 집안의 다른 부분들을 빠르게 돌봐주고 계시지 않았을까. 겨울이면 창틀에 바람이 들어오지 말라고 스펀지가 붙어있었고, 집안의 형광등은 불이 나가있는 날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땐 오래된 집 천장에 비가 새기도 했었는데 뚝딱 고치셨었다. 아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습관이 조금 느슨해지고 돌아보니 역시 꽉 막힌 조건은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지금 나는 주방 식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을 적고 있고, 옆으로 보이는 거실에는 인형과 공 2개가 규칙 없이 놓여 있다.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이 편안하다. 레이더망에 포착되긴 했지만 보류다.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으니 언제든 하고 싶을 때 정리하면 된다. 오늘 할 일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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