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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만 Jul 12. 2022

컨벤션웨딩센터

<단편소설>



‘하나 둘 사진 찍습니다!’

‘아니 신부님 이 좋은 날에 왜 이렇게 우세요? 울어서 화장 번지면 예쁘게 안 나옵니다.’

‘아.. 그걸 아는데요 눈물이 계속 나요. 그냥 너무 행복하기도 하고 감회가 새로워서요.’

세라의 미약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자연스레 주변 하객들의 시선이 당겨졌다. 옆에 서있던 형섭은 지그시 세라를 바라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부드러운 손길로 닦아냈다. 하지만 그 섬세한 노력에 비해 결과는 반대였다. 세라의 눈은 더욱 젖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가지런한 미백의 치아를 살짝 노출시켰다. 빤히 형섭을 쳐다보고는 차분하게 물었다.

‘그렇지 오빠?’

세라의 촉촉이 젖은 눈은 빛나듯 반짝였고 그 모습에 형섭은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게 세상일 정말 알 수 없네. 우리가 다시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나 역시 오늘이 생에 가장 기쁜 날이야! 우리 또다시 이곳에 올 때 이렇게 행복한 날이 오게끔 잘 살자’

‘응..’

짧지만 눈물에 젖은 미소에 비해 결연한 대답이었다.

‘그만 울어 사진 촬영비 비싸게 줬잖아. 대신 이 순간을 최대한 아름답게 간직하자’

‘그래 오빠..’

두 시간 전 신부 대기실

‘와~ 세라야 너무 예쁘다. 다이어트 정말 엄청 했구나 사진 많이 찍어둬야겠어. 널 알고 가장 예쁜 순간이야 완전히 꽃이네 꽃!’

지희는 낯익은 동기들 사이에 앉아있는 신부에게 미소를 앞장 세워 말을 건넸다.

지희는 이른 오전, 꼼꼼히 세안한 후 화이트톤 화장대에 앉았다. 오전의 따사로운 햇살은 세틴 재질의 흰 커튼을 투과해 뺨에 닿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후 비장한 마음으로 천천히 풀 메이크업을 진행했다. 그 후 발걸음을 옷장으로 향했고 결혼식을 앞두고 구매한 진한 인디고 색 샤넬 st 트위드 슬리브리스 원피스 찾았다. 분주한 손놀림에 길지 않게 발견을 했고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에워싼 부직포를 조심스레 벗긴 다음 현관 신발장으로 향했다. 작년에 사두고 몇 번 신지 않았던 블랙 프라다 킬힐 꺼내 보았는데 굽 부분에 가벼운 스크래치가 눈에 들어와 거슬렸다. 하지만 신다 보면 사용감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다고 위로했다.

마지막으로 몽토르고이GM과 블랙 디올 파우치 중 무엇을 들까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했다. 불필요하게 큰 사이즈의 가방은 스키니 감이 있는 원피스를 입었을 때, 스스로가 자신 있는 바디 쉐입을 침해하기에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식전 착장 후 하이라이트로 단골 헤어살롱에 들렸다. 단발 모즈펌이 시간이 경과해 풀린 감이 있었기에 겸사겸사 들린 것이다. 그렇게 풀 세팅을 하고 난 이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그러면 스스로 몸가짐에 대한 묘한 자신감을 향유할 수 있었다.

이따금 다운된 기분을 환기해줄 때 애용하는 루틴이었다. 평소에는 핫플레이스를 향했지만 오늘은 세라의 결혼식장이었다. 지희는 자기도 모르게 평소보다 손이 더 많이 갔지만 피로감은 전혀 없었다. 완결된 꾸밈의 자신감을 지금 이 장소까지 최대한 휘발 없이 가지고 오려고 꽤나 신경을 기울였다.

‘아니야 신부화장을 받으면 다들 그래.. 오히려 너 결혼식 때가 더욱 기대돼 지희는 너는 평소에도 예쁘니까’

그렇게 수줍게 말하는 세라의 눈을 쳐다보는 지희, 그녀의 눈에서 행복함이 촉촉이 번져있었고 그 유광성 눈동자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다. 지희는 시선을 오래 머물 자신이 점점 사라질 것 같았다. 내색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시선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부대기실은 전반적으로 화이트 톤에 옅은 카키색 커튼과 파스텔톤의 설유화로 공간을 아름답게 채웠고 남은 여백공간의 밀도를 에릭 사티 짐노페디의 1번 피아노곡으로 틈새 없이 채웠다. 그리고 주변 익숙한 동기들 사이에 부드러운 회색 벨벳 소파 위에 세라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무엇보다 지희가 세라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 다가가자 딥톤의 자신의 코디가 색 대비 효과로 세라를 더욱 돋보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미묘한 감정의 조각들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동기들.. 그리고 세라가 알아볼세라 지희는 빠르게 입을 뗐다.

‘형섭 선배는 분주하더라?’

‘응.. 아무래도 혼주 옆에서 오시는 분들 인사받아야 하니까 오빠는 정신이 없을 거야’

‘그렇겠지 축하해 얘 그렇게 선배랑 티격태격하더니만 결국은 결혼하네~ 내가 많이 도와줬다 정말! 알지?’

‘맞아 네 덕분이야 고마워 지희야’

다시금 미소 짓는 세라, 주변 친구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찰나를 인지한 지희

‘사진 많이 찍어줘서 나한테 보내줘 친구들한테 자랑하게 이렇게 예쁜 애가 내 친구라고. 잠시 형섭 선배 얼굴 보고 올게 말을 못 건넸거든’

‘그래 지희야 와줘서 너무 고마워’

지희의 킬힐은 화이트 대리석을 부지런히 두드리며 신부대기실을 나갔다. 그 소리는 여운을 남기며 지희의 뒤를 쫓았고 다들 유유히 사라지는 지희의 뒷모습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야... 여전하구만 저 여우 같은 계집애, 학교 다닐 때부터 그렇게 교묘하게 이간질하더니.. 뭔 염치없이 결혼식을 와? 뻔뻔하다 뻔뻔해’

‘그러니까 말은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은근히 맥이는 거 들었어? 넌 성질이란 게 없니? 나였으면 머리채 잡거나 뺨을 갈겼을 거야’

‘물에 돌 던지기 엄청하더니만 이쪽 물은 꽤나 재미있었나 보지 뭐..’

‘야 다들 그만해! 세라 앞에서...’

세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다시금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래도 와줬으니까 고맙지. 친구들도 많이 초대 못했는데’

세라의 그 말에 다소 친구들은 벙찌기 시작했다.

‘뭐야.. 간디 야?.. 어휴 이러다 위인전 쓰시겠네 쓰시겠어.’

‘어이구 형섭 선배는 복 받았네 복 받았어 이렇게 태평양 같은 와이프라니’

‘형섭 선배 그냥 편하려고 세라랑 결혼한 거 아니겠어?’

 

지희는 식장 입구에서 하객들을 정성스레 맞이하는 형섭을 발견했다. 그리고 화이트 대리석 벽면을 간이 거울삼아 자신의 비친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나쁘지 않았다. 가볍게 매무새를 고치고는 발걸음을 서서히 옮겼다. 자연스럽게 최대한 자연스럽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공전했다.

‘어머 선배 오랜만이에요.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요’

형섭은 지희의 모습에 순간 당황을 했지만 부친의 얼굴을 잠시 보고는 부드럽게 응대를 했다.

‘아.. 지희야 너도 왔구나 그래 고마워’

‘작년 이맘때 라운지에서 보고 처음이네요’

‘그.. 그러게 그게 벌써 그렇게 됐구나..’

‘세라가 너무 예쁘더라고요 못 알아볼 뻔, 행복하시겠어요’

‘응 행복하지.. 일단 식사할 때 이야기 따로 나눠 음식은 괜찮은 걸로 준비했어’

그 모습을 응시하던 형섭 부친의 시선을 느낀 지희는 시선을 돌려 말했다.

‘아버님이시구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세라 친구이자 형섭 선배 후배입니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오.. 그렇구나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사근사근하게 부친에게 미소 짓는 지희를 바라보자 형섭은 다소 불편했다.

‘그럼 이따가 보자..’

‘네 선배 그럼 이따가 봐요’

지희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고는 식장 내부로 다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잠시 바라보는 둘

‘누구냐?’

‘아 학교 다닐 때 알던 후배예요’

‘그러냐? 흠..’

