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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분 Feb 10. 2024

글라이더가 된 767, 에어 캐나다 143.

김리 글라이더 사건

2인 조종시대

1982년.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며 조종석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항공 엔지니어가 사라지고, 기장, 부기장 둘만 남는다. 

복잡한 항공기를 둘이서 조종할 수 있을까. 다양한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비행 컴퓨터로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40년 전 첫 발을 내딛을 때는 도전적인 일이었다. 보잉 767은 2인 조종석 시대를 이끌었다. 에어 캐나다도 1982년 767 기종 전환 훈련을 시작했고, 1983년부터 신형 767을 인수받아 운항한다. 등록번호 C-GAUN은 네 번째 767로 604호로 불린다.


연료탱크

1983년 7월 22일. 에드먼턴 국제공항의 에어 캐나다 정비사는 604호의 고장을 발견한다. 


연료만큼 항공 운송에서 중요한 것도 없다. 연료 소비량에 따라 기체 크기, 엔진 개수, 비행 항로가 바뀌었다. 연료가 부족하면 비행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 들고 다닐 수도 없다. 연료는 짐이다. 활주 거리도 길어지고 연료 소모량도 늘어난다. 착륙할 때는 규정된 무게 제한치를 넘을 수 있다. 정확한 무게를 실어야 더 효율적이고, 더 안전하고, 돈이 적게 든다. 


대형 항공기의 연료탱크 구조는 복잡하다. 기체가 좌우로 기울거나,  앞뒤로 기우는 중에도 연료공급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한쪽 연료만 써서 기울어도 안 된다. 펌프를 작동해 일정하게 공급하고, 탱크 간에 옮기며 균형을 맞춘다. 

767 한쪽 날개에 있는 연료 탱크는 14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연료의 부피, 무게, 온도는 매초 연료량 분석 시스템에 전달된다. 중요한 시스템이니 이중으로 보완한다. 1번이 고장 나면 2번을 쓰면 된다. 


최신 연료량 분석 시스템의 납땜에 냉납이 생긴다. 납땜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5v가 흐르는 대신 0.7 볼트만 흐른다. 애매한 고장이 시스템 전체를 오작동하게 만든다. 신규 도입이라 교체할 부품 재고가 없다. 정비사는 회로차단기를 조작해 임시로 쓰게 만들었지만,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연료분석시스템 전체를 못 쓰게 되었다.


최소 장비 목록 MEL

모든 부품이 100% 작동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수백만 개 부품이 들어간 복잡한 현대 항공기는 그런 식으로 설계하지 않는다. 하나가 문제를 일으켜도 2중 3중으로 보완하게 만들고, 안전한 비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는 따로 목록을 만든다. 최소 장비 목록 MEL이다.

MEL에 따르면 연료 분석 시스템이 고장 나도  드립스틱 절차를 수행하면 운항할 수 있다. 자동차의 오일량을 측정하듯 드립 스틱으로 직접 찍어서 측정한다. 자동차와는 달리 부력을 이용해 아래에서 위로 측정한다. 각 날개에 8개씩 드립 스틱이 설치되어 있다. 16개의 드립스틱으로 연료량을 측정한다.


존 웨어 기장은 604호로 비행해, 에드먼턴, 오타와를 거쳐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급유할 때마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몬트리올에서 교대할 사람은 친구 밥 피어슨 기장이다. 이웃에 살며, 하키도 같이 치고, 조종사 조합에서는 동지로 일한다. 존 웨어 기장은 교대할 동료에게 귀띔한다.


“연료계 문제로 드립 스틱 절차를 해야 하니 급유 시간이 너무 길었어. 오타와에서 급유받지 말고 몬트리올에서 한 번에 전체 구간 급유를 받고 가는 게 나아.”


1983년 7월 23일. 604호는 에어 캐나다 143편으로 편성되었다. 몬트리올을 출발해 오타와를 경유, 에드먼턴으로 가는 비행계획이다. 


조종사

기장 로버트 “밥” 오언 피어슨. 48세. 비행시간 15,000시간. 767 비행시간은 200시간 미만이다. 얼마 안 된 신기종이니 이 시점에선 767의 최고 전문가다. 피어슨 기장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18살 이래 비행기와 함께 살아왔다. DC-3로 비행을 시작해 제트기의 시대를 청춘과 함께 보냈다. 비커스 바이카운트, 록히드 일렉트라, DC-8, DC-9, 보잉 727. 신 기종이 나올 때마다 나서서 자원했다. 최신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보잉 767은 정말 좋다. 767은 강력한 힘으로 깜짝 놀랄 속도로 상승한다. 이전에 오르지 못한 고도 43000피트에서 순항하는 것도 좋다. 휴일에는 친구들과 하키도 치지만, 공동 소유한 글라이더를 타며 활공을 즐긴다.


