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nama]
누군가 내게 취미를 묻는다면 나는 독서, 영화감상, 공연 관람이라고 고민 없이, 간결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세 가지 취미보다 조금 더 역사가 깊고 지속적인 취미는 글쓰기였다.
‘요즘 애들’에서는 열외 되었으나 ‘요즘 사람’의 범주에는 아직 포함될 만큼의 나이를 먹은 나는 안타깝게도 요즘 사람들의 감성이 조금 부족해 SNS를 하지 않는다. SNS에 일상을 기록하고 그걸 타인들과 공유하는 걸 낯간지럽고 민망하게 여기는, 시대에 다소 뒤떨어지는 감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인가 SNS를 해보려 시도해 보긴 했지만 어쩐지 일기를 써서 다 같이 읽자고 게시하는 것만 같은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결국 모두 실패했다. 주변 성화에 만들어본 인스타는 결국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탈퇴했고, 그래도 꽤나 오래 살아남은 페이스북 계정은 세상 돌아가는 일을 파악하는 일상뉴스 정도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나마 페이스북도 없었다면 나는 '요즘 사람'의 범주에도 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종종 글을 쓰지만, 그 글들은 내 USB 바깥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대외적인 내 취미 목록에 글쓰기를 포함시키지 않는다. (물론 취미가 글쓰기라고 하면 당연히 따라올 “오, 그러면 글 잘 쓰겠네?”라는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혼자 우울한 기분을 글로 털어내며 ‘다른 사람들도 이런 기분에 공감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 때, 즐거웠던 기억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록하며 이 재밌는 이야기를 남들에게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일 때, 가끔 글이 좀 잘 써진 것 같을 때 완성된 글을 보며 괜히 조금 우쭐해져서는 ‘오- 이건 나 혼자 보기 좀 아까운 듯?’ 하면서 시답잖은 건방을 떨 때,
그냥 글을 올리고 싶으면 올리면 되는데도 나는 소심하게 글을 쓰고 공유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했다.
에세이가 출판 시장에서 주요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작가가 아닌 뮤지션, 배우, 유튜버와 같은 유명인들의 에세이부터, 유명하지는 않지만 특이한 직업을 가진 이들의 직업 이야기나 평범한 직장인들의 일상 에세이까지 다양한 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 내 글에도 조금쯤 세상 빛을 쬐어주고 싶다는, 내 글도 조금쯤 다른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한층 더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다.
나는 수줍은 관종이기 때문에 관심받는 걸 좋아는 하지만 막상 관심을 받으면 수줍고 뻘쭘해진다. 그래서 아무도 내 글에 관심이 없을까 봐, 아니면 누군가가 관심을 가질까 봐 불안하다. 생각해보면 연예인도 아니고 SNS 스타는커녕 SNS도 못 하는 인간이면서 관심을 받을까 봐까지 고민하는 건 팔자에도 없는 걱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튼 이렇게 소심한 첫 발을 내딛는다. 누군가에게 읽힐지도 모르는 첫 글을 쓰는 기분은 조금 설레고, 꽤 떨린다. 사실 첫 글을 내는 게 떨리는 건지 회사에서 일하는 척하며 몰래 쓰고 있어서 걸릴까 봐 떨리는 건지 헷갈리지만 (방금 전에 팀장님이 내 뒤를 지나가셨다..!) 아무튼 떨리는 마음으로 첫 글을 발행한다.
이제 일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