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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현 Aug 27. 2024

03. 이 책의 시선으로 나는 좋은 의사를 꿈꾸었다

제롬 그루프먼 "닥터스 씽킹"

책장을 정리하다가 대학생때 읽었던 책들이 떠올랐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제롬 그루프먼의 "닥터스 씽킹"은 그 시절의 내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책이었으리라. 오랜만에 2011년 교내 학술제에서 독서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던 서평을 찾아보았다. 그때는 잘 쓴줄 알았을텐데, 지금 읽어보니 ' 사고의 흐름대로 썻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온다.


나는 어떤 의사가 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시절을 잊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의사일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무뚝뚝한데, 환자들이 보는 나는 따듯하다고 한다. 

다행이면서도 약간은 의아했는데, 어쩌면 이것이 감정적으로 환자-의사 균형을 잘 유지하는 나만의 적정선을 찾은 결과일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늘도 환자분이 주말 농장에서 직접 수확하셨다는, 작지만 향기로운 복숭아와 사과를 선물해 주셨다. 과거의 나에게 약간은 긍정적인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잘 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그때의 고민과 걱정을 떠올리면서, 환자들과 더 소통하고,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닥터스 씽킹』 


상지한의 본과1학년 오지현


나는 어떤 의사가 될까.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판단하며 어떻게 실천에 옮길까. How.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 번역된 제목은 원 제목 『HOW DOCTORS THINK』를 넘지 못했다. 다른 의사들의 'How'를 통해 나의 'How'를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글은 굉장히 깔끔하면서 담백하고 그러면서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에서, 풀어가는 실타래에서 겸손하면서도 솔직하고 멋진 사람일 거란 느낌이 드는 이 작가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 나도 나중에 책을 쓰게 된다면 이런 대중적이고 쉬우면서도 관련된 분야의 사람들에겐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내용을 쓰고 싶다.


책의 전반에 걸쳐 오류를 범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기계적, 기술적 오류도 제시해 주지만 인지적 오류에 속하는 여러 사례들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 그리고 저자가 고백을 이끌어 낸 의사들 모두 자타 공인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그런데도 부족했다. 실수를 했다. 그들이 왜 그런 오류로 향했는지 원인에 중점을 두고 아직은 낯선 용어를 통해 정리해 준다.


- 대표성 오류(representativeness error) : 하나의 원형에 사고가 이끌려 그 원형에 반하는 가능성들을 고려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오류

-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 : 환자가 자신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에 부합할 때 혐오감이 환자를 밀쳐내서 범하게 되는 오류

- 감정적 오류(affective error) : 내키지 않는 대안들보다는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생각을 유도하는 오류

- 가용성의 오류(availability error) : 관련된 예들이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에 따라 어떤 일의 빈도나 확률을 판단하려는 경향

- 편향 확증(confirmation bias) :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확증하려는 오류

- 철저히의 오류(yin-yang out) :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오류

- 얼룩말 도피 오류 : 희귀병 진단을 피하려는 경향성

- 진단관성 오류(diagnosis momentum error) : 일단 한 가지 진단으로 고정되면 증거가 아무리 불완전해도 최초의 진단이 계속되는 오류

- 사명감 오류(commission bias) : 자신감이 지나치고 자아가 부풀려져있거나, 절박한 마음에 무언가를 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을 때 손을 놓지 못하고 무엇이든 하려는 경향성

- 탐색 만족성 오류(search satificing error) : 한가지 단서를 찾아내면 더 이상의 탐색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성

- 수직적 사고의 오류(vertical line failure) : 데이터와 임상 소견들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확실한 것에 집착하는 오류


이 책이 대단한건 '다른 의사들의 오류'에 머물지 않아서 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상황을 피드백하는 과정, 혹은 극복할 수 있는 도움길까지 제시했다. 의사도 사람이니 실수 할 수 있고 착오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이기 때문에 그 실수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뼈아픈' (2장의 제목: 실수에서 깨달은 뼈아픈 교훈)의 수준이 다른 사람의 목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수는 최소화해야만 한다. 의사란 직업만큼 자신의 실수를 공유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중요한 게 없다. 수많은 오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길. 적어도 이제 이 책에서 제시된 실수만큼은 좀 더 조심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 너무도 진솔하게 치부를 드러낸 책이 의사들의 반감을 사지 않고 오히려 추천 받는게 아닐까. 임상에 나가기 직전인 학생 신분에서도 이런 테마의 중요도가 높게 측정될 필요가 있다.


