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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우 Sep 10. 2022

버티는 것만이 정답? 퇴사를 결심한 이유

쉼이 있어야 다시 달릴 수도 있다.

결심하기가 어렵지 사직서 쓰는 건 10초컷이더라



나를 뒤덮어버린

무기력증


내가 번아웃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스스로 약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지금 말짱하다고 우기는 사이에 무기력증이 나를 점점 뒤덮고 있었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퇴근 후엔 방전된 채 집에서 멍하니 넷플릭스 보면서 쉬다가 잠만 잤다. 지금 회사랑 안 맞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지금 회사가 주는 안정감을 버릴 만큼 이직하고 싶은 회사도 없었다. 그냥 '일' 자체가 하기 싫어졌다.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름대로 무기력함을 극복하기 위해 회사는 '돈 버는 수단'이라고 선을 긋고, 퇴근 후의 일상이라도 즐겨보기로 했다. 하루 만에 벚꽃엔딩 기타 연주 끝내기, 가죽으로 명함 지갑 만들기, 드라이플라워로 캔들 홀더 만들기, 레몬나무 식재하기 등 별별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나랑 잘 맞으면 그걸 취미로 삼아야지 싶었다. 필라테스, PT 등 안 하던 운동도 하며 일상에 활기를 되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다 지속할 수 없는 순간의 즐거움이었다.




나를 돌아보는

쉼표의 시간


연차가 쌓일수록 불안했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자리걸음을 걷는 느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직을 결심한 뒤 수시로 경력직 공고를 살펴보고, 헤드헌터 제안도 끊임없이 체크했지만 지원하고 싶은 회사가 하나도 없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는 상태니까 지금보다 연봉이 높은지, 복지가 좋은지 등의 비본질적인 요소만 따지게 되었다.


살면서 나를 진지하게 돌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남들 다 하는 대로 대학을 가고, 취준을 하고, 취업을 하며 흐르듯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무엇이 조급했던지 남들보다 1년이라도 뒤처지는 게 싫었다. 늦지 않게 졸업하고, 늦지 않게 취업하고, 회사 막내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사이에 나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쉼표의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를 돌아보겠다며 생퇴사를 할 용기도 없었다.


친한 언니에게 고민을 말했더니,  아이덴티티 수업을 추천해주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고, 매일 과제도 있다고 해서 고민이 됐다. 자기 성장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수업료도 비싸게 느껴졌다. 하지만 퇴사도 못하고 이직도 못하는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있을까 싶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수업을 신청했다. 그렇게 8주간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나에 대해 던져지는 질문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언제 행복한 사람이지?' 모든 과제가 나에 대한 질문인데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회사를 다니면서 과제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매일 잠을 줄여가며 새벽까지 과제를 했다. 한편으론 나의 지난 삶을 복기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리는 과정이 즐겁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일과 삶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왜 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이렇게 긴 시간 일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정체 시기가 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의 교집합이

더 넓은 곳


번아웃이 왔다고 무조건 퇴사가 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와의 교집합이 더 넓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졌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 회사는 나와의 교집합이 매우 작았다.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길이 생기니 회사에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퇴근 시간만 바라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기엔 내 인생이 아까웠다. 회사에 있는 시간도 내 가치대로 일하고,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는 자도 일을 즐기는 자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사람이 어떻게 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것은 이상일 뿐이라며 치부하고, 하기 싫은 일을 무기력하게 이어가기엔 한 번뿐인 내 인생이 아깝지 않은가.


수업을 들은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퇴사도 했다. 아직도 나는 나와 꼭 맞는 회사가 어디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해야 가장 보람차고 즐거울지 여전히 정답은 모른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한 것이 아니고 생퇴사를 한 것이기에 커리어 단절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걱정도 된다. 그럴 때마다 속도보단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떠올린다.


조급한 마음을 뒤로하고 성장 마인드셋을 유지하며 하나씩 차근차근 내 작은 관심사들에 도전하고 키우는 과정 중에 있다.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번아웃까지 와버렸는데, 이제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사람들의 일상에 즐거움을 선물하는, 그리고 더 나아가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쉼이 있어야 다시 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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