부기장 모리스 퀸탈. 36세. 767 비행시간은 75시간이다. 비싼 비행교육비를 아끼려 공군에 입대했지만 군축 정책이 시행되어 시작부터 꼬여버렸다. 68년 4월 김리에 있는 공군비행학교가 폐쇄된다. 퀸탈은 그해 11월 전역해 차를 팔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생 끝에 조종사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DC-3, DC-8, DC-9, 727, L-1011 등 다양한 기체로 비행했다. 여전히 대타로 비행하며 구르는 중이다. 오늘도 대타 비행이다. 그래도, 피어슨 기장과 비행해서 다행이다.


퀸탈은 몇 년 전 억울한 일을 당했다. 아내는 투병 중이고 두 아이는 어리다. 화재 피해를 입어 집수리를 하는 차에 회사의 급한 연락을 받았다. 또 대타 비행이다. 스케줄 담당자가 통사정하는 통에 4일 일정의 비행을 떠맡는다. 비행 4일째 되는 날, 교통국 감독관이 면허 검사를 한다. 그런데, 신체검사 유효기간이 전날 자정까지 아닌가. 회사에 전화하니 징계를 기다리라는 사무적인 답만 들려왔다. 회사에 충성하니 돌아오는 게 이런 건가. 


분개한 퀸탈은 조종사 조합 담당자를 찾아갔다. 하키를 치다 나온 조합 간부가 피어슨 기장이다. 피어슨 기장은 자기 일처럼 나서서 회사와 싸우더니, 일주일 뒤엔 징계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고 징계로 못 받은 두 주치 급여도 챙겨줬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이 시작된 계기다. 


미터법

캐나다는 1970년 중반 미터법을 도입했다. 캐나다에서는 영국식 갤런을 쓴다. 1갤런이 4.54리터다. 국경 넘어 미국에서는 1갤런이 3.78리터다. 미터법 도입은 도량형 혼란을 잠재우기 필요한 일이었다. 정부는 70년 초부터 10년간 미터법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어떻게 쓰고 있을까. 캐나다인에게 거리를 물어보면 미터로 답한다. 키를 물어보면 인치로 답한다. 몸무게는  파운드로 말한다. 그럼 음료는? 56%가 리터로 말하고, 37%는 온스로 말한다. 병에 있는 와인은 리터로 말하지만, 잔에 따르면 온스로 말한다. 청년층은 리터를 선호하고 중노년층은 온스를 선호한다. 캐나다인은 이런 체계에 불편 없이 잘 적응해 있다. 여론조사 결과 67%가 혼용에 만족한다. 


정부는 처음부터 법을 만들고 단속하며 강력히 밀어붙였지만, 진시황처럼 분서갱유라도 하지 않는 한 도량형 통일의 길은 멀어 보인다.  강제 시행에 대해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에어 캐나다가 정부 지침에 따라 767 4대를 미터법에 맞춰 주문했을 때, 야당에서는 정부 전용기부터 미터법으로 연료를 넣으라고 비판했다. 


우리에게 자유롭게 측정할 권리를 달라. 캐나다인은 차를 갤런 대신 리터로 주유하면서, 도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헷갈렸다. 화난 사람은 도로 표지판의 미터 표기를 훼손하기도 했다. 정부도 결국 80년대 중반에는 손을 들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영국식, 미국식에 더해 소프트 미터, 하드 미터까지 혼용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 업계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로 관리한다. 리터를 킬로그램으로 변환하거나, 파운드로 변환하는 건 컴퓨터가 알아서 한다. 컴퓨터는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가 되어 있으니 실수가 일어날 수 없다. 그렇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컴퓨터로 관리하기 이전에는 누구의 일이었을까. 비행 엔지니어의 몫이다. 비행 엔지니어가 빠지고, 연료 측정 컴퓨터도 고장 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산수 문제

지상 엔지니어 두 명이 급유를 시작한다. 먼저 드립 절차를 수행해서 연료 탱크에 남은 연료량을 확인한다. 한쪽 탱크에는 3,924리터, 다른 쪽에는 3,758리터, 합계 7,682리터의 연료가 실려있다. 

비행컴퓨터에는 부피가 아니라 무게 단위인 킬로그램으로 변환해 입력해야 한다. 엔지니어는 리터를 킬로그램으로 환산해 조종사에게 불러준다. 


피어슨 기장은 위어 기장이 알려준 대로 에드먼턴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연료를 채우려 한다. 지상 이동에 300킬로그램, 예비용으로 2200킬로그램, 모두 22,300킬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면 22,300킬로그램에서 이미 탱크에 들어있는 7,682리터를 빼야 한다. 7,682리터는 몇 킬로그램인가. 


리터를 킬로그램으로 변환하는 공식을 캐나다인은 학교에서도, 항공사에서도 교육받은 적이 없다. 킬로그램을 쓴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이럴 땐 급유 매뉴얼을 찾아보면 된다. 주유원이 문서를 뒤적이더니 찾아냈다. 


“1.77을 곱해야 합니다.”


아니다. 0.8을 곱해야 한다. 1.77은 리터를 파운드로 환산하는 수치다. 