갸우뚱하는 제스처에 형섭은 답했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아니다.. 어어 저기 너희 고모랑 고모부 오시네. 고생 좀 하셨겠어 지역도 먼데’

흰머리에 부드럽게 펌을 한 초로의 노부부가 검정 정장을 착복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오른손은 팔짱을 꼈고 그 반대 손에는 갈색 루이뷔통 모노그램 딜라이트풀 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그 팔짱의 상대는 이대팔로 가르마를 넘기고 금색 샤리올 안경을 끼고 있었다.

‘이야~ 형섭이 축하한다. 너네 엄마 없을 때 기저귀 갈아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너도 결혼이라는 걸 하는구나! 허당끼 있어서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이제 어른이 다 되었어’

‘오랜만이에요 고모, 에이 저도 벌써 스물아홉인데 할 때 되었죠. 이렇게 결혼하는데 고모님 지분도 있어요 그렇죠?’

형섭의 정겨운 대답을 들은 고모, 찰나의 정적을 보낸 후 살짝 패인 주름에 부드러움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냐..’

분위기가 갑자기 센티해지자 고모부는 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위트의 말을 얹혔다.

‘에이 나도 지분은 있지.. 기저귀 값은 내가 댄 거야 안 그러냐? 형섭이 섭섭하게 응?’

‘하하 당연하죠 고모부님, 그나저나 오시는 걸음 안 불편하셨어요? 꽤나 먼 걸음인데 찾아와 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뭘 감사해 당연히 와야지 축하한다. 신부가 아주 예쁘더구나 부러워..’

그 말을 듣자 고모가 따스한 미소를 거두고는 팔꿈치로 고모부의 옆구리를 살포시 쿡 쳤다.

‘부러워?’

‘아..?!’

그 광경을 지켜보는 부자

‘두 분 여전히 화목하시네요’

가벼운 웃음이 돌았고 그 뒤 또 다른 하객들이 줄줄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내 컨벤션웨딩센터의 이층 로비는 수많은 인파들로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른 시간 텅 비었던 공간은 활기를 띠고 축하의 에너지는 더욱 증폭되었다. 그러기를 한 삼십여분 지났을까 사촌동생이 달려와서 슬그머니 손을 귀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형... 죄송한데 하객들이 덥지 않냐고 말이 조금씩 나와서..’

‘응.. 그래? 여기 있어서 그런가? 나는 괜찮은데’

잠시 고민을 하던 형섭은 사촌동생과 함께 매니저를 찾아 자리를 떠나려 했다.

‘어디 가니?’

‘아버지 저 화장실 금방 다녀올게요. 더 참기가 힘들어서’

‘그래 빨리 다녀와야 한다.’

‘네’

‘일단 화장실 잠시 갔다가 매니저에게 말해볼게’

‘형 저기 저 사람아냐?’

다른 홀 입구에서 나와 다른 직원들과 함께 가는 매니저를 발견했다.

‘아! 맞는 것 같아 내가 가서 문의해볼게’

형섭은 로비로 향해 걸어가는 결혼식장 담당 매니저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아르마니 캐시미어 재질의 군청색 블랜드 슈트가 꽤나 잘 어울렸고 포마드로 정리된 헤어는 깔끔한 느낌이었다. 손목에 골블 튜더 시계가 컨벤션센터의 간접조명에 의해 모서리 부분 빛이 맺혀있었고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 불가리 불르뿌르 옴므향이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형섭은 그런 그가 왠지 낯설지가 않게 느껴졌다.

‘저기요 매니저님.. 지금 저희 쪽 하객분들께서 덥다고 종종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냉방 잘되고 있는 건가요?’

잠시 머쓱하던 그는 말문을 뗐다.

‘아.. 그게’

‘네’

‘지금 갑작스럽게 기계에 결함이 있어서요. 수리 중인데 담당하신 분이 얼마 전에 그만두면서 이런 일이 종종 생기네요. 불편사항을 끼쳐 죄송합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쾌적한 환경에서 식을 올리고 싶어서 흠.. 가급적 빠르게 고쳐주세요’

그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사과의 언행에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아니 오히려 너무 완결성을 띄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형섭은 짜증이 났다. 때문에 식이 끝나고 문의하려던 이슈에 대해서 지금 상황에 바로 컴플레인이 나왔다.

‘그리고 결혼식 꽃도 저희가 지인을 통해 별도로 준비한다고 미리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막상 식장에 보니 꽃이 또 있더라고요 그것은 어떻게 된 건가요?’

‘아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가 미리 체크를 하지 못해서.. 아마도 저희 직원이 옆쪽에 컨벤션홀과 자료 교환 중 헷갈렸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형섭은 짜증이 살짝 더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다스렸다.

‘혹이나 비용이 청구되는 일은 없길 바라요’

‘네 당연하죠 고객님’

그는 입가가 딱딱한 눈미소 지으며 의례적인 답을 했다. 형섭은 저 미소가 어디선가 낯이 익은 듯했고 무엇보다도 고객, 고객이라는 말이 돌출된 부위 혹은 사래처럼 계속 걸리는 느낌이었다.

상황이 종결된 것으로 여긴 매니저는

‘그럼 저 일 때문에 잠시..’

형섭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내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비웠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촌동생이 말했다.

‘형 에이 왜 그래 결혼식 날, 어투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뭘 예민까지야 그냥 문의를 한 거잖아. 문의, 뭐랄까.. 그냥 매끄럽지 못한 이 상황이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그런가? 음... 이 좋은 날에. 차라리 결혼생활 시작 전에 액땜하는 거라 생각해’

‘독일에서는 액땜을 막기 위해서 일부로 미리 접시도 깨는 문화도 있다더라 큰 문제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 말을 듣자 형섭은 자기가 예민했나 하며 컨벤션웨딩센터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축하를 하러 온 하객들의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밝은 분위 속에서 저 멀리 부친이 하객을 기쁜 마음으로 응대하고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럴 수 있지 뭐.. 말로만 듣던 메리지블루?’

시답잖은 농담에 받아줄 용의가 전혀 없다는 의사의 표시로 정색한 표정을 짓는 사촌동생

‘그건 조금.. 아닌 듯 오버하지 마’

‘그래 오버 한 번 해봤다 해봤어.. 자식 딱딱하게 굴긴. 나 화장실 좀 들렸다 갈게 계속 응대했더니 너무 참았어 지금 미리 갔다 와야 해’

‘어어.. 잠시만 형 나도 갈래 참느라 혼났어 빨리 갔다가 같이 돌아가자’

로비와 홀 내부의 화이트톤 인테리어와는 대조적으로 블랙 대리석으로 장식된 화장실이었다. 아주 깨끗했고 비발디 사계 중 봄 파트가 공간의 정적을 달래는 중이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프랑수와 밀레 등 프랑스 사실주의 명화들이 타일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 위 투명한 병의 디퓨저가 놓여 있었다. 끝부분의 인조 꽃을 타고 후레지아향을 잔잔히 날려 형섭의 코끝을 스쳤다.

둘은 볼 일을 보고 나서는 다소 릴랙스 된 기분으로 화장실 입구에서 나왔다.

‘후..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다. 하객분들 응대하는 거 만만한 게 아닌 듯?’

‘그러게’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에휴 들었어? 박 여사 김 씨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는구먼’

‘아이고 들었지 자식도 없이 술을 낙으로 살더니.. 쯧쯧 결국 그렇게 가는구먼 세상도 참 무심 혀...’

‘별 수 있나? 그래도 내가 예의인 것 같아 장례식장에 직접 참석을 했었단 말이지 그때 알았어 마누라를 보니 왜 술을 그렇게나 마셨는지 알 것 같더라니까?’

청소도구를 챙겨 이동하던 유니폼을 입은 아주머니들의 대화였다.

‘눈에 총명기라는 하나도 없고 약간 어린애 같기도 한 것이 도무지 멀쩡한 것 같지가 않더라고 결혼생활 내내 밥은 얻어먹었나 모르겠네..’

손이 부족한 나머지 아주머니 한 분이 먼지떨이를 떨어트렸고 그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말을 했다.

‘약간 경계선 지능장애처럼?’

무릎을 굽혀 떨어진 먼지떨이를 다시 줍고는 아주머니들은 이동을 했다.

형섭은 그 아주머니들의 담화를 들었다.

‘흠.. 낯이 익은데’

‘응 누가?’

‘아냐’

로비를 향해 걸음을 향하던 형섭은 이내 멈칫거리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오 년 전 비품을 정리하던 아주머니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스위치가 켜진 트리의 전구처럼 그때 그 인물들이 잔상이 뻗혀 나가기 시작했다.