책을 읽다가 드라마타임에 되서 mbc의 드라마인 '애정만만세'를 봤다. 주말마다 보긴 하지만 푹 빠져서 챙겨보는 드라마도 아니고 항상 별 생각 않고 보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 한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오정희가 강형도에게 "의료봉사 열심히 해. 의사란 건 하늘이 주신 직업이야. 환자들에겐 당신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중요하니깐." 정말 아는만큼 들리고 보인다는 게 맞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텐데 이 책의 내용과 맞물려 곱씹게 되었다.


환자는 의사의 태도에 굉장히 민감하다. 의사가 귀찮은 기색을 보이면 필요한 정보나 의견일지라도 말하기 힘들어 한다. 모든 환자에게 항상 성심성의껏 진료한다면 매우 이상적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그렇고, 의료봉사를 가서 겪어보니 그렇지 못한 상황이 더욱 이해가 간다. 의료봉사 초반에는 환자들과 친절하게 대화도 나누고, 여러 가지 치료를 해 드리고, 첩지도 정성스럽게 쌌다. 그런데 환자들이 쉴틈 없이 몰려들 때는 여유가 없었다. 그때의 나도 '지친,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을까.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그랬을 것이다. 현실 상황은 더 녹녹치 못할지라도 매번 마음을 다잡고 따듯한 아우라를 품어서 소통의 문을 닫지 않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내가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이라서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거란 칭찬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내가 환자로 병원에 갔을 때 느꼈던 것과 미래의 내 위치를 연관시켜 보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둘을 이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의사에겐 수많은 환자가 있지만 절박한 환자는 그 의사 한명만 본다는 것을.


다른 의사들이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는 에피소드를 따라가면서 나는 작년 여름의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작년 방학에 '원광대학교 한방병원과 어린이재단이 함께하는 고도비만 아동들의 비만 대탈출 프로젝트'에 아이들의 인솔자로 참여했다. 그 프로젝트는 소외계층의 고도비만 아동들에게 4박 5일간의 치료(강의, 장세척, 침치료, 한약요법, 식이요법, 운동요법을 모두 포괄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를 해주는 것이었다. 사실 내 황금 방학의 4박5일을 온전히 반납하기로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소외계층에 비만까지 있는 아이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나 생채기가 많을까. 내가 며칠이라도 함께하면서 보듬어주면 좋지 않을까. 한방병원의 시스템은 어떨까. 혹 연구에 올인하게 되면 못 가볼 길이 될텐데 간접적으로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봉사활동을 신청했었다. 예정과는 달리 다른 봉사자들은 치료 시간 중의 인솔만 맡기로 해서 나만 홀로 아이들의 총관리자가 돼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적어뒀던 메모를 함께 곱씹게 되면서 경험이 완성되었다.


반복되는 하드코어 프로그램으로 사춘기 아이들은 매우 신경질적이 되었고 힘들어 하는게 눈에 보였다. 귀엽고 밝았던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갔고 의사선생님의 말에도 잘 따르지 않았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인솔 선생님들에게 폭력을 행하기도 했다. 나는 칭찬과 위로로 따듯하게 감싸주고, 필요할 땐 냉정하게 잘못을 집어내어 스스로 반성하도록 해서, 오히려 다른 사회복지과 봉사자들이 자문을 구해왔다. 나의 비결은 소통이었다. 책에서도 나오듯 환자와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해결의 실마리이다. 내 진심을 담아 교감하면 분명히 알아주게 되어 있다. 더구나 아이들은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쉽게 마음을 열고 감동한다.


그러나, 이제야 알았지만, 그 때 나는 참 많은 오류를 범했다.

