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10시 24분, 주간회의를 목전에 둔 이 타이밍에 울리는 벨소리, 모니터 지지대 위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쳐다봤다.
"플라워 댄스"의 멜로디... 평소의 그 감미로운 음률은 온데간데없이 신경질적인 소음으로 내 귀를 긁는다.
"내 사랑"라는 발신표시를 확인했다. 결혼생활 동안 이어져온 아내를 향한 고결한 사랑의 건재라기 보단 양심 고백컨데 귀찮니즘의 승리에 가까웠다. 물론 입 밖으로 절대 꺼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지켜왔던 나의 안락한 가정에 불씨를 끼워 넣을 순 없기 때문이다. 삼십 분에 회의가 시작하기에 용건을 들을 정도의 시간은 있으리 생각했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스피커 넘어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
"당신 바빠? 지난주에 말했는 거 있잖아~ 우리 송이... 유학 마지막 학기 등록금, 목요일까지 내야 하는 거 알지?
"어어 기억나"
"아 금액이 약간... 부족하네 여유 돈 남는 거 없어?"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응.. 중요하잖아"
결혼 이후 아내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직장을 관두었다. 그때 당시 수공예 전문 주얼리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수입이란 게 살림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냥 일하고 싶으면 계속해도 돼"라는 말을 하려 의식적인 노력을 했으나 실상 입안에 맴돌 횟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방임으로 인해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아내는 조울증 얻게 되었다. 병원도 다니면서 약 처방을 받아 복용을 했지만 쉽사리 호전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학 관련 모임을 다녀오더니 조울증의 자취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모 산부인과 인큐베이터에서 처음 송이를 봤을 때 나와 붕어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송이가 영아기 무렵부터는 점점 외탁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아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유치하게도 그게 뭐라고 티는 안 냈지만 약간의 섭섭함도 들었다.
봄, 어느 날로 기억된다. 유치원 스쿨버스는 항상 오전 일곱 시 반에 아파트 단지에 정문에 들어와 셔틀 준비를 한다. 마중 나와있었던 아내의 손은 송이의 옷매무새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애정 어린 시선은 지그시 송이의 얼굴을 향해 한참을 머물렀다.
어디서 봤더라? 꽤 낯익은 광경이었다. 아.. 생각이 났다. 아내가 출근 전 회사를 다녔을 때 전신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만지던 그 모습..
먼지 묻어 있었던 자아의 바통을 털어서 송이에게 건네주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추측은 아내에게 결코 말하지 않았다. 전범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방조죄는 인정하기에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분기 실적 보고로 곤두서 있던 찰나에 아침부터 돈 이야기라니… 신경질란 놈이 선수를 쳤다. 그리고 후발로 따라오는 죄책감과 동정심...
한숨을 나왔다.
"하아... 월요일에 오전에는 회의하니까~ 전화는 좀 자제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점심시간 때나 전화를 하지... 아직 몇일 남았잖아 일단 알아서 할 테니까 끊어~ 바빠!"
"아. 미안해.. 그래도.. 미리 말을 해놓는 게"
아차 했다. "알아서 할 테니까"라는 말은 기분을 상하게 한다고 평소 자제해 달랬던 와이프의 말 뇌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딱히 뭐라 할 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방패 삼아 모른 척을 했다. 이십삼 년이란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고 길면 긴 결혼생활 동안 우린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서로 간에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갔음에도…. 관성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지난달, 주택대출 상환을 말끔히 한다고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모두 썼었는데 유동자금이 부족한 게 화근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마지막 보루는 노후자금으로 묵혀두었던 M기업 주식에 손을 대는 것이 남아있다.
"그래 내 딸내미 마지막 학비인데.."
실적보고는 결코 흐트러짐 없이 꼼꼼히 해야 한다. 사소한 실수로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특히 저 능구렁이 김 차장이 언제 내 뒷덜미에 누런 이빨을 쑤셔박을지 모르니까 어느 그 순간 보다도 프로페셔널하게 보여야 한다. 출전을 앞둔 전사가 되어 숨을 고르고, 안락한 가정이라는 전리품을 얻기 위해 콜로세움 입구에 무거운 첫발을 내딛는다.