‘김 씨.. 아 기억났다. 혹시 김기사 아저씨..?!’

형섭은 사촌동생의 어깨를 잠시 툭 친 후 말했다.

‘먼저 가 있어~ 오 분만 있다가 바로 갈게!’

‘아니.. 형이 자리 비우면 안 되지’

‘잠시만 오분이면 돼’

난처한듯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는 말했다.

‘빨리 와야 돼. 이모부한텐 내가 말해놓을게.’

아주머니의 말을 듣자 오 년 전 왔던 기억을 더듬어 B동 지역으로 성큼성큼 이동했다.

시간이 지났어도 구조적으로 변할리는 없으니 형섭은 더듬더듬 찾아갈 수 있었다. 컨벤션웨딩홀 본관보다 삼분의 일 정도의 크기인 b동이었지만 규모가 워낙에 큰지라 건물의 정문까지 걸음으로 가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넓직히 유리 회전문으로 되어있는 정문이 보였다. 하지만 그곳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그곳을 기점으로 우측으로 가자 흰색의 벽면이 보였고 모퉁이를 돌았다.

좁은 외벽의 끝에 초록 비상등이 미약하게 점멸하고 있었고 그 아래 초록 시트 의가 얹힌 철제문이 형섭을 응시했다. 이건 오 년 만의 조우였다.

예전에 비해 노화되었지만 그 철제문은 여전히 그곳에 위치해 굳건히 서 있었다. 형섭은 그곳을 목표로 발을 옮겼다. 초록 시트로 덧된 철제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히자 노화로 인한 경첩 때문인지 철제문은 신음을 내지르며 형섭을 다시 받아주었다.

‘그대로네..’

통로 끝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그때의 그날들을 떠올리며 발을 한걸음 한걸음 옮겼다. 텁텁한 공기 안에 침묵의 고요함이 스며있었기에 기분이 자연스럽게 다운되었다.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자 이내 숨을 고르고는 다음 지하로 내려가는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이내 상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케이블의 둔탁한 마찰 소리가 벽면을 밖으로 들려왔고 그 소리가 점차 커지자 이내 힘겹게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입구가 열렸다. 마침 그 공간 안에는 컨벤션센터의 각종 물품들을 실은 철제 캐리어를 끌고 있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형섭이 그 물품들을 보고 고개를 들자 같은 공간 내에 있던 둘은 시선을 교차했다. 대충 정장 차림의 형섭을 모습을 본 그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고 형섭은 잠시 당황했으나 고개를 살짝 숙여 답했다. 그러자 그는 잠시 후 철제 캐리어를 끌고 나갔다.

캐리어가 빠지니까 화물전용 엘리베이터의 공간은 더욱더 넓어 보였다. 측면 허리쯤에 손잡이가 위치한 때 묻고 바랜 버튼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이내 B3층을 눌렀다. 그러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형섭을 실은 엘러베이트가 잠시 흔들리고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웅웅웅’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어둡컴컴하고 짙은 회색의 수직통로에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눅눅한 공기가 그곳을 농밀하게 채우고 있었다. 수직 통로 이후에는 규칙적인 간격의 공간이 보였는데 형섭은 그 공간을 연어도 아닌 것이 귀화 본능이 있는 것처럼 움직었다. 그때 그 장소를 찾아...

‘다섯 번째였던가?’

특별히 출입문이 없는 그 공간에 들어서자 올바르게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입구에 들어가자 대형 철제 구조물이 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먼지가 잔뜩 낀 환풍기가 우측 벽면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역시.. 맞네’

지난날의 기억 속에서 구조물은 내 눈앞에 놓인 사실적 형상과 함께 겹쳐지면서 기억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만 차이점은 보다 많은 먼지와 노후된 모습, 껍질의 변화였다. 그러나 공간 비치된 몇몇 구조물은 그때 그대로였다. 당시 형섭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쉬었던 가로형 철제 의자조차 다만 그때 그 추억 속의 생각보다 모든 공간이 다소 협소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뿐

"이렇게 좁았었나??

정기적으로 둔탁한 들려오던 기계음 오 년 전 홀 수거를 준비하며 기다렸던 순간이.. 그리고 맞은편 책상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던 준호형이 떠올랐다.

잠시 후 인기척이 있었다.

‘누구...?’

빚 바랜 머릿결에 코발트블루의 셔츠를 입은 초로로 여겨지는 남자가 입구에 들어와 놀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죄. 죄송합니다. 컨벤션웨딩홀을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아요.’

‘그래요..?’

초로의 남자는 형섭을 훑어보고는

‘식장은 이 건물이 아닙니다. 여기서 나가셔서 저기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다음 우측으로 쭉 나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혹시.. 여기 계셨던 김기사님은 아직도 일하시나요?’

‘누구.. 김기사? 아 전임자 그 양반? 최근에 별세했지 쯧쯧.. 덕분에 내가 오기는 했지만’

‘그랬군요..’

‘아시는 분인가 봐?’

‘아 조금’

‘여하튼 여기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예요’

‘네.. 아무나.. 못 들어오죠’

‘그럼 가보겠습니다. 어르신 실례가 많았습니다’

형석은 초로의 남자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그를 뒤로하고 밖을 향했다.

이 좁고 어둑 컴컴한 통로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간접 조명등을 간헐적인 깜박임에서 배경 삼아 빠르게 걸어 나왔다.

같은 공간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걷는다는 것은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단지 다시금 찾는 이 공간은 그때와 달리 방문자라는 생각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형섭에게 주었다.

오 년 전 00공원 인근 대학로 00대여점

‘희정 씨 일단 열 시에 출근하시면 가장 먼저 할 게 있어요. D-04쪽 우측 끝면으로 가시면 후문이 있거든요. 그거 우선 열고 양 사이드에 있는 창문을 대략 한 시간 정도 열어서 환기시켜주세요. 그리고 우측 벽면에 키가 걸려 있죠?’

‘아 네..’

‘그 키를 가지고 출구 앞에 있는 책 수거함에 가서 지난밤에서 오전까지 쌓인 책들을 꺼내오세요. 카운터에 있는 PC 키시고 게토라는 프로그램이 도서관리 프로그램이니까 그리고 바코드 리더기로 가져다 대고 찍으면 반납 처리돼요’

‘네’

‘혹시 바코드 라벨이 노후하거나 물기에 젖었다든지 아니면 파손되면 잘 찍히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일단 다 찍은 다음 PC 북 정보에 가서 책 상태를 확인하시면 되는데 빨간색이 대여 중이고 녹색이 보유 중이니 다 보유 중으로 상태 변환이 되어야 해요. 그렇게 했는데 만약 안되면 수동으로 반납 처리한 다음 따로 분류해두세요. 바코드 라벨은 사장님이 관리하시니 그렇게 하시면 되고요’

‘일반적으로 청소는 마감 타임 제가 도서정리 및 청소를 하니까 특별히 신경 쓸 건 없고 저녁 간접 조명이고 하니 잘 보이지 않아 놓쳤던 부분 낮에 보이시면 간단하게 쓸어주시면 돼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채 있는 희정에 가 간략히 설명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낮에는 특별히 진상 손님 없으니 그냥 가볍게 일하시면 돼요. 그러다가 조금 여유 생기시면 보고 싶은 책 눈치껏 보셔도 되니까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너무 노골적이지만 않으면.. 그 느낌적인 느낌 아시죠?’

마지막 포인트에서 아르바이트생의 부드러운 웃음기를 확인하고는 스케치북을 챙겨간다.

‘어머 직접 그리신 거예요?’

‘네 시간 날 때 끄적여요. 사실 특별하게 분주한 아르바이트는 아니니까’

‘그림 저도 잘 그리고 싶은데..’

‘기초적인 거 잠깐만 배우면 누구나 다 그려요’

‘아.. 그렇구나’

‘정산할 때 오차 안 나게 잘해주시고요 혹 문제 생기면 여기 사장님 번호 있으니 이쪽으로 전화를 거시면 돼요’

바코드 기를 이리저리 만지며 대답했다.

‘네’

‘그럼 이만 저는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형섭은 문을 열고 나갔다.