아이들은 빈약한 식단으로 배고프다고 난리였다. 프로그램에 식단조절이 들어가서 매 끼니가 잡곡밥, 된장국, 오이, 김치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점점 양을 줄였다. 나도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성장기인 아이들은 어련할까 싶어 내 몫을 조금 더 주기도 했다. 둘째날 저녁엔 막내가 밥을 먹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맛이 없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불쌍하고 마음이 아팠다. 맛이 있나 없나 딱 한번씩만 먹어보자고 반찬을 한입씩만 먹였다. 한약이 너무 써서 못먹겠다 길래 사탕을 한 알씩만 주려고 사왔다가 회진 들어온 레지던트 선생님한테 따끔하게 주의받았다. 속으로 야속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비로소 이해가 간다. 내 행동은 아이들을 위해 옳았을까. 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잘못했다.


더 큰 오류도 있었다.

매일아침 아이들은 관장을 해야 했다. 절대 안하겠다는 아이들을 간신히 설득했다. 나도 하기 싫고 안 해본 일을 시키려니 마음이 안 좋았다. 아이들이 모두 펑펑 울었다. 아이들이 여전히 울먹이며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속으로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이 관장을 해서 얻는 득과 실(심리적 불안, 다른 활동까지 번지는 반항, 고통 등)을 따져봤을 때 매일 관장을 할 필요가 있을까.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의사선생님께 관장을 하지 말자고 부탁드렸다. 다행히 아이들의 비만 정도가 매우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서 의사선생님께서 첫날과 마지막날 만 하기로 했다. 물론 이 경우에서는 나름대로 객관성을 가지고 따져보았고 결과적으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과연 처음부터 '관장을 안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실'에 치중하진 않았을까.


좀 더 나아가 치료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환자가 거부하지만 필요한 치료라면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질병이 일으키는 불확실하고 기한 없는 고통보다, 명백한 부작용을 더 크게 생각한다. 제롬 그루프먼은 그 때 '의사결정의 윤리적 책임'을 최대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환자들에게 그들 삶의 원칙이나 가족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고, 의학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내가 알 수 있을까. 닥터하우스 시즌 1에 'DNR'편이 있다. 하우스 박사는 환자의 DNR 요청에도 환자를 살려낸다. 법정도 가게 되고, 다른 의사들로부터 비판도 받지만 결국에는 좋게 결말이 난다. 환자가 자신이 소생불가능하고 고통스럽게 죽을 병에 걸린 것으로 잘못 알고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하우스는 그 병이 아니란 확신 하에 호흡유지를 시켰고, 환자가 단순한 질병이란 것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감사를 표한다. 여기서 하우스는 환자를 위한 옳은 결정을 했다. 그런데 다른 상황이었다면, 만약 동료들의 비판(포기를 모르고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 때문에 환자를 위한다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이 맞았다면 사명감오류 때문에 환자는 원치 않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책의 내용을 적응시키기 굉장히 좋았다. '철저히의 오류', '진단관성 오류', '탐색 만족성 오류', '수직적 사고의 오류'를 등을 찾을 수 있었다. 최근에 관심을 갖고 본 편이라 여기에 관해서만 생각해보았다. '닥터하우스'는 여러 명의 의사들이 함께 병을 진단해나가는 이야기라서 다양한 인지적 오류들이 숨어있다. 이를 통해서 오류를 찾고 대비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알면 알수록 활용도가 높은 미드이다. 특강 형식으로 커리큘럼에 넣어도 좋을듯 싶다.

 

작년에도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었는지 이런 기록이 남아있다. "난 환자-의사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을 의문이다. 아이들 마음을 잘 헤아리는 건 잘하지만 적절한 친밀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친해지고, 임상 하다 보면 마음 아픈 일이 많이 생기는 데 못 견딜 것 같다." 용어는 몰랐지만 특히 '감정적 오류'를 우려했던 것 같다. 의사라면 감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이 제거 되면 환자의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감정이 지나치면 치료에 주춤하게 될 수 있다. 그 적정선을 나는 잘 찾을 수 있을까. 가상의 훈련을 반복해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느낀게 있다. 서양의학적 사고의 흐름이 한의학의 본질적 사고와 굉장히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이상을 판별할 때 부분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인 몸과 마음을 보라는 것과, 구조화된 수식 구조에 넣어 병을 진단해내려 하지 말고 각 개인의 편차를 존중하고 환자와의 소통에서 답을 도출해 내라는 것 등등.




제롬 그루프먼, 『닥터스 씽킹』, 이문희 역, 서울 : 해냄출판사, 2007. [HOW DOCTORS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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