보고를 마친 후 확실한 결과는 설탕 맛난 인사치레가 아님을 안다. 미묘한 표정에서 읽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는 것을 오랜 시간을 걸쳐 체득했다. 불혹이 넘은 나이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예가 지금 바로 내 눈앞에 있다.
본부장님 미간에 패인 주름의 변화를 캐치했고 바로 옆 부사장님의 입가에 어린 미묘한 근육의 움직임을 보았다. 5년 전에 이직한 본부장님은 감정억제라는 능력의 부재로 늘 가뭄이 미간 드리웠고 순수 직계 가족회사의 주인공이신 부사장님은 대체로 웃음꽃이 만개했기 때문이다.
<옥상>
바람이 차다. 뭐 대충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김 차장 무표정을 뒤로하고 나왔기에..
때마침 다시 울리는 "플라워 댄스" 이번엔 감미로운 멜로디가 나의 기분을 환기시켜준다. 같은 곡임에도 이렇게나 매번 다른 영향력을 주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이십 대 후반, 형형색색으로 나뭇잎이 물들던 가을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교외의 한 카페, 바닥에 번진 색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코스타리카 불칸의 향을 맡고 있었다. 그때 여자 친구가 갈색 종이 꾸러미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었다.
음대생 출신 아니랄까 봐 레코드 판이었다. 당시 음악에 문외한이었기에 실물 레코드를 난생처음 봤다. 납작하고 동그란 것이 원반 던지기 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니..
"나중에 들어봐 봐"
"이거 어떻게 듣는 거야?"
라는 다소 멍청한 질문에 여자 친구는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다음날, 현관 앞에 턴테이블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샤워를 마친 후 포장지를 뜯고 레코드를 올려 보았는데 플라워 댄스는 거기에 수록된 곡 중 하나였다.
음.. 뭐랄까? 퇴근 후 침대 누워 레코드를 돌리고 있으면 잔잔한 음률이 방안을 떠돌다 내 눈꺼풀 위에 살포시 내려앉곤 했다. 그때부터 이곡은 내 삶 전반에 스며들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스쳐간 인연들의 흔적을 몸에 어떠한 형태로든 자리 잡아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대학생 때 사귄 여자 친구 제법 부유한 집의 딸이었는데 스무 살 초임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관심이 많아 데이트 코스로 간간히 와인바에 들리곤 했다. 친구들 호프집 가서 치킨 뜯을 때, 상대적으로 뭔가 고상해진 느낌이 퍽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질병의 전조현상, 시간이 지나 받은 진단서에는 병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예. 술. 병
어찌 되었건 덕분에 구세계 와인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기념일 때에도 프랑스 그랑크뤼 1등급 와인들, 샤또 라뚜르, 샤또 오브 리엥 등.. 둘이 돈을 모아서 축배를 들었었다. 그때는 인생 경험이라는 포장지가 너무 예뻐 한창 모았던 시기였다. 과외 아르바이트 비용을 대부분 탕진하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지금 결혼기념일 때도 샤또 라뚜르를 즐긴다. 웃기게도 이런 취미는 지금 결혼생활의 유대감에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주얼리에 디자인을 종사했던 아내 역시 예. 술. 병 환자로 추정되기에 잘 맞나 보다. 이것들 모두 지금 아내에게 비밀이다. 이 또한 안락한 가정을 위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현섭아, 요번 주말쯤에는 엄마 좀 찾아뵈라~ 저번 가족 전체로 갈 때 빠졌다고 내심 섭섭해하시더라 바쁜 건 아는데 크카믄 안된다이"
향토색 짙은 큰 누나였다.
