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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우 Oct 31. 2022

저물어버린 청춘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며

pray for itaewon

토요일 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 어디야!’ 불안감이 가득한 엄마의 목소리에 난 이제 늙어서 그런 곳 갈 생각 없고 원래도 핼러윈에 관심 없었다며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뉴스를 보고 이태원에 갈 때마다 항상 지나던 익숙한 골목이라 소름이 돋았다. 사건 당일에 이태원에 놀러 간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는 몇 시간 동안 마음을 졸였다. 친구는 사건이 발생되었는지 모르고 근처에 갔다가 구급차와 거리에서 심폐 소생술을 받고 있는 여자분을 보고 놀라 황급히 빠져나갔다고 한다.


안타까운 소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압사 추정 사고’에서 ‘압사 참사’가 되고 ‘부상자’에서 ‘사망자’로 바뀌고 사망자 수가 말도 안 되는 숫자로 늘어나는 것을 보며 너무 허망했다. 다시 일상을 보내면서도 문득 밀려오는 상실감과 슬픔에 하염없이 뉴스만 바라봤다.


사건에 관한 뉴스 댓글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그러게 남의 나라 문화인 핼러윈을 왜 따라 하냐'면서 고인과 피해자분들에 대한 혐오 표현이 너무 쉽게 판치고 있었다. 내 가족이나 친구였어도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그러는 그들은 '남의 나라' 문화인 크리스마스는 한 번도 챙긴 적 없었을까. 누군가에겐 소중한 아들딸이고, 호기심에 한번 구경 가보자고 함께 간 친구들이고, 함께 데이트를 즐기러 나간 연인이었다. 젊음을 즐기고자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러 가고 싶었던 마음을 이해하며 존중하고 배려할 순 없는 걸까. 


문제는 '핼러윈'이 아니다. '인파 밀집'에 방점을 두고 안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새해맞이로 대규모 인파 밀집이 예상되는 곳에 정부, 경찰, 소방 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당장 이번 주 예정된 한국시리즈 결승전이나 부산 불꽃축제와 같은 인파 밀집 장소에 대해서도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만원 버스, 출퇴근길 지옥철에서도 압사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사고는 핼러윈을 즐기려던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안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람이 많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무분별한 비난이 아니라 공감하고 애도하며 추후 비슷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안전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얼마 전 여의도 불꽃축제에 갔을 때 빨간 봉을 든 주최 측과 구청, 경찰, 소방 인력이 곳곳에서 보행을 통제했고, 안전펜스로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벚꽃축제 때도 마찬가지로 여의도 도로를 막아 넓은 보행길로 만들고, 펜스로 통행 방향을 구분해 원활한 이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100만 명 인파가 몰렸음에도 무사고로 축제가 진행될 수 있었다. 핼러윈 주말에 이태원에 최소 10만 명 이상의 인파 운집이 예상되었기에 일방통행, 도로 통제, 지하철 무정차 등 최소한의 대책만 세웠어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생각에 더 답답하고 애통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라는 발언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구청의 역할은 다 했다.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다'라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보면 이번 사고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재난안전법 4조에 의하면 국가 지자체는 재난이나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 외신들은 '지자체와 경찰 준비가 허술하고 행정 당국의 통제 매뉴얼이 없었다'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용산구청은 참사 이틀 전 방역과 청소 대책 위주로만 논의하고 가장 기본인 안전 대책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주최가 없던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경찰청장은 '주최 측이 없는 다수 운집 상황에서 대비하는 경찰의 대응 매뉴얼이 없다'라고 답했다. 코로나 이전엔 20만 명까지 몰렸고 3년 만의 노 마스크라는 점에서 올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은 예상되었는데 주최가 없다는 이유로 안전 대책이 없었다. 행정 당국은 사고의 책임을 인정하고, 주최 측이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조속히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재난안전법 4조
국가 지자체는 재난이나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한다.


인원이 밀집된 곳에 갇힐 경우 두 다리를 벌려 몸을 지탱하고, 두 팔을 복싱 자세로 하여 숨을 쉴 수 있는 최소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사건을 접한 누구나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심리지원단 1577-0199



안타깝게 저물어버린 청춘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애도하며,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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