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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지혜 Feb 05. 2022

생활기스 물건일기

알커피

  나는 극한의 가성비충이다. 지출하는 값 대비 최선의 이익을 누리려는 일종의 욕심이다. 그런데 그 가성비에는 주관적인 기준이 커서, 누구도 내 가성비를 대신 따져줄 수 없다. 무조건 최저가라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값을 조금 더 주더라도 내가 원하는 조건들을 충족한다면 그게 더 좋은 소비다. 물론, 그 범주 안에선 10원이라도 제일 싸야만 하고. 최근엔 이런 소비패턴을 가리켜 '가심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안도하면서도 결국 내 가심비는 누구도 대신 알아주지 않아서 여전히 성가시다.

  이 가성비는 비단 '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 노력, 체력 등 모든 조건을 따져서 도출된 최선의 효율을 말한다. 잠깐 외출할 일이 있더라도 한 번에 최적의 동선을 짜야만 한다. 나간 김에 평소 하고 싶었던 일들을 순서대로 처리하고, 그 동선의 영역 내에서 가능한 한 최선의 만족을 누리려 애쓴다. 습관적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계획하고, 따른다. 일부러 계획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리 한다.


  예전에는 일할 때 주로 그런 성미가 도드라졌다. 효율이 좋고 조바심이 나는 만큼 손이 빠르니 득인 경우도 많았다. 문제라면 요즘이다. 최근엔 매사가 그렇게 변해가는 기분이다. 그런 성미가 점차 강화되는 것 같다. 점점 더 강박적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결정한 일임에도 무언가 놓치거나 흘린 게 있을까 봐 확신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직감에 의존해 내리던 결정들에 자신이 없어졌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행복할 기회는 많은데 욕심이 많아서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가만히 누워 죽은 듯 눈 감고 싶었다. 그런 기분이 차츰 변모해 이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누워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이 지겨운 가성비 충은 이런 걸 생각한다. 웅크려 엎드리려면 무릎이 배길 텐데, 바닥이 폭신하면 좋겠다. 습관처럼 효율을 따지고야 마는 것이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괴롭단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셨다. 귀찮을 때 가끔 이용하는 알커피를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휘휘 저으면 크레마처럼 하얀 거품이 올라오는데, 착시다. 그냥 거품이다. 금방 꺼져 내리고 아무 맛도 안 난다. 고소한 맛도 없고, 요상한 신맛만 나는 검은 물. 카누 정도는 골랐어야 했는데 어쩐지 집 앞 슈퍼에선 병으로 된 맥심 알커피를 판다.

  고소하고 쌉쌀한 커피는 나름 꾸준히 소비하는 내 기호식품이다. 카페에 가면 고민 없이 아메리카노를 고르고, 하루에 몇 잔을 마셔도 싫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에 비해 집에는 그와 관련된 용품이 하나도 구비되어 있지 않다. 가성비를 따지는 성미에 밀려난 것이다. 일일이 커피콩을 사다가 갈고, 내려먹는 일이 귀찮았다. 우리 집엔 커피 드립퍼도 없고, 캡슐머신도 없다. 모카프레소는 고사하고 액상커피농축액도 없다. 우연히 베트남 MOU 행사장에서 얻은 커피핀 하나가 유일한 커피 인프라의 전부다. 


  처음 병에 든 알커피를 샀던 건 무척 충동적인 일이었다. 커피는 마시고 싶고, 평소 먹던 알커피는 팔지 않고. 무심코 들린 집 앞 슈퍼에서 제일 싼 커피를 집었다. 맥심 아라비카100 커피. 나름 아라비카 원두면 괜찮지 않을까, 안일한 생각으로 큰 고민 없이 샀다.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구입했고 처음 마셔보자마자 후회했다. 입에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서.

  그럭저럭 아이스커피로 다 소진한 날 해냈다는 기분으로 뿌듯했더랬다. 그리고 몇 달 뒤, 신랑을 심부름 보내며 무심코 알커피도 사다 달라고 청했다. 당연히 머릿속엔 카누 따위가 들어있었는데 전하지 않았다.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온 신랑 손에는 맥심 아라비카100이 들려 있었다. 너무 웃겨 박장대소했다. 가성비 따지려다 결국 알커피 한 병을 새로 얻은 꼴이라니. 머리를 안 썼더니 이런 역풍을 맞았다.


  알커피를 타면 너무 맛이 없어서 한 잔을 채 다 못 비운다. 결국 가성비 따지려다 효율은 내다 버린 셈이다. 그나마 대강 얼음에 타서 물인지, 커핀지 분간 안 되는 형태로 마실 때면 몰라도 뜨거운 상태의 알커피는 정말 최악이다. 그런데도 나는 알커피를 마신다. 왜? 사다 놨으니까. 집에 있으니까.

  커피잔을 든 채 인상을 쓰고 있다가 웃음이 났다. 극한의 가성비충의 말로 같은 기분. 그렇게 골머리 썩도록 욕심 내더니 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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