"어어 알겠어"
"그러고 이번에 연휴에 평생 한 번은 가고 싶어 하셨던 예루살렘 한 번 보내드려야 되지 않겠냐? 혹시... 모르니까"
부산에 살고 있는 터울 차이가 많이 나는 엄마 같은 누나
초등학교 4학년 여름. 아침에 출근 전 아버지는 현관에 앞에다 우리 형제들을 불러 세우곤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지금 일을 하러 가는 거다. 그럼 너희들은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냐? 현섭이 말해봐 봐"
멈칫거렸지만 나는 대답했다.
"공부입니다"
"그래 맞다. 단디 해라"
라는 다소 독특한 교육법을 가지셨던 아버지, 그날 제철공업단지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불운의 산업사고로 일찍이 세상을 등지셨었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중 처음 그 소식을 선생님께 전해 들었을 때 전혀 믿기지 않았다. 권태에 물들어 영원할 것 같던 반복적인 일상의 궤도는 별안간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변했다. 급. 격.. 히
그때부터 어머니는 웃음을 담보로 단단한 울타리를 구매하셨고 신앙심이라는 지붕을 올리셨다. 가성비 뛰어난 그 안락한 공간 안에서 우리 형제들은 비바람을 피해 자라났다. 불평불만은 사치였고 큰 누나는 자연스레 우리 형제들 모두가 인정하는 엄마라는 직책으로 승진했다.
"알겠어~ 토요일 오후쯤에 현이 종합반 학원 데려다주고 병원에 들를게"
"그려 단디 가라이"
전화를 끊고 담뱃갑에서 하나들 더 꺼내 들었다. 초겨울 옥상 위 스산한 바람은 내 목을 한번 감싼 후 흰 연기를 물고 지나갔다.
작년 여름이었다. 자주 찾아뵙진 못하고 한 번씩 거는 안부전화 말미에 속이 빈번히 쓰리다고 하시던 것이... 흘려 넘기지 말고 진심으로 귀를 기울었어야 했고... 병원 가서 검진받아보라고 말만 하지 말고 직접 모시고 병원에 들렸어야 했다.. 그중 하나라도 실행에 옮겼다면 지금은 지금이 아니었을 것이다.
찰나의 뜨겁고 희뿌옇던 감정이 증발하자 이성의 바닥이 드러났고 그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녹낀 저울이 보인다. 그위에 왼쪽에 "딸 송이의 마지막 유학 학비"그리고 오른쪽에 "어머니의 예루살렘 경비"를 살포시 올려놓았다.
다시금 스쳐가는 바람,
차다.
<퇴근길>
실적 발표 후 임원들과 함께한 점심식사가 문제였나 보다. 강남에서 가장 유명한 초밥집이라는데 웃기게도 전날 보고서 작성하면서 야식으로 먹었던 참치마요 김밥이 더 미뢰에 남아있다. 더룩한 속인지 아니면 아랫배 때문인지를 확인하러 지하철의 화장실 향해 뛰었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다르자 다행히도 마지막 칸이 비워져 있었다. 그리고는 황급히 들어갔다.
"후우" 이 달콤한 보상은 소확행 정수가 아니겠는가.
역시 아랫배였군...
노후자금 M사 주식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인, 일일 일 차트 확인 후, 나가려던 찰나 구석에 있던 작은 카탈로그를 발견했다.
화장실에 부착하기엔 꽤나 이질감 날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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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
○ 주식
○ 부동산 투자
○ 입시
○ 기대수명 등
"어라? 기대수명 예측!?"
신혼 무렵 주택청약에 당첨되었다. 기쁨도 잠시 막상 목돈이 부족해 골치였었는데 그때 생에 처음 로또를 샀던 것이 떠올랐다. 인간이란 그렇다. 혼란 속에서 스스로 방법을 고안해내지 못하면 막연함의 숲에서 희망의 꽃을 찾는다. 하루만 지나서도 돌이켜보면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건 매번 되풀이된다. 실체 없는 그 향이 꽤나 중독성이 있나 보다. 바로 지금처럼
호기심과 기대심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후 마음에 담아 핸드폰을 눌렀다.