변환이 헷갈릴지 모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쉬운 문제다. 물 1리터가 약 1kg이다. 항공유는 당연히 물보다 가볍다. 1.77을 곱한다는 말은 기름이 물보다 훨씬 무겁다는 말이다. 숫자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다. 핵심을 봐야 한다. 기름은 물보다 가볍다는 상식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엔지니어 두 명이 종이에 적어 계산한다. 곱셈 계산이 서툴어 어지러운 계산으로 종이를 채우며 애를 먹는다. 보다 못한 부기장이 계산을 돕는다. 부기장은 계산에는 밝다. 여러 차례 검산도 한다. 너무나 중요한 수치이니 꼼꼼히 해야 한다. 비행기에 실려있는 연료는 13,597킬로그램이라는 답이 나왔다. 계산이 못 미더웠던 피어슨 기장은 계산기를 꺼내 다시 한번 검산한다. 수치는 정확하다. 다만 13,597킬로그램이 아니라, 13,597파운드다.

기장은 22,300킬로그램에서 13,597파운드를 뺀다. 

8,703이라는 혼란스러운 답이 나온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유원이 급유를 해야 하니, 리터로 바꿔야 한다. 

어떻게? 조금 전에 썼던 수치 1.77을 다시 한번 써 버린다. 한번 한 실수를 반복한다. 8,703 나누기 1.77은 4,916.  


주유원: 4,916리터니까 반올림해서 5,000리터 급유하죠.


많이 넣었다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필요양의 1/4만 급유했다. 누구도 실수를 깨닫지 못한다. 엔지니어는 나중에 조사를 받을 때 비로소 문제를 깨달았다. 


기장은 신경 쓸 일이 더 많다. 양 날개 탱크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평소라면 한쪽이 최대 1,100킬로그램이 무거워도 이착륙은 할 수 있다. 비행 중 밸브를 열어 한쪽으로 옮겨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지금은 연료측정 시스템이 고장 났으니 급유할 때 맞춰두지 않으면 안 된다. 기장은 주유트럭을 다시 불러 300킬로그램을 더 넣는다. 


출발

몬트리올에서 오타와까지의 비행 중 객실 공기 공급 밸브 경고가 들어왔다 꺼진다. 거슬리는 경고다. 정비사는 경고가 반복되는지 지켜보라고 한다. 조종사의 신경이 꺼진 경고등에 쏠린다.


오타와 공항에서 출발할 때의 승객은 61명, 승무원 8명, 모두 69명이 탑승했다. 이중에는 가족 여행 중인 에어 캐나다 정비사 릭 디온도 있다. 피어슨 기장이 글라이더를 타다 만난 친구다. 기장은 반갑게 인사하며 조종석으로 초대한다.


오타와에서 다시 드립 스틱으로 연료량을 측정한다. 


정비사: 왼쪽 탱크에 5,681리터, 우측 탱크에 5,749리터, 합계 11,430리터입니다.

기장: 비중은 얼마인가요? 

정비사: 1.78입니다. 


또다시 파운드 환산을 한다. 이번에는 1.77이 아니라 1.78. 0.01 차이가 난다. 온도 차이 때문인가. 11,430리터 곱하기 1.78은… 


기장: 20,000은 넘네. 


에드먼턴까지 필요한 연료는 19,600킬로그램이다.


기장: 연료는 충분하네요. 급유는 필요 없습니다. 


잘못 꿴 단추를 이어서 꿴다. 


완벽한 날씨

이제 오타와를 출발해 에드먼턴으로 향한다. 평소보다 767이 힘을 더 내는 느낌이다. 탑승자가 69명이니 기체가 가벼운 것 아닐까. 연료를 덜 실어 가볍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비행계획상의 순항고도는 고도 39,000피트지만, 기장은 고도 41,000피트에서 순항하기로 했다. 높은 고도에선 연료도 아낄 수 있고, 다른 항공기가 못 올라오기 때문에 에드먼턴까지 직행 허가도 쉽게 받는다. 767만의 매력이다.


연료가 45분 분량이  남으면 연료 부족 경고등이 켜져야 한다. 그러나 연료 측정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으니 연료 부족 경고도 뜨지 않는다.


기장: 위니펙 센터, 143편입니다. 에드먼턴 기상을 알려주십시오. 


APP:고도 3500피트에 구름 약간 , 고도 30000피트에 구름 산재, 가시거리 15마일, 기온 24도, 이슬점 15도, 풍향 170도 풍속 7노트. 고도계 수정치 999입니다.


기장: 들었지? 

부기장: 네. 거의 완벽한 날씨네요. 


기내방송: 안녕하세요. 승객 여러분. 부기장입니다. 이 비행기는 현재 레드 레이크 상공 41000피트에 있습니다. 에드먼턴까지는 800마일 남았습니다. 에드먼턴은 섭씨 24도로 화창하고 맑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날씨다. 아까 초대했던 정비사 릭 디온이 조종석에 인사하러 온다. 릭은 아직 767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최신형 767 계기를 바라보는 릭 디온의 눈이 반짝거린다. 


