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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ia Jul 15. 2022

아름다워야 사랑이라면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은 자기 파괴적이다. 사랑은 고독하고, 사랑하는 서로를 구속한다. 이는 사랑의 현실이다. 소설 속 로제가 말하는 ‘자기’의 의미처럼 사랑은 상대를 나만큼 소중히 여기는 상태를 의미하는 듯 하나, 실제로 사랑은 상대가 나를 동일시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서로는 결국 다른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이다. 애착을 느끼는 이의 뜻이 나와 같기를 원하고, 그러나 내가 아닌 이로부터 나의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으로써 사랑은 아름답기보다는 외로운 자학 행위이다.



작품에서 폴, 로제, 시몽은 각자 사랑을 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과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자기파괴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사랑은 비슷하다.



폴은 로제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창녀와 만나는 그로부터 외로움을 느낀다. 그녀는 로제를 사랑하며 얻은 공허함을 시몽을 사랑하며 채운다. 로제를 사랑할 때와는 달리 폴은 시몽으로부터 열렬한 관심을 얻는 한편, 로제와의 관계가 주었던 안정감을 갈망한다. 결국 그녀는 시몽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로제에게 돌아간다. 폴에게 로제와의 관계, 시몽과의 관계는 모두 자학이다. 로제를 사랑하는 상태로 그에게 얻은 권태를 시몽의 관심으로 채우고, 시몽과의 관계에서 얻지 못한 안정감을 위해 다시 무심한 로제에게 돌아가는 그녀의 선택은 어떤 충족감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기 파괴적이다.



로제는 폴을 사랑한다. 그는 폴과의 관계에 깊이 의지하고, 그녀에게 강한 애착을 가진다. 그러나 반대로, 그는 관계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고, 이를 위해 창녀들과 가벼운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관계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그의 욕구를 상대에게 표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한 욕구 불만족과 상대에 대한 애착이 상충한다는 점에서 폴과의 관계는 로제에게 자학이다. 한편으로, 로제가 창녀들과 맺는 부정한 관계 역시 자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시몽과의 관계에서 폴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폴을 사랑하는 상태로 다른 이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에게 죄책감이자 불안함으로써 자기 파괴적 감정을 안긴다.



마지막으로 시몽은 폴을 사랑한다. 그는 폴의 외로움을 파고들어 자극하고, 자신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폴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는 그의 시도는 오히려 로제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자극하고, 그녀가 옛 연인에게 돌아가도록 한다. 폴 앞에서 그는 자신감 넘치는 젊은 연인이고 싶어하지만, 폴이 여전히 로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불안하다. 자신의 구애와는 관계없이, 언제든 끝이 날 수 있는 관계에 열정을 쏟는 그의 사랑은 일방적이고, 그래서 자기 파괴적이다. 상처를 각오하고 사랑하는 듯 하나, 실제로는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매 순간이 불안한 관계를 지속한다는 점에서 시몽의 사랑은 자학적이다.



사회가 모성애에 생명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듯, 우리는 이성애에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책임을 부여해왔다. 이에 따르면 사랑은 응당 아름답고, 마땅히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랑은 아름답다 라기보다는 잔혹하다. 작품 속 세 사람의 사랑은 사랑하는 개인에게 한없이 잔혹한 사랑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들의 관계는 그들이 서로에게 행하는 어지럽고 결백하지 못한 마음 역시 사랑이라고 말한다. 세 사람의 사랑은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지는 않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다. 아름답지 않아서 사랑이 아니라면, 세상에 사랑일 수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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