클래식 신호음이 몇 초간 가다 잠시 후 상담원 연결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20대 중반 정도의 여성의 목소리
"아... 여기 00 센터 맞나요? 광고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네 맞습니다 고객님"
"음.. 혹시 여기 항목 중에 기대수명이 있는데 이게 대체 뭔가요?"
"기대수명 항목 말씀이시군요. 일단 우선 회사 소개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00 센터는 핵심전력인 슈퍼컴퓨터 후카쿠를 활용해 개인의 컨설팅을 도와드립니다. 후카쿠로 말씀드리면 세계 최고의 컴퓨터 비전 학회 ICCV(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mputer vision,)에서 2031년 수상한 슈퍼컴퓨터로 연산속도는 기존의 슈퍼컴퓨터인 서미트를 2.8배가량 앞서는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합니다. 때문에 예측을 정확하고 빠르게 합니다. 비용은 주식투자항목은 1년 만기, 1억 비용 선계약금 2000으로 시작합니다. 월 2회 초과 손해금액이 발생하면 AS 컨설팅 가능하며 원금상환 10%로 보험을 들어드립니다 , 부동산은 1년 5000만 원 블라블라~~~"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으나 세상 참 변했구나 싶었다.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도중에 끊기로 마음먹었다. 속도 별로 안 좋고 오전 아내에게 무심하게 말했던 것이 꽤나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아 저는 아까도 말했지만 기대수명을 알고 싶은데요. 기간 계약할 생각은 없고 그냥 궁금해서"
"아 고객님 그러시구나"
"기대수명에 항목에 관해 간단히 설명드릴게요. 가족력, 거주지, 직업, 병원 이력, 학력, 식습관(신용카드결제내역) 등과 같은 당사자의 개인의 정보를 활용해 기대수명을 예측하는 것으로 사고로 인한 외과, 혹은 암과 같은 내과질환, 성인병, 그리고 마지막으로 뇌질환, 가령 알츠하이머과 같은 점진적 뇌사를 포함해 사망 날짜를 예측해 말씀드립니다. 이는 데이터를 수집한 현재 기점으로 변동될 수 있으며 기간단위가 아니면 기대수명 예상은 1회당 오십만 원입니다."
오십만 원 적지 않은 돈이긴 한데 저울대의 녹을 벗기기엔 괜찮은 것 같다.
불효심이라는 죄책감이 마음 짓눌렀다. 하지만 애써 버티며 물어봤다.
"그.. 저는 아니고 저희 어머님 정보를 알고 싶은데"
"아 네에 고객님 그렇다면 지금 사용 중이신 핸드폰 명의 본인이시죠? 팝업 메시지를 보내드릴 텐데 결재하시려면 주민번호 앞자리 여섯 자리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팝업 메시지가 날아오자 버튼을 누른 다음 연이어 결재내역 확인창을 확인했다.
"네 고객님 결재승인 확인되었고요~ 어머님 주민번호 말씀해주세요"
"아 네 잠시만요"
일전 주소지 이전에 관한 문제로 행정 처리했을 때 참고했던 어머니의 민증번호, 캡처본을 핸드폰에서 찾았다.
"580403~2341341"
"네 고객님 정보가 조회되었네요
음, 1978년~1998년까지 P섬유공단, 재직기간 시 산업사고 보험 2건, 지금 S사 미화일을 하고 있으시기에 산업재해 사고확률 0.23% 가족력 보니, 간과 위쪽 암으로 인한 사망자 분이 세 분 계시네요. 1997년과 2002년경, 위 관련 진통제 및 처방 2회 , 2024년에 위염 진단, 2027년 위궤양 수술 1회 진행, 2031년 현재 K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위암 말기로 투병 중이시네요 이 데이터로 추정컨데 예상 기대수명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이내 머리가 뜨거워 짐을 느꼈다. 편두통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자 과열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일부러 두 정거 장전 잠실나루 역에서 내렸다. 땅거미 가져 평소보다 한산한 한강 산책로 입구의 어둠은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입구의 어둠을 가로지르자 이내 광활한 한강이 펼쳐졌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은 나의 피부를 때렸다. 그 습기는 찝찝함을 등가교환으로 열기를 가져갔다. 대략 삼십 분쯤 걸었을까? 십여 미터 앞 홀로 덩그러니 놓인 가로등 아래의 벤치가 보였다.
