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이 망친 우리 삶
나는 대체적으로 낙관적이지만 또 쉽게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우울감에 사로잡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날들도 많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까운 청춘을 걱정하느라 낭비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걱정들은 '제1세계스러운' 스트레스였다. '내 자식이 아이비리그에 가지 못했어', '친구가 산 집 가격이 폭등했대', '스프레드 시트 작업이 너무 복잡해'와 같은..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우울감을 언제 느꼈느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기억에 크게 남지 않을 만큼 사사로운 것들이었고, 대체적으로는 빠른 시기 내에 극복을 했다. 그 비결은 바로 '불편함'이다. 운동을 하면서 몸을 불편하게 하거나 하기 싫은 일(그러나 내게 성장을 줄만한 일)을 기꺼이 하다 보면 어느새 인생은 대체로 괜찮아져 있었다.
최근 <편암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직접 알래스카 오지에서 순록 사냥을 하며 극도의 배고픔과 추위, 육체적 불편함을 견뎌냈다. 그는 현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건강, 심리 문제가 편안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역설하며 힘든 목표를 세우고, 자연과 함께 해야 하며, 따분함을 즐기고, 배고픔을 느끼고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속적인 편안함'이란 인간 역사에서 지극히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p33
책을 읽고 나는 헬스장에 가는 시간을 줄이고 등산을 시작했다. 피부노화의 주범이라면서 피해온 햇빛을 어느 정도는 감사히 받는다. 배고픔을 견딜 수 있게 되었으며 나 자신도 신기할 만큼 컨디션이 한층 좋아졌다.
우리는 생각을 줄이고 더 많이 느끼고 관찰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대단하게 여기는 일이란 게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하찮아 보일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일을 삶에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삶을 통합'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유전자는 불편함을 견뎌내며 진화했다. 불편함이 진짜 인생이다. 불편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편안함으로부터의 잠식은 인생을 갉아먹는다. 편안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설적으로 기꺼이 불편한 삶을 택할 때, 인생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하루에 하나는 불편한 선택을 하려고 한다.
살다보면 특정 시기에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요즘 다양한 팟캐스트, 책, 경험을 통해 내게 들려오는 주요 키워드는 '불편함'과 '실패'다.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산다.
나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이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덕분에 나를 흔들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졌다. '인간을 더 오래 살게 만드는 요소'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더 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p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