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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제 Jan 05. 2023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는 것 1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파산이야!




계획형인 나는 결혼 초부터 재정 관리에 관심이 많았다. 지출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원하는 바를 조금이라도 빨리 이룰 수 있다. 반면 남편은 즉흥적이었다. 많이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였는데 한 달이 지나면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났으니 트러블이 일어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시어머님 생신이었다. 남자는 결혼하면 효자가 된다는 말을 들어봤는가. 들어보기만 했지, 겪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경험하게 됐다. 돈을 모으기 위해 경조사 지출 금액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나의 의견과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남편의 의견이 부딪혔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지출하면 우리는 파산이야!" 적극적으로 남편을 설득시켰지만 나의 의견은 통하지 않았다. 시부모님 모시고 식사를 하고 선물을 건네어드린 순간, 남편은 옷 안에서 미리 준비된 봉투를 꺼내 건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은 생전 이렇게 용돈을 드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왜 결혼하자마자 이러는 걸까? 마음속에 화가 들끓었다. '이미 외식 비용에 선물까지, 지출이 큰데 용돈까지? 효자 남편 납셨네. 그래, 마음껏 쓰고 알거지 되자!' 속으로 외쳤다. 봉투에 대체 얼마를 넣은 걸지 궁금했다. 어쩌면 화를 내기 위한 궁금증이었을지도. 시어머님은 나의 궁금증이라도 해결해주듯이 봉투에서 돈을 꺼내 보이며 "많이도 넣었네, 너희 돈 많나? 이렇게 많이 쓰면 어쩐다.. 고맙다."하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님의 온화한 표정을 보니 남편에게 차오르던 화가 조금 내려갔다. 그런데 예상 밖의 상황이 일어났다. 헤어지기 전 시어머님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셨다. 그리고 첫 용돈이라며 주셨다. 봉투는 남편이 드린 것보다 훨씬 두꺼웠다. 시어머님은 그런 분이셨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생각 이상으로 항상 고마워해주셨다. 그리고 사랑은 내리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었다. 드리는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이 우리에게 되돌아오곤 했다. 남편은 돈봉투에 관심이 없었다. 저축을 하든, 필요한 것을 사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늦은 밤 차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방에 들어있는 두둑한 돈봉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한 남편에게는 배신감이 들었다. 이 배신감은 몇 달이 가도록 마음속에 머물렀다.




몇 달이 흘러 친정어머니의 생신을 앞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니까 이번에는 나의 재정 계획대로 흘러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보다 약소하게 해 드리게 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출 계획을 체계적으로 잡아갈 수 있는 시작을 하게 된다. 결국 내 뜻대로 되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일인 셈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갖고 싶은 것이 아니면 무엇을 드리든 좋아하는 분이 아니셨다. 상의 하에 어머니를 모시고 원하시는 의류 매장에 방문하게 됐다.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가 아니었기에 가격대가 어느 정도인지 예상하진 못 했지만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나 생각했다. 어머니는 여러 벌의 재킷을 걸치며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셨다. 그리고 가격표를 보는 순간 '이를 어쩌지?'라는 생각이 물밀듯이 흘러내렸다. 가격표에 '0'이 몇 개가 붙어있는 건지 내가 잘못 본 건가? 당황스러웠다. 재킷은 고급스럽고 예뻤다. 하지만 시어머님 생신 때 그렇게 쥐 잡듯이 남편에게 잔소리를 했는데 우리 엄마가 이럴 줄이야. 당혹스러운 마음과 함께 남편 얼굴을 바라봤다. 남편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말했다. "이게 마음에 드시면 이거 사시죠, 어머님."





남편은 어떻게 그리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걸까? 예전에 내가 했던 행동은 잊은 걸까? 이번에도 예상밖의 상황으로 체계적인 지출 관리를 해야 한다는 나의 의견은 현실로 이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 삶 속에서 꽉 막힌 조건은 스트레스만 안겨줄 뿐이다. 남편은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어머니 생신이니 아들 노릇 제대로 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을 내가 몰라줬던 것은 아닐까? 그다음 해부터 남편은 나에게 생신 선물이든 용돈이든 자긴 그런 거 안 챙겨봐서 잘 모르니 알아서 해달라고 했다. 어쩌면 한 발자국 물러서서 내 뜻대로 해보라고 양보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된다는 것은 더 어려웠다. 계획적인 지출 아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 감사를 표현하기에 선물이든 용돈이든 감사한 마음에 비하면 부족함이 느껴졌다. 더 지나 보니 당신과 나를 위한다는 재정 계획이 어쩌면 '나'만을 위한 계획이 아니었나 싶었다. 결혼이란 이렇게 상대방을 바라보고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경험이 많았다. 이해와 배려는 한순간에 얻게 되는 것이 아닌 경험으로 쌓이게 되는 것들이었다.


이제 곧 설날이 다가온다. 양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과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남편에게 받은 양보는 고마웠는데 역시 내 뜻대로 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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