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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지혜 Oct 16. 2021

유리고양이를 위한 츄르 만들기 : 심리검사

내 안의 목소리

안녕! 너무 뜸했다, 그치?

실은 나름의 감정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조금 걸렸어.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고 마음을 정리하기도 조금 벅찼던 것 같아.

이런저런 바쁜 일이 있었던 것도 맞지만.

그럼 지금은 소용돌이가 끝나고 명쾌해졌느냐? 그건 아니야.

여전히 잘 모르겠고 혼란스럽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니까 다소 진정됐다고 할까.


전에 예고했던 대로 심리상담을 다녀왔어.

내가 찾은 상담센터의 특성상,

각기 검사를 진행하되 같은 상담선생님을 원했던 요청상,

격주로 진행했어.

고양이 퍼스트, 집사 세컨드.


고양이는 진작 병원에 다녔어.

가장 최초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게 벌써 10년 전이라고 하더라.

우울증이 심각하고 오래되면 인지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대.

그래서 고양이는 인지검사와 정서검사를 함께 권유받았고 나는 정서검사만 진행해도 되겠단 이야길 들었지.


첫 주에 고양이가 먼저 검사를 진행했어.

네 시간 꼬박 들더라.

검사 과정 전부를 임상상담사가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등

온전히 내담자에게 집중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동시에 두 명을 진행할 수는 없다고 해.

그저 효율이 최우선인 내 입장에선 심리검사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왜 동시에 진행할 수 없느냐'라고 물어봤었지.

단순한 페이퍼에 응답하는 수준의 검사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전혀 아니더라고!


선생님은 고양이 상담에 따라온 집사까지 함께 앉혀두고

검사의 기본적인 형태에 대해 친절히 일러주고

심리검사를 결심하게 된 동기 등을 물었어.

증상이나 호소하는 내용을 보면 도리어 고양이 쪽에서 먼저 제안했을 것 같은데, 뜻밖에 집사가 먼저 하자고 해서 온 것도 놀라워하시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래. 내가 필요해서 온 게 맞았던 거야.

지쳤던 거지.


고양이 검사 1주 뒤에 나도 검사를 진행했어.

나는 꼬박 세 시간이 걸리는 정서검사를 받았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그림도 그리고 설명도 하고 질문에 대답도 하는데

생각보다 말문이 턱턱 막히는 경우가 많았어.

떠올려보지 않았던, 간과했던 대목들과 마주해야 하고

선뜻 떠오르지 않는 답을 내 안에서 찾아 대꾸하는 것이

꽤 곤란하고 괴롭기도 했어.


상담의 말미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상담은 본인이 본인의 말을 듣는 과정이라고도 하거든요? 어떠신가요?"

그제야 짧은 탄식이 터지며 알아챘지.

상담 내내 아주 고요하던 마음에 파도가 일렁,

눈물이 탁 터지더라고.

"제가 이미 신랑을 원망하고 있었네요."


원망하게 될까 늘 두려웠거든?

원망하면 안 된다고 되뇌며 지냈고.

그런데... 이미 원망하고 있던 거였어.

이해가 잘 안 되니까

처음 한두 달이야 버텼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마음이 검게 타들어갔던 거야.


그제야 알았어.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굳이 심리검사를 감행한 이유.

내가 힘들어서, 더는 참기가 힘들어서 그랬던 거지.

해결하고 싶었던 거야, 이제는.


원망해도 괜찮다고, 그거야 집사의 마음이니까 느끼는 그대로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위선과 마주한다는 건 버거운 일이야.

애써 모른 체 하던 감정의 실체를 알아차리는 것도

마냥 개운하지만은 않고.


으아! 벌써 한 달 전 일인데

정리하며 글을 써 내려가니 괜히 눈물이 난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을게.

차근차근 앞으로도 찾아올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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