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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Milk Oct 06. 2023

(단편 소설) 조금은 아픈 이야기

4. 바람이 분다

#1

바람이 분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 한번 안 해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특히, 대 도시에 살아가며 각박하고 건조한 사회생활과 복잡한 인간관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인생사를 경험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중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거나 혹은 나는 왜 살아가는 것인가,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라면 그것 만으로도 당신은 아주 축복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 부는 계절이 돌아왔을 때 흩날리는 머리카락처럼 사람의 마음과 기분도 어느새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발견한다.

이렇게나 연약하고 결점 투성이인 인간의 마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맛있는 전집’


멋은 없지만 가장 담백한 이름의 작은 밥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발견하니 하루종일 심난했던 마음에 조금은 풀어지는 듯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도시에는 1년이 채 되기 전에 다른 식당과 카페로 변하고 멀쩡했던 건물이 허물어지고 제대로 된 크기의 창문 하나 없는 빌딩이 즐비하다. 자극적이고 시민의 건강보다는 콜레스테롤, 당, 비만 수치를 높이는 맵고, 짜고 , 단 음식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젊은 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맛이 생각나는 집밥 스타일의 식당을 자주 찾는다. 


대학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이 친구와의 인연은 대학원 졸업 후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됐다. 처음 진희를 만났을 때부터 쿵작이 맞았던 것은 아니다. 그 시절 내가 싫어하던 특유 ‘한국식’ 가치관이나 부모님 때부터 오래 묵은 과거의 가치관이 그대로 내려져와 이 아이의 세상을 형성하고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성장하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괜히 뿌듯해진다. 


“언니,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항상 밝은 웃음과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하는 진희는 오늘도 어느 때처럼 나를 반겨줬다.  자리에 앉아 해물 파전과 막걸리를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답하는 사이에 막걸리가 먼저 나왔다. 문득, 진희와의 만남에서 술이 빠졌던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처음 시작도, 서로 사는 곳이 거리가 멀어 가끔가다 만나면 꼭 술 한잔씩은 기울이고 하다 보니 가볍게 차나 커피를 마신다거나 같이 여행을 한 적은 없었다. 


“아 언니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사람, 언니가 런던에서 좋아하던 그 사람 소셜미디어에서 봤어.. 어머님이 엄청 유명한 사람이던데?” 

“아.. 나도 우연히 알고리즘에 뜨길래 좀 놀랬어”

“근데 잘생겼더라.. 혹시 그 뒤로 연락한 적 있어?”

“아니, 뭘 연락을 해 할 말도 없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이나 이름을 들어도 착잡한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그저 지나간 인연일 뿐, 한때 아쉬워하던 마음조차 정리 되었으니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 어른들이 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었단 걸 몸소 느꼈다. 그래도 그 사람의 이름을 오래간만에 듣게 되니 시간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듯 지난 시절과 그때의 계절과 공기의 온도, 목소리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세상에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 논리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생의 사건들을 어떻게든 말로 표현해 내기 위해서 '운명'.'우연', '인연'과 같은 감성적 단어로 담아내고는 한다. 이번여름에 나는 이런 운명이니 우연이니 인연이니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어울리는 일을 겪었다. 고작 10초 남짓한 마주침에서 내 마음에 충격 가득한 전율과 두려움을 느꼈다. 런던의 인구는 2010년을 기준으로 9,304,000명이다. 포털 검색 사이트에 조금만 리서치를 해도 나오는 결과이다. 서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인구수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화려한 도시인 런던에서 그를 다시 마주쳤을 때의 충격은 꽤나 오래갔다. 그에 대한 미련이나 상심 미움 혹은 설렘과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이 동반되어 살기보다는 어떻게 이 사람을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다시 마주칠 수 있지? 와 같은 의문이었다. 신의 존재를 믿는 편이다 보니 내가 오늘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 보다라고 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나눠줬다.


"응??!!?!?!? 와 이게 말이 된다고??? 그 넓은 땅에서 그것도 언니는 오랜만에 여행하러 간 건데... 그 사람을 그렇게 마주치냐?"


"내 말이.. 나 며칠 동안 넋이 나갔었잖아. 그냥 마음이 뒤숭숭하고 그 시절 내 모습도 생각나서 아련하고.. 복잡 미묘하더라"


"아니 그래서 인사는 했어??"


"아니 내가 고개 돌리니깐 본인도 놀래서 앞만 쳐다보고 걷던데"


"아.. 하긴 인사해서 뭐 하겠어 그렇지?"


그것도 그럴 것이 그가 먼저 나를 쳐다봤고 멍 때리며 걸어가고 있던 내가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놀란 눈을 정면으로 고정시키고 걸어갔다. 그 짧은 몇 초의 순간에 그를 붙잡고 인사를 해볼까 싶은 생각도 스쳐 지나갔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내려앉은 마음을 붙잡고 한없이 걸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시간은 밤이 되었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날씨는 이전보다 더 차가웠다. 


술도 깰 겸 저벅저벅 걸어가는 길에 발은 유난히 밝았다. 길을 걷다 보면 스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볼 때가 있다. 혹시, 어떠한 이유로,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여기서 다른 선택이란 더 나은 선택이란 보장은 없으나 그냥 말 그대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 사람들 중 한 명은 나의 지인이 되었을까? 와 같은 상상을 해본다. 


그와 나는 서로 알아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렇게 서로 알아가다 '상황'이란 것에 부딪혀 그렇게 제대로 마무리도 못하고 각자의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소셜미디어가 이렇게 발전한 세계에서 그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방법도 조금만 나의 시간을 허비하면 그의 생활을 알아보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는 분명히 계절 인연이었다. 

나의 성장을 위해 필요했던 그 시절의 그를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인생의 미묘함과 씁쓸함을 마주치는 가을이었다로 마무리하려 한다. 그를 만나 나의 타지 생활의 마무리가 조금은 더 영화 같았고 다채로웠다. 몇 년을 못 잊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었다. 그를 생각할 때면 저절로 배경음악이 깔릴 만큼 아름답고 강렬했다. 그냥 나와는 거기까지였던 사람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나도 나의 몸과 마음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흘러가고자 한다. 덕분에 강렬했던 나의 20대는 마음에 묻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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