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의 저녁 8시의 산책
그런 순간이 있다.
나는 이 세상의 너무나도 작은 부분이며,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무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발견하거나, 실패한 인간 관계를 겪었기 때문이 아니다.
조금 선선해지는 날씨에 고조된 감정이 주는 냉정함이랄까?
오늘 하늘이 참 예쁘네, 바람이 서늘하구나 라는 주관적이지만 대체로 공감하는 서술처럼 말이다.
'나는 아주 작은 부품이구나. 특별할 게 없는, 흔하디 흔한 존재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다른 세계에서 떨어지는 한 인물을 기다리는 세상, 내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쥐락펴락하는 세상. 약간은 유치하지만 원래 클리셰는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완전히 다른 세계.
... 그렇다. 나는 심각한 로판 중독자다.
사실 어젯밤에도 내내 로판을 읽었고, 오늘은 판타지 드라마를 봤다.
뭐 근데 내 취향 고백을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고!
워낙 감성이 촉촉해지는 망상을 좋아하는데, 약간의 자기 연민은 훌륭한 망상의 근원이 되고, 또 이렇게나 좋고 선선한 날씨는 자기 연민을 불러온다.
즉, 일년 중 찰나인 이 날씨는 나의 촉촉한 망상을 할 최적의 환경이다.
이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만원 지하철을 타고, 다시 만원 버스를 탄 뒤 녹초가 된 채 집에 왔음에도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했다.
보통은 내가 느끼는 이 센치함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노래를 들으며 산책을 했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그냥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작은 강아지는 앞으로 제대로 나가지 않고 비슷한 자리를 맴돌며 아주 천천히, 반복적으로 바닥에 코를 대며 걷는 둥 마는 둥했다.
강아지 때문에 산책로 한 가운데에 발이 묶인 일상에 뻥 뚤린 귀라는 비일상이 만나니, 산책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어떤 중년 여성은 강아지 유모차를 끌며 본인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그 내용은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 우리 엄마가 할머니와 하는 통화와 완전히 같았다!
그 뒤 들리는 소리들은 모두 새로울 것이 없는, 아주 익숙하고도 흔한 소리들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외마디 짧은 탄성과 발자국 소리, 독서실 가기 전에 잠시 휴식을 갖는 중고등학생들의 불만은 과거의 내가 냈던 소리들과 같았다.
사람들이 적은 곳에 가니 풀벌레들은 각자 자신들의 목청을 키웠다. 그 소리를 나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도 오늘과 똑같이 나는 듣기 좋은 소리라 생각했다. 분명 그때와는 다른 벌레들이었을 것이다.
그 소리들을 듣자 다른 세계를 상상하던 나는 지구에 딱 붙게 되었다. 지구는 원래 주인공이 없는 세상이니까.
모두가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고, 비슷한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그런 세상이니까.
나의 일상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원래 이곳의 삶이라 누가 알려주는 것 같았다.
흔함은 적응의 증거이며 작은 부분 하나 하나가 쌓이는 것이 인생이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으며.
아주 작고 흔한 부품은 누군가에 의해 제거되고 대체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어디서든 통용되고 융화될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나의 망상은 이렇게 짧게 끝나버렸다. 중력을 느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