경고

몬트리올에서는 급유 문제로 28분 늦었지만, 지금은 일정보다 7분 빠르다. 오타와에서 지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기장은 기점에 다다를 때마다 연료 소비량을 확인한다. 최소 요구량보다 3,300킬로그램이 더 많다. 측정한 것이 아니라, 미리 입력한 수치에서 감소된 수치다. 


그때 경고음이 울린다.


부기장: 이게 무슨 소리죠? 

기장: 이런 젠장. 


마스터 경고가 뜬다.


부기장: 연료 펌프 이상입니다. 

기장: 왼쪽 전방 연료 펌프야. 

왼쪽 날개의 펌프 하나가 낮은 압력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놀란 것도 잠시. 훈련받은 조종사들은 표준 운영 절차에 들어간다. 냉정하게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 조종사 두 명이 복창하며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무엇보다, 항공기가 계속 비행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기장은 긴급참조교범을 찾아 읽는다.


기장: 주 탱크 중 하나의 압력등이 켜지면 정상 운항 계속. 

If one main tank pressure light is on, continue normal operation. 


기장: 중앙 탱크 압력등이 켜지면 교차공급 밸브 스위치 켠다. 

If one center tank pressure light is on, cross-feed valve switch on.


기장: 우리와 상관없는 내용이야. 


지금 상황에 맞는 조치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 중대한 경고다. 펌프 압력이 준다는 건 연료탱크가 비어간다는 뜻이다. 기장은 오른쪽 탱크에서 왼쪽 탱크로 연료를 공급한다.


다시 경고음이 울린다. 왼쪽 날개의 다른 펌프도 작동을 멈췄다. 왼쪽 날개 펌프 둘 다 기능이 정지되었다.


기장: 젠장. 위니펙으로 가야겠는데. 


기장은 즉각 판단한다. 릭은 의견을 말한다. 펌프 고장이 아니라 연료 문제일 것이다. 연료량을 잘못 계산하지 않았을까. 오른쪽 탱크에서 연료를 공급받아야 한다. 


피어슨 기장이 조종간을 건네받는다.


기장: 위니펙으로 가자. 위니펙 직행 허가를 받아줘. 

부기장: 위니펙 센터. 에어 캐나다 143편입니다.

APP: 에어 캐나다 143. 말씀하세요. 

부기장: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기장: 위니펙으로 진행 중입니다. 위니펙 직행을 요청합니다. 

APP: 에어 캐나다 143, 현 위치에서 위니펙 직행  허가합니다. 31번 활주로 사용 중. 6,000피트까지 하강에 제한 없습니다. 

부기장: 감사합니다. 6천 피트로 하강. 


이제 위니펙으로 직행하며 6천 피트로 하강하면 된다. 기체는 서서히 좌선회 한다. 왼쪽 연료 펌프가 둘 다 작동되지 않으니 왼쪽 엔진은 언제 꺼질지 모른다. 엔진 추력을 내려 하강률을 높이며 연료도 아껴야 한다. 한쪽 엔진으로 착륙하는 훈련은 주기적으로 받아 왔다. 아직은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부기장은 위니펙까지의 하강 경로를 계산한다. 


긴장된 조종석 분위기에 릭이 일어서자 기장이 만류한다.


기장: 가지 마. 여기서 뭐라도 도와줘. 


비상 착륙

연료는 얼마나 남았을까. 11톤이 남아있다고 비행컴퓨터에는 표시된다. 왼쪽 탱크의 연료량까지 더 한 값이다. 왼쪽 탱크에 연료가 있다면 연료펌프는 왜 멈추었을까. 비행컴퓨터의 수치를 신뢰할 수 없다. 남은 연료는 얼마나 될까. 이 비행기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경고음이 연달아 울린다. 경고등이 6개 켜졌다. 연료 펌프 6개가 모두 작동을 멈췄다. 이제 의문은 사라졌다. 남은 연료는 없다. 엔진이 둘 다 꺼질 것이다. 양쪽 엔진 없이 착륙하는 훈련은 받지 못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기장은 사무장을 부른다. 사무장도 3000시간의 비행시간을 가진 사업용 면장 보유자다. 사무장이 조종석에 들어서며 경고등을 확인한다.


부기장: 위니펙으로 갑니다. 연료 시스템에 문제가 있습니다. 위니펙으로 회항합니다. 현재 120마일 거리입니다.

기장: 승무원들과 비상착륙 준비하세요.

기장은 릭과 상의한다. 기울이지 않고 평행한 자세로 하강하면 고여있는 연료까지 다 쓰지 않을까. 정비사가 동의한다. 


문제가 발생한 지 9분 후, 또 다른 경고음이 울린다. 올 게 왔다.


기장: 좌측 엔진이 정지됐다. 


조종사들은 훈련한 대로 메모리 아이템을 진행한다.


부기장: 추력, 기어 확인.  

기장: 확인.

부기장: 쓰로틀 내리고, 자동추력장치 해제. 

기장: 해제. 

기장: 좋아. 이제… 


그때 또 다른 경고음이 울린다. 이번에 우측 엔진이다.  오일 압력: 하락 중. 온도: 낮음.


