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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Apr 15. 2023

내 사랑 순이

순이와 함께 한 시간들


우리 집 반려견의 이름은 순이다. 2006년도에 태어났으니 지금은 고령견이다. 얼마 전에 폐에 물이 차 기침을 쉴 새 없이 하는 바람에 애를 태운 적이 있었다. 나이 들어 정신과 몸이 약해지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순이도 나이가 들면서 눈에 띄게 쇠약해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나마 몇 개 남아 있는 이로 간식과 밥은 잘 먹지만 씹어 먹는 게 영 불편해 보인다. 그래도 먹고 싶어 하는 순이를 보면서 식욕과 소화력에 문제는 없어 보여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의 생활은 나이 들어 힘겨워하는 순이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밤에 적어도 두세 번은 일어나 돌아다니는 순이때문에 밤잠을 설친지 일 년이 넘었다. 순이 혼자 스스로 누워 잠을 못 자게 된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깊은 잠을 자본적이 없고, 밤부터 새벽까지 연달아 숙면을 취해 본 적도 없다. 남편은 한번 자면 세상모르고 코 골면서 자는 사람이라 자신의 코 고는 소리 땜에 순이가 일어나 우리를 찾는 소리를 못 듣는 듯하다. 잠귀가 밝은 나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순이 있는 곳으로 가서 순이가 다시 잠이 들 때까지 옆에 있어 주다가 안아서 재운 후 잠을 자러 간다.


잘 들리지도 않고 잘 보이지도 않아 걷다가 여기저기 쿵쿵 벽에 부딪치는 순이를 위해 거실에 충돌 방지용 쿠션을 설치해 놓았다. 치매 걸린 사람처럼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해 아무 데서나 보는 순이에게 과연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고, 소리를 듣고 가족임을 알아차리는 영리함은 식욕과 대소변을 보는 본능뒤로 숨은 듯 하다.


소변 패드가 아닌 매트위에 오줌을 누고 밟고 다니는 순이는 알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며 치워줄때까지 불안해하며 걸어다닌다.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들이 잘못된 것임을 아는 눈치이다. 나는 순이를 탓하지 않는다. 어쩌다 똥을 밟아 놓은 매트는 똥 범벅이 되어있고, 그것을 치우고 닦는데 무려 30분이 걸린다. 그런 후 순이를 씻긴다. 어떤 날에는 씻긴 발을 드라이어로 말리는데 순이가 평소와는 다르게 얌전하게 기대어 있어 쳐다보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발을 얼른 말린후 순이를 이불 위에 눕혔다.

퇴근 후 이런 처리들을 다 하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제사 나는 저녁밥을 차려 먹기 시작한다. 스스로 누워서 잠들지 못하는 순이는 누군가가 안아줄 때까지 걸어 다닌다. 잠이 쏟아져도 비틀거리며 이리저리 술취한 사람처럼 돌아다닌다.


일년 넘게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외출도 자제하면서 순이에게 바치는 시간과 노력 때문에 괴롭냐고? 절대 아니다. 똥을 매트 위에 처발라 놓던 오줌을 발로 밟고 다니든 간에 나는 순이를 사랑한다. 17년을 같이 살아온 순이는 나의 가족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 품에 안겨 잠자듯이 우리를 떠나길 바랄 뿐이다.

고령의 순이를 돌보면서 사랑을 알게 되었고 베풂이 뭔지, 도움을 주는것이 뭔지 알게 되었다. 순이가 깔고 자는 이불 위에 싸놓은 오줌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세탁기를 돌려야 하지만 꼬부랑 할머니로 변한 순이는 여전히 내 자식처럼 느껴진다. 순이와 같이 살면서, 사람보다 더 빨리 나이 들어가는 순이를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언젠간 올 그 날까지 순이를 보호하고, 편안함을 주며 곁에 있어주는 것이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순이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나는 순이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는 나 자신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순이를 키운 이후 나의 내면은 성숙했다. 참는 법,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웠다. 나를 양보하고 우선권을 가족에게 들 수 있었던 것도 자식 같은 순이를 키운 이후 더욱 커졌다.


부족한 밤잠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눈을 붙이면서 보충한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순이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쉬는 일요일 외출도 순이가 잠든 시간을 이용해 잠깐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환자를 돌보는 게 나의 직업이듯, 나는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내게 주어진 이번 생의 임무라면 나는 두말 않고 하겠다. 강아지든 사람이든 나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달려갈 것이다. 순이는 그런 면에서 나의 운명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끔 해준 소중한 존재이다.


순이랑 함께 하는 동안 책임감이란 게 뭔지를 알게 되었다. 끝까지 순이를 책임지는 모습을 나의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버려지는 반려견들이 많은 요즘 강아지의 일생을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 결코 쉽게 생각해선 안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장난감처럼 사서 키우다 병들고 귀찮아지면 버리는 일들이 일어나선 안된다.


나보다 더 늙어버린 순이는 함께 살아온 가족의 얼굴과 목소리를 잊었을 수도 있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모습을 일 년 동안 본 적이 없다. 한방향으로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늙고, 정신이 맑지 않은 순이는 17년 동안 같이 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할지언정 우리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다. 조금이라도 우리 가족을 위해 더 살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순이에게 애정을 쏟게 된다.


순이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동물에 대해 무관심했을 테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을 것이다. 순이가 나를 깨우는 새벽 서너시, 나의 잠을 양보하고 이른 새벽을 순이에게 봉사하면서 나의 성장도 도울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에 따른 희생이 뒤따르고 안 좋은 일에는 그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 불시 점검처럼 밤과 새벽에 수시로 나를 깨우는 순이를 통해 귀중한 새벽 시간을 얻었다. 그 시간동안 많은 책을 읽었으며 글을 썼다. 세상은 공평하다. 위기만 내게 존재하는 건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반려견 순이와 17년을 같이 살면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추억들이 거실의 벽지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얼마 남지 않을 순이와의 여정이 순조롭고 평화롭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일생중 가장 특별하고도 행복한 날들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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