도서 대여점 맞은편 중국집, 외곽에 스테인리스 재질로 두텁게 고정된 흰색 아크릴 바탕의 간판, 그 안에 붉은 동양용이 승천하기 직전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그 아래 궁서체 검정 글씨인 천룡각, 요리가 아닌 무술을 연마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전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사장에게 형섭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형섭이 왔구나 야 아르바이트생 어떻더냐? 참해 보여서 내가 오전 타임으로 돌렸어. 지원자 중에서 가장 예쁘장한 애로 한 거야~ 모르지? 매출 차이가 꽤 난다?’

단신에 불혹 정도의 나이를 한 사장이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사장은 본인의 그 어떠한 생각도 가감 없이 담백하게 말로 표현하는 스타일임을 형섭은 이제 안다.

특별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의례적인 답을 했다.

‘네 뭐.. 손님들 꽤 많이 오겠더라고요’

‘야.. 생각 있으면 잘해봐~ 둘이 데이트한다고 알바만 안 째면 허용해 줄게~ 나 알지? 나 굉장히 오픈 마인드야’

‘아.. 저는 여자 친구가 있어서’

‘에이 요즘 사이 서먹서먹하다면서 그게 다 그런 거야. 인마 나도 한 오 년 교제하던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바로 지금 집사람이랑 결혼한 거잖아. 깨진 그릇 고쳐 쓰는 거 아니다.’

‘그래요? 음.. 네 뭐 하여튼’

형섭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인드는 오픈인데 너무 시급은 클로즈라고..

‘책방 아르바이트한 일 년 했나? 네가 너무 착실하게 해 줘서 여기 서빙도 좀 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와이프가 계속 부탁한 거야. 조금 도와주라 대신 시급은 책방보다 두 배 줄게 당분간 가게 세팅될 때까지면 돼, 특별한 건 없고 전화 주문이랑 서빙 바쁜 시간에 서빙을 한 네 시간 정도만 하고 가’

‘네 뭐 돈도 조금 필요했는데 이참에 잘 됐어요’

‘네가 몇 살이지?’

‘지금 스물여섯인데요’

‘너도 남자라면 언젠가 사업을 꼭 해봐. 그게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길이야 포부를 가져란 말이지 책 대여점 운영하기도 빠듯하긴 한데 큰 마음먹고 지금 중국집도 인수한 거잖아’

사업? 규모로 봤을 때는 사업이라기보다는 장사로 보이긴 했다. 형섭은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 비용에만 노동력을 할애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그런 관점을 제시해준 사람 생전에 없었기 때문이다. 뭐 못할 건 없지 다 같은 사람인데 언젠가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밀가루 팔아서 돈 버는 거라고 사람들이 종종 무시하는데... 물론 얼마 전까지 나도 그중에 포함되어 었었고 하하’

‘네..’

‘직접 해 보면 만만치 않아 식재료 준비며 전단지, 인력 관리, 배달 등 아.. 까탈스러운 주방장도 비위 맞춰야 하고 그런데 실력 있는 주방장은 귀하거든 또 주방 아주머니들 수다들에도 빠지면 안 되지, 야 명색인 사장인 내가 양파를 미리 까고 있잖아’

‘뭐 잘 어울리시는데요’

‘너? 아 잠시만.. 눈 매워.. 이.. 모양새가 말이야’

사장은 황급히 일어나 싱크대에 있는 물에다 빠르게 눈을 씻어냈다.

‘아.. 나 참.. 가오 빠지게 말이야’

그때 가게 입구에서 찰랑 소리를 내며 인기척이 들렸다.

사모님은 장신이었다. 랄프로렌 블랙 와플 원피스, 그 위 흰색 시쓰루 카디건은 장신의 사모님에게 잘 어울렸고 동안으로 보이게끔 엘리자벳 펌을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여보 어제 식재료 들어온 거 정리하고 있어? 주방장이 따로 말하더라고 어제만 했지 앞으로 그런 건 자기가 못하겠데’

‘어어 안 그래도 그래서 지금 하고 있어.’

‘그래도 인근에서 가장 요리 실력 좋다고 평하는 사람이야 어렵게 구했어.. 수소문 끝에 연락해서 데리고 온 거니까 당분간 비위 좀 맞춰줘야지 무슨 말인지 알지?’

굳이 사장님과 눈을 마주할 필요성을 못 느낀 듯 사모님은 장부를 보면서 말했다. 그런 모습을 꽤나 오래 지켜온 형섭은 생각했다. 역시 사모님이 실세구나.

‘그래 나도 알지.. 일단 처음에만 조금 참아보려고’

장신의 사모님은 꽤나 스타일리시했다. 그런 그녀를 형섭의 그 시선을 느끼고는 말했다.

‘어머 착실한 형섭이 왔구나 도와줘서 고마워 자취한다고 했지? 마감 후 밥도 먹고 가도 돼’

싱긋 웃으시고는 이내 사무실로 들어간다.

주방에서 양파를 까던 사장은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었다.

‘까탈스럽게 매니징 하는 와이프 눈치도..’

힐끔 사무실로 눈길이 향한 다음 시선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

‘봐야 하고 가끔은 생각나.. 그때 그 오 년 사귄 여자 친구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해.. 저렇게 안 피곤했거든 요즘은 내가 사장인지 시종인지 모르겠다니까?’

‘에이.. 사장님도 참.. 사모님 정도면 아주 훌륭하시죠~’

잠시 후 가게 입구 쪽에서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 들려왔다.

‘동섭이 왔나 보네 저 양아치 놈, 저것도 배달을 잘해서 쓰는 거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쫓아냈어. 가게 이미지 다 망치는 꼴통 새끼!~ 저거 저거 너는 절대 저러지 마라’

노랑머리에 팔 토시 한 까무잡잡 한 피부를 가진 이십 대 중반의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그래 동섭아 오늘은 지각은 안 했네?’

‘에이 엊그제 하루만 그런 거잖아요 그것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랬다구요’

다소 갈라진 목소리였다.

‘그래 그렇다면 별수 없지. 개인적인 사정이 앞으로 안 생기를 사장인 내가 기도해주마!’

‘아 사장님 정말 이러깁니까’

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였다.

‘아니다. 됐다.. 그냥 내가 다른 건 다 안 바라는데 저 뒤에 머플러 소리는 어떻게 안 되냐? 옆 짚 횟집 사장님이 오토바이 들어올 때마다 시끄럽단다. 수족관 물고기 배 뒤집고 뜨는 거 그거 오토바이 소리 때문에 심장마비 걸려서 그런 거라고..’

‘아이 사장님도 오버하지 말라고 하세요’

‘아니 진짜 너 덕분에 손해 배상하게 생겼어’

‘제가 말할까요? 네? 제가 저 맛에 배달하는데’

‘어이구... 하나하나 말대꾸하는 거 봐라. 형섭아 너는 저러면 안 된다’

‘아... 뭐’

대충 농담 따먹는 시간이 지나자 본론이 나왔다.

‘이따 점심 타임에 배달 주문 쏠릴 것 같으니까 미리 어제 못 챙겨 온 그릇 좀 수거해 와라 개수 부족하면 안 되니까’

말을 듣는 듯 마는 듯하는 동섭은 카운터 근처에 있는 형섭을 발견했다.

‘여어 형섭이 있었냐 담배 한 개비 피려는데 노가리나 조금 까자. 사장님 그릇 수거할 때 아직 얘랑 같이 다녀와도 되죠?’

‘여기가 놀이터냐 새끼 마..’

‘에이 잠시면 돼요 심심해서 그래요’

‘열한 시부터는 바빠지니까 그전까지 형섭이 데리고 와야 된다. 너’

‘네에~’

그러고는 사장은 다시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아.. 매워.. 내 팔자가 이게.. 이게.. 심지어 배달부 비위도 맞춰야 하네’

형섭은 동섭을 따라 나갔다. 동섭은 가게 우측 벽면의 햋볓이 들어오는 공간에 바지를 주춤하더니 앉았다.

동섭은 주머니에 담배를 꺼냈다.

‘야 너 담배 피우냐?’

‘아뇨..’

‘술은 잘 먹냐?’

‘그냥.. 저냥’

‘아 새끼 재미없는 스타일이네’

새끼손가락을 꺼내며

‘이거는?’

‘네?’

‘새끼 여자 친구 말이야’

‘아 네 있어요’

‘올 의외네?’

‘형이 말이야 고등학교 중퇴하긴 했지만 그래도 힘들게 하면 월 이백은 번단 말이지? 야야 주변에 괜찮은 여자애 없냐?’