부기장: 1번 엔진 정지됨. 비상 차량 대기 바랍니다. 

APP: 143편. 확인. 알겠습니다. 


위니펙 31번 활주로에 갈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여야 한다. 


기장: 18번 활주로에 착륙하겠습니다.


31번에 착륙하려면 남쪽으로 돌아야 한다. 18번 활주로가 조금 더 낫다. 

APP: 여유 생기는 대로 착륙 시 연료량과 총 승객 수를 알려주십시오.


비상차량을 요구하면 규정상 확인해야 한다. 연료량은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제로. 총 승객 수를 파악할 여유가 없다. 조종사들은 단일 엔진 착륙 점검절차를 하느라 바쁘다.


부기장: 최종 접근 플랩은 20. 


양쪽 엔진으로 착륙할 때는 플랩을 30도로 내리지만 단일 엔진으로는 20도까지 내린다. 접근 속도도 10노트 빨라진다. 


부기장: 잠시만요. 중량은 98톤이라고 나오는데.. 


정보가 오염되었으니 중량도 신뢰할 수 없다. 이윽고 믿을 수 없는 정보조차 사라져 버린다.


글라이더

지금껏 비행하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울린다. 시뮬레이터로 비행할 때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정적이다. 


기장: 아니. 어떻게 계기가 다 나가나? 

연료가 떨어지면 엔진이 정지한다. 엔진이 멎으면 최신형 767의 전자 계기도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고도는 28000피트. 비상 점검절차를 확인한다. 보조동력장치 APU를 켜라고 나온다.


기장: 어떻게 생각해?

릭 디온: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 오래는.. 못 버텨.


기장도 이제 말리지 않는다. 보조동력장치 APU를 켜니 몇몇 계기가 잠시 살아났다. 

부기장: 뭔가 살아납니다. 


임시변통일 뿐이다. 계속 날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부기장은 긴급참조교범을 넘기며 램에어터빈 RAT 항목을 찾는다. 

RAT는 기체 아래에 달린 소형 풍력 발전기다. 항공기의 조종은 유압식으로 이루어진다. 전력이 없으면 유압 밸브를 작동할 수 없어 조종을 할 수 없다. RAT가 작동하면 기체의 3축인 피치, 롤, 요를 제어하는 엘리베이터, 에일러론, 러더를 제어할 수 있다. 

딱 거기까지다. 플랩을 내리거나, 스피드브레이크를 올리거나, 브레이크를 걸고, 역추진을 할 수는 없다. 이제 767은 무동력 글라이더가 되었다.


부기장: 위니펙 143편입니다. 

APP: 말씀하십시오. 

부기장: 양 엔진 모두 정지되었습니다. 

부기장: 아. 연료가 없습니다. 아… 승객 수는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관제사의 레이더에서 143편이 사라진다. 트랜스폰더 신호도 날아오지 않는다.


승무원들이 비상착륙 카드를 나누어주는 사이, 사무장이 딱딱한 말투로 비상착륙을 알린다.


“지시사항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신발, 안경, 틀니를 벗고, 주머니 속 뾰족한 물건도 빼두십시오. 엉덩이를 좌석에 바싹 붙이고, 안전벨트는 최대한 단단히 매십시오. 팔을 교차해 앞 좌석 상단을 잡으십시오. 머리는 팔 위에 기대십시오.”


객실에 공포가 감돈다. 예민한 승객들은 적막 속에서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깨달았다. 기장이 조종간을 움직일 때마다 RAT의 풍절음이 저음으로 바뀐다.


APP: 143편. 트랜스폰더 신호가 없습니다. 트랜스폰더를 켜기 바랍니다.  


기장: 143편입니다. 비상상황입니다. 가장 가까운 활주로 방향을 알려주십시오. 고도 22000피트에서 양 엔진 모두 정지. 연료 부족입니다. 계기도 방향 정보만 제한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현 방향은 230도. 가장 가까운 활주로를 알려 주십시오.


APP: 트랜스폰더 신호가 없습니다. 현 위치를 확인 중입니다. 


관제센터는 레이더를 모두 동원해 48초 뒤 143편의 위치를 다시 파악했다. 구형 레이더가 없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APP: 위치 확인. 230도 방향 유지하십시오. 


피어슨 기장은 글라이더로 활공할 때의 감각을 떠올리려 한다. 기수를 들면 속도가 떨어져 실속 할 것이고, 기수를 낮추면 위니펙까지 갈 수 없다. 기장은 부기장에게 계획을 알린다.


일단 위니펙 공항 상공까지 도달한 다음 선회하면서 고도를 조절한다. 너무 높으면 포워드 슬립을 해서 고도를 낮춘다. 포워드슬립은 경비행기에서 쓰는 고도 조절 방법으로, 속도와 방향을 유지한 채 고도만 떨어뜨리는 조작이다. … RAT의 동력으로는 스피드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APP: 위니펙에서 65마일 거리에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김리에선 45마일 거리입니다. 

기장: 갈 수 있겠는데. 

부기장: 김리에서 45마일이라고 합니다. 김리에도 긴 활주로가 있습니다. 

