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Oct 27. 2024

인생은 셀프서비스

어서오세요, 들어오세요

물은 셀프입니다. 식당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문장이다. 물만 셀프인 줄 알았는데 가게에서 돈을 내고 음식을 주문한 손님이 숟가락, 젓가락 놓는 것도 셀프, 반찬을 그릇에 담아 오는 것도 셀프, 심지어 주문도 키오스크로 한다. 인건비가 올라서 손님에게 일을 시킨다나? 손님이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손님 대접을 받아야 할텐데 손님 대접 받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세상이다. 음식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 앞에 줄을 선다. 손가락으로 주문할 음식, 마실 음료, 사이드메뉴, 옵션까지 선택을 마치면 결제 페이지로 넘어간다. 신용카드 또는 ㅇㅇ페이 결제 페이지가 보이고 카드를 삽입하여 결제를 마치면 일직선 사이로 영수증과 주문번호가 인쇄된 종이를 뱉어낸다. 손님은 맡아둔 자리로 돌아가 음식이 조리되길 기다린다.


과연 키오스크 도입으로 식당 운영이 효율적으로 돌아갈까? 다년간 쌓아온 손님 입장에서는 키오스크가 오히려 방해꾼처럼 느껴진다. 효율의 비효율화를 진작 많이 경험해서 그런지 식당에서 키오스크를 맞닥뜨리면 달갑지 않다. 버튼 한 번 잘못 선택했다가 첫 페이지로 돌아가기도 하고 키오스크 앞에서 메뉴 선정에 머뭇거리는 손님 때문에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팔짱을 낀 채 불만섞인 얼굴로 변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찌든 이들은 조금의 기다림도 허락하지 않는다. 짜증이 잔뜩난 채로 '니들 도대체 뭐하냐? 빨리 밥 좀 먹자. 이러다 소중한 내 점심시간이 끝나간다고, 제발 빨리 빨리 제대로 좀 해라!'며 눈치를 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에도 키오스크가 있다면 인간관계를 다룰 때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셀프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내가 원하는 이상형과 만날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주는 키오스크가 있다면 유용하겠지만 활용도가 더 높은 건 이별하는 법을 알려주는 키오스크 아닐까? 어서오세요, ㅇㅇ님과 헤어지셨네요. 들어오세요. 오늘은 어떤 이별방식을 선택하시겠어요? 직면? 회피? 차단? 복수? 삭제? 충분히 고민한 후에는 결정을 곧이 곧대로 밀고 나가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삭제'를 원하니 '삭제'를 누른다. 키오스크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예." '이거 삭제한다고 해놓고 삭제 안하는거 아냐?' 앞선 걱정과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쯤 팝업 창이 튀어나온다. "고객님께서 요청하신 삭체가 완료되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가수: GAYLE

노래: abcdefu

https://www.youtube.com/watch?v=NaFd8ucHLuo&t=9s

작가의 이전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