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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진 Feb 14. 2022

달달한 커피 한 잔, 빵 하나, 눈물 약간

가끔씩 고향을 알 수 없는 우울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면 지독한 자기 연민과 무기력증에 빠지고 도피하게 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이틀 전에 본 시험은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받아 목표치를 달성했고, 오랜만에 할머니 댁에 가서 요양했다며 책도 읽고 안마 의자에 한 시간이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극적인 음식도 먹고 잠도 푹 잤다.


그랬는데 갑자기 오늘 기분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수많은 평가가 내 앞에 끝없이 줄지어 있는 것 같았고 내 스스로는 경쟁력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파란색으로 서서히 잠식되었다.


뭔가를 하기 싫은데, 그럴만한 마땅한 이유가 없어서 유효기간 한 달을 남기고 3차를 맞았다. 1,2차 때 정말 아팠어서 이번에도 그런 핑계를 기대했으나 용량을 반으로 줄여서 그런가 멀쩡했다. 그래서 집에 오는 길에 아주 단 커피와 빵을 샀다.


칼로리 걱정에 커피는 언제나 아메리카노였고, 밀가루를 안 먹겠다며 3주간 빵을 먹지 않았다. 달디단 커피와 빵은 오랜만이었다. 그리웠던 맛을 복기하며 엄마한테 오늘 왠지 우울하다고 말하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냥 주르륵이었다. 이게 무슨 궁상인지. 엄마는 날씨 때문이라며 오늘은 그냥 자라고 했다. 엄마 딸 어제 12시간 잤는데...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아졌다. 자신감이 넘쳐 무엇이든 할 것 같은 상태는 아니지만, 잔잔한 푸른 빛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갈 순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슈가파워란 이런 것일까. 갑자기 나온 눈물은 감정의 이물질을 씻겨줬나 보다.


사실 나는 내 우울을 꺼내는 것을 싫어한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긴커녕 두 배가 된다고 생각하고, 패션 우울처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감춘만큼 다른 사람들도 감추고 산다고 생각하면 요즘 세상에서 이 정도는 정상치처럼 느껴져 조금은 괜찮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나보다.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단 걸 먹고 한 번 우는 게 더 좋은 해결책이라는 걸 느꼈다.


우울의 영역이 참 넓어진 것 같은 요즘이다. 무조건적으로 적대할 아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 있다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아지면 좋겠다. 딱 그 존재를 인지할 정도로만.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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