기장: 좋아. 


기장: 김리에 비상차량이 있습니까? 

 APP: 비상 차량은 없습니다. 활주로 하나만 이용 가능한 걸로 압니다. 관제탑도 없고, 정보도 없습니다. 

기장: 그럼, 음, 위니펙으로 가야겠군요.  

위니펙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거기까지 못 가면 어떻게 될까. 최근 일어난 사고들이 떠오른다. 고속도로에 내릴까. 위니펙 호수에 착수할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APP: 143편. 여유될 때 질문에 답해주세요. 

기장: 말씀하세요. 

APP: 먼저, 탑승한 전체 인원수. 둘째, 착륙 시 연료량을 알려주십시오.

기장: 승무원 포함 33명이 탑승 중입니다. 


기장은 차분하게 답했지만, 그 또한 혼란스럽다는 것이 이 대답에서 드러난다. 33명이 아니라 69명이 타고 있다. 


고도가 내려오니 피토관으로 들어오는 공기 밀도가 높아져 지시 속도가 증가한다. 기장은 최적 속도라 생각하는 220노트를 유지하기 위해 기수를 조금 든다. 수직속도 지시기는 작동하지 않는다. 767이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구름 아래로 내려오니 멀리 비행장이 보인다.


기장: 저희 앞 비행장은 어디입니까. 

APP: 네틀리 비행장입니다. 오랫동안 방치된 곳입니다. 지금 상태는 모릅니다. 최근에 쓴 적이 없습니다.

네틀리 비행장은 김리 비행학교의 보조 활주로로 1945년까지 운영되었다. 글라이더 클럽의 비행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기장은 위니펙까지 가보기로 한다.


기장: 좋습니다. 위니펙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이 부기장은 하강률을 계산중이다. 관제소에 거리를 묻고 고도를 기록한다. 계속 반복해서 하강률을 계산한다. 10마일 비행하는 동안 5000피트 고도를 잃었다. 정상 하강속도의 두 배에 해당한다. 35마일을 더 가야 하는데, 지금 고도는 9000피트. 지면으로 갈수록 공기 밀도가 올라가 속도는 느려진다. 부기장은 계산을 이어간다. 정답이 나온다. 12마일 부족.


부기장: 못 갑니다. 12마일 부족합니다. 


김리

19세기 아이슬란드. 강추위 속에 양들은 전염병으로 폐사했다. 1876년에는 아스크야 화산 분출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슬란드 인들은 영화 토르의 이주민처럼 폐허가 된 고향을 떠나  위니펙 호수와 매니토바 호수 사이에 자리 잡았다. 북유럽 신화에서 김리는 천국의 집, 평화의 공간, 낙원을 의미한다.

2차 대전이 벌어지자 김리에 영연방 공군 비행학교가 생겼다. 50년대에는 나토 회원국을 위한 비행학교가 되었다. 60년대에는 캐나다에서 가장 붐비는 비행장이었다. 1968년 트뤼도 수상은 군축 계획을 발표했다. 비행 학교가 문을 닫고, 1971년에는 김리 기지 전체가 폐쇄된다. 군이 떠나며 김리의 경제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민과 정부, 군이 협상한다. 천만 달러를 들여 도로를 다시 깔고 시설을 만든다. 32L 활주로는 경비행기 비행장으로, 32R 활주로는 레이스 트랙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동차 동호인들이 가족들과 휴일을 즐기는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 레이스를 보면서 바비큐를 굽는다. 지역 비행 학교에서 세스나 기로 비행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이제 누구도 김리를 비행과 연관 짓지 않는다. 


7월 23일 토요일도 자동차 경주를 끝내고 바비큐를 굽고 있다. 아이들은 한쪽에서 자전거를 탄다. 


12마일

기장: 김리에서는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APP: 음… 지금 김리에서 약 12마일 거리입니다. 

기장: 어느 쪽이죠. 오른쪽입니까? 

APP: 오른쪽. 4시 방향으로 12마일입니다. 

기장은 결정을 내렸다.


기장: 김리쪽 방향을 알려주십시오. 

APP: 345도로 우선회 하십시오.


이제 구름 아래로 완전히 내려왔다.


부기장: 기장님. 활주로 확인했습니까? 

기장: 그래. 앞에 있네.


기장은 엉뚱한 곳을 활주로로 착각했다. 부기장은 김리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11시 방향을 가리킨다.


부기장: 기장님. 활주로는 저쪽입니다. 

기장: 아, 알았어. 


기체가 조금씩 조금씩 부드럽게 선회한다. 두 번째 기회는 없다. 


기장: 비상차량, 비상차량 대기됩니까. 타운 소방차를 대기시킬 수 있겠죠?

APP: 알겠습니다. 연락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하겠습니다. 


엔진을 상실한 상태에서 기체 속도를 조절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수 각도다. 낮은 고도에서는 공기 밀도가 높아져 속도가 떨어진다. 실속 속도에 이르면 130 톤의 쇠뭉치가 자유낙하한다. 반대로 너무 빠르면 활주로를 벗어나는 사고가 일어난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끔찍할까. 