그때 바로 든 생각은 가장 학교에서 재수 없다고 생각되던 모란이 누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일전에는 조별과제도 째고 연락도 안 되었던 것이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랬다간 그 성격에 별의별 지랄을 다할 테니까 애초에 선을 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제가 대인관계가 조금 좁아서요’

‘그래? 너한테 뭘 기대하겠냐’

‘그러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요즘 광고하는 최신형 폰이었다. 야 이거 특정 노래를 들려주면서 야 이거 화음이 끝내줘’

‘와~ 형 이거 광고에서 하던 최신형 폰이잖아요 크으... 부럽다’

이 정도 리액션은 생활화가 되어있던 참이었다.

‘그렇지’

이게 성능이 음질이 카메라가 용량이 블라블라 하는 소리가 한 귀를 타고 한 귀로 빠져나갔다.

‘뒤에 타봐 최신 시티 100이야 뒤에 머플로도 고쳤는데 신세계를 한 번 보여주지’

‘아 네.. 그릇 찾아야 되죠? 잠시 도와드릴게요’

‘그래 새끼 마인드가 됐네’

그때 휴대폰에 밴딩을 연결한 다음 목에 걸었다. 그 목에 걸린 휴대폰은 당대 최신 유행곡인 이효리 곡 애니모션을 재생시킨다. 오토바이 뒤로 시선을 주며 형섭을 뒤에 태웠다. 그러고는 머플러를 소리와 함께 찌꺼기가 남은 그릇님을 찾아뵈러 가는 길이었다. 부끄러움은 형섭만의 몫이라 생각했다.

인근 원룸 단지 내, 수많은 그릇들을 찾는다는 것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 형 생각보다 빡세네요?’

‘야 겨우 이 정도에 빡세다고 그러면 안 되지. 하긴 웬만한 애들은 이 동네에서 종일 배달 못해. 나라서 그나마 소화하는 거지’

그 말의 뉘앙스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네.. 대단하시네요’

‘야 힘들면 이번 건물은 내가 갔다 올 테니까 잠깐 쉬 어고 있어 봐. 비도 내리기 시작하는데’

평소였다면 손사래를 치며 같이 가자고 할 텐데 그때는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힘도 들고 습한데 기분조차 다운되어 있었다.

공기의 습함이 이내 형태를 갖추어 가랑비로 변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빗줄기가 굵은 소나기였으면 시원했을 텐데 그 바람은 좀처럼 들어주지 않았다.

대학로 외각지에 한창 조성되기 시작한 원룸단지였다. 풀잎 무성한 흙바닥과 시멘트와 철골구조의 건설현장 미묘한 조합이었다.

‘아.. 비 맞으면 돌아가야겠네’

오토바이 뒤에 타고 비를 맞고 돌아갈 생각이 들자 짜증이 살짝 치밀어 올랐다.

비록 가랑비이지만 시간이 흐르자 풀잎에 물이 맺혔고 이내 또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멍하니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하던 순간 문자가 날아왔다.

‘그래도 이렇게는 아닌 것 같아 오빠 우리 이야기 조금 이야기하자’

다소 건조해 보이는 문자가 날아와 있었다.

세라였다.

대학로 근처의 공원에서 산책로를 거닐며 형섭은 생각했다.

어느덧 시시해졌다. 급격한 이변이나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건 마치 가을 와 서서히 나뭇잎이 물들었다가 낙엽이 지듯 그냥 감정이 져버렸다. 특별히 그녀가 형섭에게 잘못을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삼자에게 잘잘못을 따져 점수로 평가해달라고 한다면 형섭은 결코 세라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명백한 패배가 분명했다.

흔하디 흔한 대학로 가게에서의 밥, 티켓, 쿠폰으로 점철된 저가형 영화표, 코인 노래방, 피시방, 카페 간간이 타 지역 여행 정도.. 일상적인 루틴, 금액을 거기에 지출하고 그것을 다시 유지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이런 반복적인 루틴은 어느덧 즐거움이란 감정에 뽀얀 먼지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부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무언가 껍데기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염증을 느껴 특별하게 ‘싫어졌을 정도’라고 시인하고 싶진 않다. 그 정도의 감정이 드는 것은 오히려 죄책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형섭 자신과 세라에게.. 다만 이 루틴이 비루하고 뭔가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을 뿐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묻는다면 지금 당장은 적확이 이것이라고 답할 수 없다.

현재 자신의 쳇바퀴 같은 모습이 별로라 떨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뿐, 다만 스스로가 스스로를 버리지 못하니 화살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대상에게 가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다. 그 감정의 투사인 대상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편안한 존재인 그녀.. 세라에게 말이다.

이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친구들에게 혹이라도 상담받으면 ‘권태, 지겨움’으로 일축해버린다. 흔하디 흔해빠진 단어로 표현된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에 자신이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이 상황은 최소한 남들보다는 보다 더 고상하기를 바랐다.

같이 밥을 먹어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도 같이 산책을 해도 그녀의 말에 반이 형섭의 귀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흘러갔다.

그래.. 사실 별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별것이 아닌 일상과 일상으로 점철된 사이에서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불가피한 것이라고 다만 이대로도 괜찮은가에 대한 자문에 자신감은 없었다.

‘하아~ 여기도 비를 피하긴 애매하군’

00원룸 단지

고등학교 같은 미술동아리 출신의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고 있던 차였다. 스무 살이 넘으면 독립적으로 살리라 마음먹었고 그것을 실천 중인 상황이었다. 일단은 목표는 달성했다는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형섭은 자취방으로 들어가기 전 공용 우편함을 확인했다. 이번 달 세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우편함을 열자 여러 영수증이 나왔다. 전기, 도시가스, 인터넷 비등의 지로가 형섭을 반겼다. 어린 나이에 독립한 형석은 매달 세금을 지출할 때마다 가끔 생각을 했다. 직장인이 아닌 형섭은 생각보다 세금 지출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달에 누렸던 것들을 생각하면 비용 지출이 합리적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자신이라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납세의 의무 또한 없을 텐데. 자신으로 인해 발생된 것 들에 대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은 지금 구축된 사회 시스템상에 당연함이다. 불이행 시 불 혜택과 비난을 받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그다음 단계까지 오게 된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자신이 선택한 것은 아니다. 자신은 어느 순간 존재해 있었다. 그렇다면 이는 의무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의무의 고삐에 자신이 채워져 끌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확인하던 중 평소에 눈에 익던 것 말고 흰색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었다.

‘뭐지?’

00대학교 학사경고였다.

‘아.. 새끼’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재형이가 자기 책상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형섭이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에 늘그막이 일어나 컴퓨터 부팅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왔는데 그게 아직까지 이어졌나 보다.

듀얼 모니터, 왼쪽에 자동 사냥 캐릭터 하나 오른쪽 모니터에 메인 캐릭터를 보며 직접 플레이하고 있었다. 학기 초에는 열정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더니만 어느 순간 팔 평 남짓한 원룸 공간을 굳건히 지키며 의자에서 좀처럼 일어나질 않는다. 벌써 두 달째다.

편지를 재형이에게 던졌다.

‘야 제정신이냐 학사경고 왔어’

‘재형아 너 학교 안 나가냐? 저번에 학고 맞았다면서 너 그러면 학교 더 다녀야 돼’

재형은 경고증의 표면 부만 확인하고는 보는 듯 마는 듯 책상 위에 올렸다. 그러나 마우스의 움직임은 지속되었다.

‘아 가긴 가야 되는데.. 왜 이렇게 가기가 싫냐?’

‘그렇게 게임만 하니까 그렇지, 가상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

‘지랄 지는? 저녁에 여덟 시에 파티 사냥 있어 들어와라. 형이 쩔좀 해줄게’

‘아 그래? 그건 빠질 수 없지’

형섭은 화색을 뗬다. 그건 또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데 이런 순간은 이득이라 할 수 있다

‘야 그런데 이번 달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 혼자 있을 때는 인마 에어컨 말고 선풍기를 써’

‘알겠어 거참 잔소리 심하네 네가 엄마야?’

‘돈이 딸려서 그래 세금이랑, 데이트비 생각하니 좀 쪼들린다 말이야 뭐 시급 센 아르바이트 없냐?’

