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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ia Jul 15. 2022

권태를 마주하는 법 - <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크리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권태를 느낀다. 권태란, 관심이 없어지고 시들해져서 생기는 싫증이나 게으름을 뜻한다. 이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관심을 잃고 싫증을 내기도 하고, 일상의 가치에 회의를 느껴 이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소설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인물들은 그들의 삶에서 권태를 느끼고,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권태를 다루는 그들의 태도에 따라, 인물들은 권태로부터 벗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권태에 빠지기도 한다.



안은 그녀를 둘러싼 일상에 권태를 느낀다. 안에게 일상이란, 피상적이고 가식적인 겉치레이자 그녀를 속박하는 대상이다. 그녀의 일상은 부유하고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폐쇄적이다. 이러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안은 쇼뱅과의 불륜을 택한다. 그녀는 쇼뱅과 어느 연인의 살인 사건을 재현하며 절대적인 사랑을 구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안과 쇼뱅은 서로에게 그 여자와 남자에 불과하다. 타인의 사랑에 기대어 정당화하는 관계에서 그들은 온전한 자신일 수 없기 때문이다. 둘의 만남에서 빠지지 않는, 취할 때까지 마시는 포도주 역시 그들의 관계가 부정하고, 맨정신으로는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며 끝나는 그들의 사랑은 자칫 절대적 사랑의 완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타인을 빌려 불륜을 마무리하는 비겁한 종말에 불과하다. 가식적이고 피상적인 일상에 권태를 느껴 변화를 꾀하지만, 그 변화 역시 피상적이고 거짓된 관계라는 점에서 안은 권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안과 쇼뱅이 해석한 연인들은 여자의 죽음을 통해 극도로 정열적인 사랑의 순간을 영원히 고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사랑의 최후를 단순히 절대적인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으로 여길 수는 없다. 연인의 최후와 최후까지의 과정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쇼뱅, 즉 그에 따르면, 어느 순간부터 남자는 여자를 전과 같은 시선으로 볼 수 없다. 정열적인 사랑의 시작과 달리, 남자는 연애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복종하며 그녀가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을 지속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 때 두 남녀의 관계는 상호성을 잃었으므로, 사랑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의 죽음이란, 자신의 권태를 숨기고 여성을 괄시한 남성의 폭력과, 그에 순응한 여성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들은 온전한 사랑이 아닌 사랑을 시작할 때의 자극적인 감정을 추구했다. 따라서, 죽은 여성을 애무하는 남성의 감정은 애틋함 보다는 일시적인 상실감에 가까울 것이다.. 권태 이후의 사랑을 그리기보다 권태 이전의 자극을 그리워했다는 점에서 연인은 권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는 기성 사회가 만든 보통의 기준에 권태를 느낀다. 기성세대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필수라 여기는 음악 연습, 음계 연습,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아이에게 따를 이유 없는 강요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이는 권태로운 보통의 기준에 저항한다. 스스로 강요받는 대상을 이해하면서도 모른 척하고, 작은 발을 마구 비비며 자신의 답답함과 분노를 표현한다. 소나티네를 완벽히 연주하는 장면에서 아이는 보통의 기준을 따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이는 이내 피아노를 그만 배우고 싶다며 엄마를 조른다. 이로써, 당시의 아이는 보통의 기준에 순응했다 기보다 보통의 기준이 가지는 매력에 순간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는 수없이 보통의 기준을 배우면서도 금세 이를 잊는다. 따라서, 아이는 권태로운 대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오히려 권태에 주체적으로 저항하고 쉽게 벗어난다.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소설의 주인공 안과, 그녀의 상상이 만든 연인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들은 보통의 빠르기, 즉 익숙한 것들에 권태를 느끼지만, 이를 직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권태로운 대상과 비슷한 대상으로 도피하거나,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권태에 순응한다. 한편, 아이는 스스로 느끼는 권태를 직시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한다. 이러한 아이의 자세는 아이는 권태의 대상인 보통의 기준과 직접적으로 대립하고 권태로운 상황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권태는 가장 익숙한 보통의 것에서 비롯된다. 피할 수 없는 권태를 대하는 자세에 따라, 우리는 보통의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살아갈 수도, 보통의 빠르기를 노래하듯이 살아갈 수도 있다. 소설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권태를 마주하는 인물들의 태도를 통해 능동적인 삶이 지니는 가능성과 수동적인 삶이 만들어내는 권태의 굴레를 동시에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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