RAT에서 나오는 유압으로는 플랩을 펼 수 없다. 정상 착륙에서는 플랩을 펴고 130노트까지 감속한다. 지금 상태로는 180노트가 넘지 않을까. 당연히 활주로는 벗어난다. 연료가 없어도 화재는 일어날 수 있다. 착륙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자, 릭은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하고 싶다.


릭 디온: 밥. 나는 객실로 갈게. 

기장: 응. 


기장도 이제 말리지 않는다.


기체의 속도가 더 떨어지면, 풍력 발전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조종은 계속할 수 있을까. 객실은 비상등도 꺼져 어둡고 적막하다. 흐느끼는 승객, 메모를 남기는 승객, 아기에게 담요를 두르는 승객.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한다. 


기장: 활주로 정보를 알려주십시오. 
 APP: 시계비행용으로만 사용됐습니다. 대체로 DC-3기들이 썼습니다. 
 기장: 라저. 그리고… 


기장은 어려운 질문을 한다.


기장: 그리고… 거기 활주로에 사람이나 장애물이 있을까요? 

 APP: 모릅니다. 확실치 않습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조종사들은 하강 속도를 모른다. 관제 레이더에서 사라져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고도는 너무 높다. 속도는 너무 빠르다. 선회해서 고도를 내린 후 착륙해야 할까. 자칫 고도를 너무 떨어뜨릴 수도 있다. 활주로에 다시 정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포워드 슬립

기장: 좋아. 모리스. 기어 내려. 


부기장이 기어 레버를 내리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재빨리 교범을 펼쳐든다. 


부기장: 기장님. 찾을 수가 없어요! 대체 스위치 켜겠습니다. 

기장: 그렇게 해! 


유압이 작동되지 않으면 고정핀을 뽑아 자체 무게로 내려오게 한다.


부기장: 기장님. 제가 제대로 했나요? 

기장: 맞아. 


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진동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 개의 녹색등 중 두 개만 켜진다. 앞바퀴가 내려오지 않았다. 

공기 저항이 생각만큼 증가하지 않는다. 속도도 예상한 만큼 떨어지지 않는다. 고도도 바라는 대로 낮출 수 없다. 바퀴가 없으면 브레이크도 잡을 수 없다. 고도를 급히 낮춰야 한다.


기장은 조종간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오른쪽 러더를 힘차게 찬다. 

에일러론과 러더가 반대로 움직인다. 왼쪽 에일러론이 올라가고 오른쪽 에일러론은 내려가며 좌선회 하려고 한다. 오른쪽으로 기운 러더가 좌선회를 막으며 활주로를 향해 미끄러지며 직진한다. 동체의 옆면에 공기를 흘리며 항력을 만들어내는 포워드 슬립 조작이다. 

날개가 직선으로 뻗은 경비행기로나 하는 조작이다. 기체는 완전히 기울어 45도가 넘어간다. 부기장은 급격한 기동에 손에 쥔 교범을 떨어트렸다. 


부기장 증언: 옆자리에 있던 밥 기장이 발아래에 보였습니다.


기체가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자, 승객도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승객은 골프장에서 쳐다보는 황당한 표정을 알아볼 수 있다. 객실에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린다.


승무원“머리 숙여! 자세 낮춰!”


부기장의 눈에 활주로가 들어온다. 사람들이 보인다. 활주로는 비어있지 않다. 

기장은 군중을 발견하지 못했다. 기장은 착륙에 몰입하고 있다. 현재 속도는 180노트. 이 속도라면 어디까지 내려갈까. 기장은 포워드 슬립 자세를 계속 유지한다. 부기장은 왼쪽 날개가 땅에 닿을까 조마조마하다. 


마지막 순간, 기장은 32R 활주로 대신 32L 활주로를 선택한다. 


기장 증언: 활주로는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속도와 자세에 맞춰 선택했습니다.


고도 40피트. 기장은 자세를 수평으로 돌린다. 엔진소음이 없으니 767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착지

기장의 착지 목표 지점은 활주로 시단에서 1000피트 지점. 이제 서서히 기수를 낮춘다. 접지 지점은 800피트 지점이다. 너무나 완벽한 착지라 공원에 모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여긴다.

군중 데이비드 글리: 저 비행기가 말이야. 이번에 출시된 최신형 767이야.  정말 세련된 항공기지.


안도할 수 없다. 이제부터 또 다른 위기다. 기체의 무게는 132톤, 메인 기어의 타이어 두 개가 터져나간다. 속도는 170노트. 

기장은 러더 페달을 차며 브레이크를 밟는다. 기수가 조금씩 가라앉으며 앞바퀴가 닿아야 하지만 폭발음만 들린다. 노즈 기어가 부러져 땅에 마찰된다. 불꽃이 쏟아지고, 조종석에 탄 내음이 퍼진다. 

오른쪽 엔진 덮개가 땅에 긁힌다. 눈앞에 자전거 탄 소년이 보인다. 이 속도로 가면 충돌한다.


