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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피 Dec 24. 202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질서와 인간에 관한 미친 이야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도대체 이 책은 무엇일까.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추측할 수가 없다. 책표지는 동화같이 생겼는데 심지어 논픽션이란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책장을 넘겼다. 중간까지는 지루할 수도 있으니 참고보라는 주변의 충고가 무색하게 나는 처음부터 이 책에 빠져들었다. 작가 본인의 자전적 에세이면서도 다른 인물의 인생을 묘사하는 전기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모르는 채로 '룰루 밀러'라는 작가와 그 작가가 집요하게 연구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룰루 밀러는 20대 초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하 조던)은 우리가 아는 명문대학, 스탠퍼드의 초대 총장이자 유명한 분류학자다. 특히 물고기 수집을 열성적으로 했는데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이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낚아 올린 수천 종의 물고기를 이름표와 함께 에탄올에 담긴 유리단지에 넣었다. 물고기를 한참 수집하던 1883년 조던의 연구실에 벼락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유리단지들은 작은 폭탄들처럼 폭발하고 물고기는 증발한다. 조던이 작성하던 소중한 문서는 불타 없어졌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첫 번째 아내가 죽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삶을 이어나갔다. 아니, 더 열심히 물고기를 수집했다.


벼락 사고와 수전의 죽음 두 가지 일에서 재빨리 회복한 것에 대해 데이비드는 살면서 언제부턴가 '낙천성의 방패"를 갖추게 된 것 같다는 말로 설명했다. (중략) 한 동료는 아무리 안 좋은 날에도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리며 회랑을 거니는" 데이비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p80

 

불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906년 어느 봄날,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인해 수백 개의 유리단지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고 어류 표본이 절단되었으며 그들의 이름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느끼고 자연을 원망해야 정상일 이 순간에 데이비드 스타조던은 주저하지 않고 연구실로 달려가 자신이 기억나는 대로 물고기 잔해와 이름표를 꿰매기 시작한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룰루 밀러는 이런 조던의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나이를 먹어가고 본인의 인생에 찾아온 혼돈의 잔해를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자살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면서 본인의 망가진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그를 살아가게 하는 게 무엇인지에 관해, 그의 전기와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 그의 인생을 차분히 추적해 나간다.


데이비드 조던은 뉴욕주 북부의 한 사과 과수원에서, 1851년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시간에 태어났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별에 그토록 몰두하게 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소년기에 관해 이렇게 썼다. "가을 저녁 옥수수 껍질을 벗기던 중 천체의 이름과 의미에 관해 호기심이 생겼다" -p23


조던은 물고기, 꽃과 같은 식물에 관심을 갖다가 페니키스 섬에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로부터 생물을 분류하여 세상의 질서를 찾고 숨어있는 신의 뜻을 알아내기 위한 여름캠프에 참여한다. 그때부터 그는 물고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코넬대학교 졸업 후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던 그는 어류 분류학자로 유명세를 얻어 인디애나 대학 종신교수를 하다가 팰로앨토에 실험적으로 세운 작은 학교의 초대 학장이 되어줄 수 없겠냐는 부유한 부부의 제안을 받게 된다. 그 부부의 성은 스탠퍼드였다.


그 후로 그의 인생은 승승장구한다. 그는 학자로서 많은 상을 받았고 노예폐지를 주장하며 많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학장으로서 자신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대학교를 운영하며 그는 자신이 원했던 연구를 지속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고 존경했다.




어린 시절 남들과는 다른 것에 흥미를 갖고 있어 조롱받던 그는 훗날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여 '신의 뜻을 찾는' 루이 아가시의 여름캠프로부터 그 일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첫 번째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 자연재해로 인해 본인이 수집한 물고기 표본을 잃고도 분류학자로서 불굴의 의지와 뜨거운 열정으로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승격해 가는 조던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스포일러 주의)


첫 번째 반전

자연에는 질서가 있고 인간은 그 자연의 일부로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조차도 절망 속에서는 '인간의 의지'에 의존하며 자기기만을 한다. 자신의 인생을 나아가게 하기 위해 조던의 인생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집착하던 작가 룰루 밀러는 마침내 그 증거를 찾게 된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창조하기 시작한 이래, 사람이 노력해서 이룬 결과가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엄청난 규모의 재앙 앞에서 그렇게 푸념하지 않는 인간을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중략) 왜냐하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p132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중략)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p133

결국 거대한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세상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던 그조차도 자기기만을 통해 인생을 살아갔던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자기기만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두 번째 반전

모든 일이 술술 풀리며 멋진 인생을 살아가던 조던은 공동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 부인에 의해 견제당한다. 스탠퍼드 부인이 '갱처럼 대학을 운영하는' 그를 갈아치울 계획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소문이 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탠퍼드 부인은 하와이 여행 중 살해당한다. 결국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독살당했다는 배심원의 평결과는 무관하게 엉뚱하게도 사건은 '폭식'과 '과로'로 인한 협심증에 의한 사망으로 마무리가 된다. 조던은 그녀의 죽음을 의심스러울 정도로 재빠르게 수습한다.

이야기를 추적하다 보면 조던이 그녀를 제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실제로 그가 살인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했던 독성 물질을 통해 평소 자신을 견제하고 끌어내리려 하던 스탠퍼드 부인을 암살했다는 암시가 강하게 느껴진다.