‘주말 단기 아르바이트 알아봐. 시급이 센 걸로 책방, 그런 것은 시급이 별로 안 세잖아 하나 봐준 거 있는데 링크 보낼게’

‘그래? 야 oo 컨벤션웨딩센터 서빙 아르바이트’

‘야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나이 20~30, 용모단정, 조건이 심플하네 여섯 시간에 팔만 원? 오호 너는 안 하고’

‘아 찾아보다가 그냥 그 시간에 파밍 해서 아이템 파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방에 들어온 지 아직 재형의 뒷머리만 본 상황이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것도 능력이지’

‘현제에게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걔도 아르바이트 알아보던데 야 또 피자 혼자 시켜 먹었냐 치사하게 그러니까 살이 그만큼 찌지’

‘아냐 인마 냉장고에 몇 조각 남겨놨어 그거 먹어’

‘오 그래? 땡큐’

딱딱해진 피자를 씹으며 형석은 괜찮은 아르바이트를 발견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는 일요일

9시 파란색 버스 00번호를 탄 형섭은 전화를 꺼내 현제에게 연락을 했다.

‘야 이제 정류장 곧 도착하니까 빨리 타’

버스의 문이 열리자 형석은 손을 흔들어 현제를 맞이했다.

‘야 땡큐 안 그래도 쩐딸려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개이득이네?’

‘아 또 혼자 가기 심심하기도 하고 같이 가면 재미있을 것 아냐’

‘그래 00동 컨벤션웨딩홀이었지. 야 멀리서도 보이는 저거? 우뚝 쏟은 그 건물 아냐?’

‘그런 것 같은데?’

시가지 여덟 개의 교차로에서 최근에 지어진 가장 화려한 컨벤션웨딩센터였다. 전면 유리에 유기적인 장식 디자인에 그 장식에 따라 밤이 되면 조명예술 공연이 열리던 바로 그 장소, 이따금 대중교통을 타고 지나가며 건설되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덧 완공되어 스스로의 위엄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야 건물 다 지어졌나 보네 저긴가 본데?’

‘00동의 피라미드네’

형섭은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와버렸다.

“여기서 봐도 보이게 높긴 하구나.”

버스에서 내린 그들은 컨벤션 센트 웨딩홀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층 전면부에 위치한 웨딩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흰색 홀이 나왔다. 컨벤션센터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은 유니폼 정장을 입고 사람들을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각종 홀의 천과, 장식류 비품을 정리하고, 분주히 옮기고 있었다.

스키니 한 체형에 검정 정장의 맵시가 잘 어울리는 말쑥한 포마드의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이내 불가리 불르 뿌르 옴므향이 질세라 그를 따라왔고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 향이 형섭의 코를 찔렀다.

‘오늘 당일 아르바이트 신청하신 분들 맞나요?’

그 말에 형섭과 헌제는 서로의 눈을 교차했다.

헌제가 먼저 말을 했다.

‘네 알바천국 보고 왔어요. 무엇을 하면 되나요?’

그 매니저는 현제를 위아래 훑어보기 시작했다. 썩 유쾌한 시선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뭐 특별한 것은 없고 왼쪽 공간에 가시면 핏팅 룸 있거든요? 저기 컨벤션에서 제공되는 유니폼을 입으시고 하객들 오기 전에 기본적인 음식과 음료들 세팅해주시면 돼요. 그리고 타이밍 꺼 테이블 위 접시를 정리해주거나 하객분들 응대하면 돼요. 그게 다예요. 다만 하객님들에게 친절하게 해 주시고 불필요한 말만 삼가시면 됩니다. 아.. 자리 길게 비우면 안 되고요’

‘아 네.’

‘그런데 사실 죄송스럽지만 드릴 말이 있는데.. 급하게 필요한 아르바이트가 하나 있는데.. 그건 더 간단합니다. 식이 끝나면 남은 잔반들 수거해서 버려주시는 일이에요, 음료병이나 사용하고 남은 각종 쓰레기들 분류해서 버려주시면 돼요’

‘혹시 할 의향이 있으신 분?’

둘은 다시 시선을 교차했다.

‘현제가 먼저 말했다. 제가 조금 내가 무거운걸 못 들어서’

형섭은 헌제를 보더니 말했다.

‘아냐 그냥 내가 이 아르바이트할 게 뭐든 상관없어’

오전에도 중국집 음식물 수거 이번에는 뷔페식 음식물로 장르만 바뀐 거니까 그게 그거지 속으로 생각했다.

‘괜찮겠냐?’

그걸 지켜보던 매니저가 말했다.

‘그쪽이 시급이 더 세긴 해요.’

‘아 그래요? 네 그럼 잘 됐네 제가 할게요’

만족스럽다는 듯 매니저는 한쪽 눈썹을 위로 치켜들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홀에 계신 분은 저 피팅룸에 가서 옷 갈아입으시고 저한테 오면 되고요 그 다른 한분은 저기.. 어디 있더라?’

지나가던 여직원을 불렀다.

‘나현 씨 김기사님 봤어?’

모나미를 떠올리는 유니폼에 음식을 취급하는 공간답게 웨이브가 살짝 들어간 로우 포니테일 한 여성이었다.

‘아 매니저님.. 아까 전에 B홀 뒤에서 담배를 피우시던데’

‘그래? 찾아가 오늘 도와줄 아르바이트생 구했다고 이쪽으로 와서 데리고 가라고 전해줘’

그 여직원은 형섭을 쓱 보더니 말했다.

‘네~’

형섭은 자리를 지키고 홀 안에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다들 분주했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누군가가 뷔페 음식을 중간지점까지 들고 오면 다른 이는 그것을 받아 테이블에 놓았고 그 상태를 점검하는 매니저들 각종 냅킨과 수저를 세팅하고 조화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비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꼼꼼히 체크하는 이들도 보였다. 잠시 후 코발트색의 셔츠를 입은 이가 뒤쪽 출구에서부터 형섭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옷매무새는 그리 정갈하지 못했고 기름때로 유추되는 흔적들이 군데군데 번져있었다. 걔 중에는 컬러 빛을 띠기도 했다 가령 주황빛이라던지..

‘그쪽인가요? 오늘 수거 아르바이트하기로 한 분이?’

‘아... 네 저 맞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그렇군요 뭐 간단해요 지금 이 시간에는 우리는 특별히 할 게 없어요 따라와요’

‘네’

형섭은 그 김기사라고 부르는 이를 따라나섰다. 반대편 멀리 모니미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현제가 보이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현제가 멀리서 답했다.

"끝날 때 보자 로비에서 기다려"

본관에서 나와 우측 상대적으로 작은 B동 별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종종 컨벤션센터 본관으로 가기 위해 서두르는 하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관으로 향하는 비상문은 좁은 통로에 빛이 건물들 외벽들 때문에 빛이 들어오지 않아 다소 어두웠다. 비상문으로 향하는 철제문으로 들어간 다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거대한 기계가 보이는 엔 질실이 나왔다. 김기사와 형섭은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김기사 외 다른 한 명이 있었다.

민무늬 검정 반팔 T셔츠에 비비드 한 대미지 청바지, 보테가 베네타의 검정 뿔테 안경을 낀 헤어가 정리되어 있지은 덥수룩 하지만 자세히 보면 동년배인 사람이었다.

‘준호야 너랑 오늘 같이 일할 단기 아르바이트 생이다.’

김기사는 말했다.

의자에 앉아서 간이용 테이블 위에서 경찰공무원 필기 교재를 보고 있던 준호는 책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오~ 아르바이트생 갑자기 어떻게 구했어요? 갑자기 못 온다고 쨌다면서요’

‘혼자서는 짬통을 들 수 없으니까 홀 매니저한테 말해놨지. 급하게 한 명이 더 필요하고 그러니까 살짝 고민하더니 서빙 아르바이트생에서 한 명을 빼주더라고’

‘그렇구나 다행이네요 혼자 하면 진짜 정말 힘든데.. 반가워요 오늘 같이 일해봐요’

‘아 네..’

‘별것은 아니고 그냥 식 끝나면 음식물 가져다 버리면 돼요 우리 일은 모든 컨벤션 결혼식이 끝나서 뷔페를 다 정리했을 때 끝나는 거예요 때문에 퇴근시간의 편차는 한 시간 정도쯤?’

가볍게 눈인사를 한 다음 준호는 자리에 앉았다.

‘네’

‘흠 오늘 같은 경우는 식이 많이 잡혀서 빨리 마치기는 글렀지만’

‘아..’

‘여기서 쉬다가 스케줄 보고 한 두시쯤에 나가면 되겠네’

‘몇 살이에요?’

‘아.. 스물 넷이요’

‘그렇구나 군대 갔다 왔고?’

‘네’

‘그렇구나 혹시 몇 살이세요?’