노즈 기어가 없으니 똑바로 가려면 이제 좌우 바퀴의 브레이크를 써야 한다. 조종사의 눈에 흩어지는 군중이 보인다. 활주로 중앙에 가드레일이 있다. 방향을 틀어야 할까. 기장은 직진하기로 한다. 기체가 가드레일에 부딪힌다. 오히려 다행이다. 가드레일에 부딪히며 급격히 감속한다. 정지하는데 단 3000피트를 썼다. 활주로를 벗어나지 않았다. 객실에 환성이 울린다.

비상 대피

조종석에는 연기가 가득하다. 어딘가 불이 났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종사는 알고 있다. 비상 점검절차다. 

부기장: 연료 공급 중단.


부기장은 연료 공급 레버를 내리며 황당하지만 몸에 익은 절차대로 수행한다. 점검절차를 완료하는 사이 연기가 짙게 낀다. 두 사람은 기침을 하며 일어선다. 숨쉬기가 힘들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조종석 문을 열고 객실로 간다. 승객의 탈출을 도와야 한다. 뒤쪽 승객들이 미끄러져 내려온다. 기체가 기운 걸 처음으로 깨닫는다.


기장:소화기 어디 있나?

부기장: 없어요. 착륙할 때 떨어져 나갔나 봐요.

스포츠카 클럽의 용감한 자원봉사자들이 Co2 소화기를 들고 뛰어온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기수 아래 단열재 부분이다. 조종사들도 소화기를 들고 함께 불을 끈다. 김리의 소방차가 달려와 완전히 진화했다. 기체 수리 비용은 백만 달러, 노즈 기어를 교체하는 비용이다. 완벽하게 수리해 24년간 안전하게 운항했다.


어쩌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서로 신뢰하는 두 명이 조종했다. 비행을 너무나 사랑하는 조종사였다. 한 명은 차분하게 계산을 마치고 김리 공항으로 안내했다. 한 명은 글라이더 조종에 능숙했다. 운 좋은 하루는 그냥 찾아온 게 아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온다.


에필로그

비상 슬라이더를 타며 뇌진탕을 입은 승객도 있었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부상자였다. 승객들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승객 나이젤 필드: 비행기에 연료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화가 났습니다. 기장이 정말 환상적인 조종으로 우리 목숨을 살린 건 알지만, 애초에 그 지경으로 만든 책임도 있으니까요.


피어슨 기장은 6개월간 부기장으로 강등되었다. 퀸탈 부기장은 다시 2주 감봉 징계를 받는다. 몬트리올과 오타와의 지상 엔지니어 세 명은 3일에서 열흘간의 감봉 징계를 받았다.


기장: 저는 회사가 두렵지 않아요. 회사가 절 무서워해야죠.


11월 최종 사고조사보고서가 나온다. 


- 에어 캐나다가 비행 안전을 중시했다면, 정부가 압박해도 미터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에어 캐나다는 비행 엔지니어의 공백을 채우지 못했다.

- 연료량 측정 시스템 고장을 대비한 조종사, 지상 인력 훈련이 없었다. 

- 최소 장비 목록 MEL 규정이 불명확했다.

- 여분 부품이 부족해 연료량 측정기 교체가 힘들었다. 


그리고 조종사를 향한 찬사가 뒤따른다.


피어슨 기장의 비행술과 퀸탈 부기장의 적절한 지원 덕분에 참사를 피했다. 재앙을 피한 건 피어슨 기장의 활공 지식 덕이다. 최종조사보고서 78페이지.


비행 승무원과 객실 승무원의 전문성과 기술 덕분에 회사와 장비의 결함을 극복하고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최종조사보고서 104페이지.


 피어슨 기장은 에어 캐나다에서 10년 더 근무한 뒤 58세로 퇴직하고, 아시아나 항공과 계약했다. 1998년에서 2000년 사이 아시아나 747기를 탔다면, 조종석에 피어슨 기장이 있었을지 모른다.


승객 중에는 피어슨 기장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죽을 뻔한 원인을 만들었으니, 병 주고 약 준 것이 아닌가. 평생 잊지 못할 죽음의 공포를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차차 원망은 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김리 활공 30주년 기념행사에서 피어슨 기장은 릭 디온의 아내 펄 디온을 만났다. 배우자와 사별한 지 얼마 안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로받았다. 얼마 뒤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 피어슨 기장은 글라이더 클럽 회장을 하며 글라이더를 즐겼지만, 아내는 좀처럼 글라이더를 타지 않았다. 


모리스 퀸탈 부기장은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사별했다. 3년 뒤 이 사건의 사고조사국장과 만나 재혼했다. A320 기장으로 승급했고, 이후 보잉 767의 기장이 되었다. 604호로도 수없이 비행했다. 


1985년. 토론토 국제공항의 이름이 피어슨 국제공항으로 개명된다. 밥 피어슨 기장의 이름을 기리는 게 아니라, 전 캐나다 총리 레스터 B. 피어슨을 기리는 것이지만 뭐 어떤가.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피어슨 기장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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