하와이에 도착한 지 나흘 뒤, 그는 <뉴욕타임스>에 의학박사로서 "그녀가 독살된 것이 아님을 그 어느 때보다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인의 죽음은 어찌 된 것일까? 그는 진저브레드 때문이라고 했다. 내장과 약병에서 발견된 스트리크닌은? 그건 "의학적인"것이라는 말로 무마하고 넘겼다.  
-p164
그러다가 430페이지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물고기를 확보하는 방법"이라는 섹션에서, 그는 거기까지 자신을 따라온 대담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비밀을 누설했다. 조수웅덩이 틈새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리는 탓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장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은 뭘까? 바로 독이다. 구체적으로 그가 추천한 종류는? 언젠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쓴 것"이라고 묘사했던 위험하고 강력한 물질, 바로 스트리크닌이다. -p175


세 번째 반전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던 조던은 이사회에 의해 모든 행정적 권력을 박탈당한다. 이후 시간이 많아진 그는 우연히 '우생학'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이에 몰두하게 된다. 우월한 사람만이 대를 이어 인간을 번성하게 해야 한다는, 부적합자들을 몰살해야 한다는 논리에 매몰되어 인디애나주에서 전 세계 최초로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를 법제화하였다. 그의 열렬한 우생학 운동에 매료된 수많은 사람들이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부적합자')을 대상으로 불임화를 하게 된다. 열등한 집단을 '몰살'시키기 위해 그는 전국을 누비며 순회연설을 한다.


서서히 점점 더 많은 주들이 불임화법을 통과시켰다. 코네티컷, 아이오와, 뉴저지 등에서, 성병에 걸렸는가? 싹둑. 간질 발작? 싹둑. 혼외 출생, 전과, 낮은 시험 점수? 싹둑, 싹둑, 싹둑! -p186


더욱 충격적인 것은 1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불임화법이 절반에 가까운 주에서 허용되고 있다는 것.


예컨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교도소에서는 150명에 가까운 여성에게 동의도 얻지 않고 때로는 본인들도 모르게 불법적으로 불임화 수술을 자행했다. 그리고 2017년 여름에는 테네시주의 샘 베닝필드라는 판사가 잡범들에게 불임화를 받는 대가로 수감 형량을 줄여주겠다고 제안한 것이 드러났다. -p196


네 번째 반전

조던은 많은 공을 인정받았으나 인생의 과오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우생학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을 불임화하는 데 앞장섰으며 자신의 앞길을 막는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또한 사회에 아무 가치도 없다고 무시했던 이민자들과 빈민(그의 눈에는 부적합자로 보였을)의 도움을 받아 물고기를 수집하였으나 이는 모두 그의 업적이 되었다.


휴, 한숨이 나온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하나 입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우주적 정의의 감각 같은 건 그 까칠하고 무의미한 조직 속 어디에도 새겨져 있지 않을 만큼 야멸차기 때문이다. -p235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하다. 그러나 가장 놀랍고 가장 강력한, 책 제목에 대해 최초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 반전의 내용이 바로 이 마지막 장에서 나온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의 기술을 실행하고, 다윈의 충고대로 진화상의 친연성에 따라 생물을 분류함으로써 작도시킨 그 과정이 치명적인 발견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번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p235~236


굳이 조던의 이야기를 빼고 보더라도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물고기는 당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기학자들에 따르면 일부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보다는 소와 더 가깝다. 고래는 물고기보다 사슴과 더 가깝다.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의 어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우리가 보기 편한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직관으로 이해하는 세상은 틀렸다.


나는 그도 결국에는 물고기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를테면 그는 대리석 같은 무늬의 폐어 껍질을 벗기고, 그 폐와 후두개와 여러 개의 심방과 심실로 이루어진 심장을 보고는 어류라는 범주가 자기 손가락 끝에서 해체되고 있는 걸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가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고통의 시간에 그가 물고기에게서 어떻게 위안을 얻고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알고 있으므로, 그에게도 그 일은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p245-246


생태학자 조너선 밸컴에 따르면 '물고기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색을 보며, 특정한 기억과제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실력을 보이고, 도구를 사용하며, 바흐의 음악과 블루스를 구별할 줄 안다고 한다. 게다가 어떤 종들은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물고기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어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멸적인 단어다. 우리가 그 복잡성을 감추기 위해, 계속 속 편히 살기 위해, 우리가 실제보다 그들과 훨씬 더 멀다고 느끼기 위해 사용한다는 단어다. -p251




결국 작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어류를 제거함으로써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녀가 그려왔던 인생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인생을 결국 찾아낸다.

나는 그 커튼들 너머, 우리가 자연 위에 그려놓은 선들 너머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 다윈이 거기 있을 것이라 약속했던 땅, 분기학자들이 볼 수 있었던 땅, 어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경계가 없고 더 풍요로운, 아무런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은 그곳을.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W.B. 예이츠의 것으로 알려진 이 인용문을 나는 여러 해 동안 벽에 붙여두었다. 그 다른 세계가 바로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였다. -p257
그러다가 물고기에 관해 생각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빛 물고기 한 마리가 내 머릿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인가?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해왕성에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중략)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p263


이야기가 도저히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책이었다. 상술하지는 않았지만 룰루 밀러는 양성애자로 여자와 바람을 펴서 자신이 사랑하던 곱슬머리 남자와 헤어지게 된다. 곱슬머리 남자를 몇 년 동안 한없이 기다리면서, 본인의 인생을 혼돈의 늪에 빠뜨린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살충동과 지속적으로 싸우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 물고기가 없는 사실을 알아낸 후에도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삶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고민한다. 그러나 결국 그 좁은 시야를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 룰루 밀러는 과학 전문 기자다. 그러나 책의 문장은 상당히 감성적이고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이 책을 2번 연속으로 읽고 나서야 작가가 곳곳에 숨겨놓은 암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감동,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의 인생에 대한 존경심과 당혹감, 그리고 배신감. 그리고 내 안에 존재했던 물고기. 여러모로 매력적인 책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또 우리는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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