형섭이 묻자 관대한 표정을 지으며 준호는 답했다.

‘전 스물여섯이에요’

‘아.. 형이시네요’

‘아 그게 그렇게 되네’

‘이 아르바이트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지금 한 네 달째 된 것 같아요’

‘음.. 말씀 편히 하셔도 돼요’

‘그럴까?’

‘뭐 일은 험해서 그렇지 시간 대비 시급은 괜찮아’

‘네 뭐 시급은 괜찮더라고요’

‘처음 왔을 때 하루하고 관두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솔솔 해서 말이지 안 그래도 오늘은 혼자 할 것 같아 꽤 걱정했는데 잘됬어’

‘아 아르바이트생 구멍 났다고’

‘어 그때 걔 표정 안 좋더니만 결국 쨌네 혼자 하면 할 수는 있는데 무겁고 힘들단 말이지 무엇보다도 혼자 다 한다고 해서 시급을 더 주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긴 하겠네요 여하튼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받을 게 있나 그냥 하는 거지’

형섭은 준호의 느낌이 괜찮았다.

‘나이도 비슷하니 대화가 잘 통하겠구먼 이십 분 뒤에 올게’

그 둘의 대화를 듣던 김기사는 답배갑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네 다녀오세요’

‘네~’

문밖으로 사라진 김기사를 보고 형섭은 물었다.

‘저분은 여기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듣기론 한 오 년 째라던데’

무신경하게 답하고는 준호는 조금 전에 보다만 공무원 교재를 다시 꺼내 들었다.

‘공무원 준비하시나 봐요?’

‘응 맞아 공무원 준비 중이야.’

‘요즘 공무원 경쟁이 치열하다던데.. 대단하시네요’

‘대단하긴 것도 붙어야 할 말이 있지. 말이 공무원 준비생이지 이러다 합격 못하면 정말 시간 낭비야 기술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전문지식도 아니니까 말이야 말 그대로 증발해 버리는 거지’

‘흠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뭐 나야 필기만 합격하면 가점이 몇 개 있어서 그나마 유리하긴 하지’

‘가점 가산점이요?’

‘솔직히 조금 짜증 나는 게 나는 경찰행정학과를 지망해서 다녔고 군대도 가점을 받기 위해 해경까지 다녀왔단 말이지?’

‘아하.. 원래 경찰을 하시려는..’

‘그렇지 그런데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주변 친구들 중에 딱히 할 것 없어서 혹은 취업이 잘 안 되어서 공무원 준비한다는 애들이 꼭 한 두 명 있다는 말이야’

‘네 제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거 봐’

‘그런 친구에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면 또 공무원 준비하는 애들이 한 두 명 더 있을 거야’

‘아마 그렇겠죠..?’

‘그중에서 더 불편한 것은 뭘 준비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행정이 아니라 경찰을 준비하는 애들이 많아’

‘아... 그래요?’

‘그래... 술자리에서 이야기 나누다 보면 꼭 있어.. 그런데 스트레스받는 게 그런데 걔들이 더 빨리 합격하면 난 조롱거리가 되는 거지’

‘앗.. 그렇겠네요 접근율이 높아서’

‘애초에 경찰이 되기 위해 진로를 지망한 애들 의학전문대를 가야 의사가 될 수 있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경찰대 간부는 논외로 하고 순경이라도 말이야. 그렇게 안 하니 합격하더라도 소명의식을 가지지 않고 일한다고 생각해.’

‘음..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들어보니 그렇겠어요"

’그래서 이번엔 꼭 합격해야 해 저번에 정말 아깝게 떨어졌거든. 이번 추석이 고비야‘

‘아.. 네.. 파이팅하세요’

‘그래서 이런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루빨리 관두어야지 만약 김기사 아저씨처럼 여기가 생업이 되는 것은 정말 비참할 거야’

‘아.. 그런가요?’

그냥 튀어나 버린 말에 수습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준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흠.. 미안 요즘 예민해서..’

‘네..’

숙연해지는 자리였다.

‘일단 저기 뒤에 옷 있지 식장 정리하다 보면 오물이 튀는 경우가 많으니 옷걸이에 있는 저 옷으로 갈아입어’

환풍구 벽면의 붙박이씩 옷걸이에 옷이 걸려 있었다. 김기사가 입은 것과 유사한 남방셔츠였다. 마찬가지로 코발트블루 컬러, 어두운 공간 안에서도 거무튀튀한 오물이 묻어 있었다. 다만 노란색 수기로 이름이 없었을 뿐

별도의 탈의실이 없기에 그 자리에서 갈아입었다. 경비복 느낌이 비슷하게 나기도 했고. 입고 나니 묘했다.

다시금 교재를 보면서 준호는 말했다.

‘한 십 분 뒤에 출발하면 되겠다’

‘네’

그때 사무실로 들어오던 김기사가 들어왔다. 형섭은 그의 셔츠를 확인했다.

짙은 코발트블루 셔츠에 금색으로 재봉된 이름은 김 00 색 대비로 인해 가독성이 오히려 좋아 보였다. 찰나의 순간에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마치 낙인처럼.. 아이러니하게 저렇게 가독성이 좋은 이름이 수기되어 있는데도 다들 이름을 부르지 않고 김기사 혹은 김 씨라고 부른다.

신기한 일이긴 했다.

‘나는 B동 본관으로 돌 테니까 준호 네가 새로 온 아이 챙겨서 움직여’

‘아 네 그렇게 할게요’

‘탕비실에 있는 캐리어를 내가 사용할 테니까 니들은 여기 있는 것을 사용해 이게 더 커’

김기사의 시선을 따라 구석을 향하자 은색 스틸의 손잡이가 달린 화물용 캐리어가 보였다.

‘먼저 출발 하마 끝나고 보자’

형섭과 동섭은 자리에 일어나 김기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 우리도 출발하자’

‘네’

‘간단해 뷔페가 끝난 장소에 음식물은 이 파란색 통에 버리고, 각종 주류 병은 박스에 나머지는 쓰레기는 이 투명한 비닐봉지 세 군데에 분류해서 둔고 그걸 건물 뒤편에 쓰레기장에 그 버리면 돼’

스틸 캐리어를 끌고 뷔페가 끝난 장소에 들어갔다. 주변 하객들이 식장에 오느라 한껏 꾸민 차림에 뭔가 대조적인 느낌 화려함과 비루함의 극명히 대비되는 순간이라 느꼈다. 이건 마치 흑백사진에 컬러점이 찍힌 느낌이 들었다. 형섭은 누구든 아는 지인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난 아직 어리니까 이것 또한 에피소드로 기억될 것이야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이런 마음은 한시적이지만 미묘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런 마인드는 강도가 아닌 빈도다. 마치 음식을 섭취하는 것처럼..

형섭은 음식물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에 와서 먹기는 해 봤어도 이걸 처분하는 건 처음이라

인기 많은 메뉴는 버릴게 별로 없었다. 가령 갈비라더지, 초밥, 육회, 각종 고급 튀김류, 그리고 나머지들은 통째로 버리기 일 수였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고 뷔페 음식 장소에서 음식물을 꺼내 플라스틱 파란색 통으로 담자 통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났다.

자연스레 준호는 병과 일반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었고 묘하게 형섭 자기가 음식물을 버리게 되는 역할을 하는 느낌이 들긴 했다. 뭐 그런 게 중요한가?

일차적으로 캐리어로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분류해서 여섯일곱 번 쓰레기장으로 나르니 일단락되었다.

쓰레기장에서 준호는 담배를 하나 꺼내 들고는 물었다.

‘담배 피우니?’

‘아뇨’

‘그렇구나’

‘이렇게 한 장소가 끝난 거야. 오늘은 한 세 장소만 돌면 될 듯, 어때 할만해?’

‘네 뭐 그런대로 할만한데요?’

‘다행이네’

사실 몸이 힘들거나 이런 건 별로 없었었다. 차라리 뷔페를 수거하는 그 시간이 더욱 편했다. 형섭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코발트 남방셔츠 그리고 쓸데없이 요란한 스틸 캐리어의 바퀴소리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 그 소리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일으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서포트 라이트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꽤나 버거웠다.

어쩌면 혼자 의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느끼기에 그건 실존하는 감정이다. 이것은 몸이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니 허상이 아니다.

부디 빨리 오늘 하루가 마무리되길

‘C관이 세시쯤에 마무리될 거야 가자’

‘아 우리 왔던 동선에서 오른쪽이죠?’