이문제의 결론 내리기에 적합한 장소라 생각했다.
M사 주식을 몇 줄을 처분해서 먼저 보냈다. 왜냐하면 그다음 주 텀에 M사의 R&D 한 제품이 시장에 선보이니까 그 이후 몇 주 더 처분해 예루살렘 경비를 마련해 다음 달 누나와 함께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리고
"여보 송이 학비, 생활비 계좌에 넣어놨으니까 그걸로 목요일 송금해 ~ 한 시간 뒤쯤에 집에 들어갈 것 같아"
밤바람에 다시금 담배를 꺼내 들었다.
<토요일 부산 M호스피스 병동>
새벽 여섯 시쯤을 눈을 떠 준비를 했다. 부드러운 음료 말고는 드실 수 없는 상태로 알고 있기에 위 점막을 보해준다는 양배추와 당근, 그리고 맛을 위해 사과를 함께 갈아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약 다섯 시간 긴 운전 끝에 바로 병동으로 향했다. 로비 문을 지나자 병원 특유의 소독 냄새가 코안으로 밀어닥쳤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피하는 냄새 중 하나다. 만약 스틱스의 강이 실존한다면 거기서 나는 물 비린내는 이 냄새가 아닐까? 그 공간에서 외진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간호사와 의사들을 보고 있으면 때론 경건하기도 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낯설지 않은 그들은 일반인들보다는 최소한 인생을 가치 있게 살지 않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처음 호스피스 병동에 방문했을 때 외진중이던 의사들이 의식적인 밝은 표정과 제스처가 다소 거북했다. 환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주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위트나 농담이 이 공간에 흑백사진 속 컬러점 같은 거슬림으로 작용했는데.. 그 공간에 익숙해지자 오히려 그것이 현명한 처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환자는 다른 누구보다 절망의 깊은 구렁텅이에 갇혀 있는데 굳이 주변인들이 굳이 더 구렁텅이를 파줄 필요가 없다. 최소한 마음 상태만이라도 일상이라는 공간 안에 함께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훨씬 났다. 병문안 온 가족들이 다 떠난 뒤 홀로 남겨진 시간 동안 이미 충분하다.
"어머니와 대화 씬"
그다음 주 R&D발표와 동시에 주가는 상승하지만 그때 걸려온 전화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의 기시감 엄습했고
역시나 어머니의 운명 소식
당장 계열사에게 전화를 걸어 시시비비를 따지지만
실상 민증상과 생년 월일은 실제 나이가 아님, 옛날 행정체계가 미미할 때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2년까지 늦게 올림, 당신보단 자식들이 먼저였기에 그런 걸 터부시 함 자기 나이를 민증상으로 살아가심,
앞으로 5개월 정도면 되는 줄 알고 했을 텐데 누락된 정보’
어머니 병실 신변 정리 때 서랍장에서 발견한 수첩, 바랜 가족사진 밑에 삐뚤삐뚤한 글씨 "안락한 가정" 수첩을 진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다음장을 넘기자 예루살렘의 사진이 나왔고 "여기였으면 좋겠다"라는 글... 시간차로 위에 번지는 눈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성지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예루살렘 성지에서 운명을 맞이 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작은 소망... 정확한 데이터보다 오히려 작은 관심 부재로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라는 스토리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부모>
떠오르는 감정 그리움, 애틋함, 사랑, 효도, 죄책감, 슬픔 등
이런 감정의 공통분모는 유한한 시간을 인식하지만 미루는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라는 마음에서 글을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