‘그래 맞아’

장소에 방문하니 이전 별관과는 달리 아직 삼분의 일 정도의 하객들이 남아 있었다.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네 애매하게 지금 다시 내려가기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가자’

‘네’

분주했다. 저 멀리 현제가 보였다. 말끔한 복장에 분주히 서빙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재미있는 일화다. 분명히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는데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불편하긴 하나 전말을 알고 있으니 뭐 그런가 보다 했다. 멀리서 현제가 형섭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자 형섭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아는 애야?’

‘네 오늘같이 아르바이트하러 온 친구예요’

‘아 그래? 꽤 잘생긴 친구네’

‘네 뭐 그런 긴하죠’

‘있다 같이 집에 가기로 했어요’

‘그렇구먼’

분주한 뷔페장에 요령이 생기니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구석에서부터 미리 쓰레기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홀 전반의 오더를 하던 매니저가 멀리서 형섭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기 아직 손님들 다 안 나갔는데 정리하고 있으면 안 되지 나현 씨 가서 말씀 조금 드리고 올래? 홀 마무리되면 있다가 오라고’

‘음.. 매니저님 지금 거의 다 끝나가는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아 우리 컨벤션센터의 이미지를 생각해야지 깔끔한 품격 응? 혹이라도 대표님이 보시면 피드백이 올 수도 있다고’

‘네?..’

‘아 이게 매니징이니지 아니다.. 여하튼 있다가 다 빠진 다음 정리하라고 해’

‘아... 네’

쭈뼛거리던 나현은 매무새를 다듬고 대각선 끝 지점에 있는 형섭에 다가갔다.

‘저기..’

‘네?’

‘그.. 죄송한데 하객님들이 동선 때문에 불편 해하셔서요. 하객님들 다 빠진 다음에 정리해달라고 매니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형섭은 동작을 멈추고 잠시 당황을 했다.

공무원 교재를 들여다보고 있던 준호는 고개를 들어 나현을 확인하자 책을 내려놓곤 최대한 매너 좋게 말했다.

‘뭐야 형섭이 정리하고 있었어? 그냥 조금 있다 하지 왜 그랬어’

‘쌓이면 무거운데 미리미리 나를까 했죠’

‘뭐 미리 한다고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니까. 여기 여직원이 그렇게 해달라니 잠시 내려가 있다가 다시 오면 되겠네’

‘아 네.. 뭐..’

준호는 나현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형섭을 데리고 내려갔다.

준호와 형섭은 다시 스틸 캐리어를 끌고 지하로 내려갔다.

그 둘을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현은 다시 매니저에게로 돌아갔다.

‘매니저님 말씀드리고 왔어요’

‘그래 잘했어. 간혹 하객님들 식사하다 발견하면 그 음식물이 냄새난다고 컴플레인 건다 말이야’

‘아. 네..’

그때 현제가 달려와 매니저에게 말했다.

‘매니저님 서빙 다 끝났는데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되나요?’

그때 헌제가 매니저에게 다가와 말했다. OJT를 받는 동안 싹싹한 현제는 매니저와 친밀도를 어느 정도 쌓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 D관으로 이동하면 돼’

‘그나저나 저 음식들 아깝네요’

‘아 저거? 인원수 제작해서 만들긴 하는데 혹시 모를 변수를 생각해서 분량보다 더 많이 만들지’

‘저 남는 음식들은 어떡하죠? ’

‘버리거나 음식 수거하는 시는 분들이 챙겨가겠지’

‘아 들고 가도 돼요?’

‘우린 안돼 이미지가 있는데. 그리고 아까 그 사람들이 너보다 일당이 적어, 사실 그 이유는 저 수거 음식 챙겨가는데 그것까지 포함되어 있어서야. 뷔페 아르바이트가 일급 팔만 원짜리 라면 저 음식값까지 다 포함되어 있어서야’

‘아...’

‘봐봐 넌 말끔하잖아 그래서 이 공간에 있을 수 있는 거야’

‘쟤 제 친구예요. 차려입으면 말끔해요’

‘그래? 뭐 살다 보면 운도 중요하니까?’

숙연함을 느낀 매니저는 이내 자리를 비우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오후 여섯 시

‘야 힘들었지 고생했다. 내가 할걸 그랬네’

‘아 그래도 아르바이트 시급이 내가 더 세잖아’

‘얼마 받았냐?’

‘너는’

‘팔 만원’

현제는 십만 원을 받았지만 형섭에게 굳이 아르바이트 금액을 말하지 않았다.

‘야 고생했다 이거 좀 들고 갈래?’

형섭이 비닐에 뷔페 음식을 챙긴 것을 들어 현제에게 보였다.

‘아.. 아니 난 괜찮아 자취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자’

‘그래 그러자 아 피곤하네’

그 둘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형섭은 00 버스에서 내려 자취하고 있는 원룸단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보증금 월세를 감안하다 보니 정류장이나 도로에서 도보로 십 분은 걸리는 장소였다. 그 장소 자체도 약간 고분인지라 오르막이었다. 의도치 않은 운동을 시켜 줬지만 오늘 같은 날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급여로 받은 금액과 뷔페에서 챙겨 온 음식들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

원룸단지에 들어서 자취방의 문을 열자 자취방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코안으로 밀려 들어왔고 형섭이 아닌 다른 사람이 체취가 그 공간을 채우고 있음을 느꼈다.

입구 바로 옆 아르바이트 가기 전 그대로 친구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 은 점심때 끓여 먹은 것으로 유추되는 컵라면 그릇과 1.5리터 콜라가 삼분의 일쯤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형섭은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왔지만 다스렸다.

‘야 왔다.’

‘갔다 왔냐. 어떻데?’

‘그냥 할만했어. 여기 먹을 거 좀 챙겨 왔어 먹어.’

음식물을 담아온 봉지를 방바닥으로 던지자 친구가 일어나 봉지도 풀지 않고 손으로 찢고는 육전을 손으로 집어 먹기 시작했다.

‘야 굉장히 맛있네 진짜 뭐냐. 너 다음 주에도 가냐? 잘 모르겠는데 이 아르바이트 괜찮은 것 같아’

‘오 존맛탱 야 옆방에 영민이도 좀 줘라 맨날 컵라면만 먹던데.’

‘내가 무슨 가장이냐 그런 것까지 챙기게.’

그러면서 형섭은 문을 열고 나가 일층 복도 끝에 있는 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야! 영민아 있냐? 야야 여기 와서 음식 좀 가져가라.’

‘오 뭔데 고마워 들었다. 괜찮은 아르바이트네 일급도 세고 안 그래도 배고픈 참에 잘됬음’ 접시를 들고 와 몇몇 음식을 들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형섭은 잠깐 자리에 앉아 쉬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자마자 음식물과 쾌쾌한 냄새가 믹스되어 미묘한 향을 채우기 시작했다.

형섭은 말했다.

‘아 저거 빨리 먹거나 처리해야겠어’

‘왜 맛만 좋은데’

‘많이 드세요 네~’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으려고 하자 친구가 달려와 동그랑땡을 먹다 남은 라면 그릇에 담아 갔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고 먹기 시작했다.

‘어우.. 야 대단하다 대단해.’

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순간 얼굴에 따뜻한 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코피...’

코피였다. 닦으려고 했는데 화장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것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형섭은 방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야 코피 난다.. 아 휴지, 휴지’

‘코 좀 그만 파 새끼 더럽게’

짜증이 살짝 더 치밀어 올랐지만 받아쳤다.

‘야 어떻게 알았냐 왕건이더라고’

‘휴지로 안되네’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서 좌변기에 앉아 휴지로 코를 틀어막았다.

그때 날아온 문자 소리가 진동을 했다 형섭은 확인을 했다.

세라였다.

‘오빠 다음 주 토요일은 일이 있으니까 일요일 데이트할까?’

형섭은 잠시 고민을 하다 답장을 했다.

‘그래 기분도 달랠 겸 우리 멀리 좀 가자’

문자에 답장을 하자 피가 휴대폰 액정에 묻어났다. 형섭은 조심스레 손을 물로 씻었다.

그리고 전면에 보이는 형석의 모습에 코에 끼운 휴지를 바꾸기 위해 한쪽을 뽑았다. 코피가 오른쪽으로 주룩 흘러내렸다. 밖에 빗소리가 후드득 때리기 시작했고 그 빗소리에 묻히리라 나지막이 흘렀다

‘젠장’

다음 주에도 이 아르바이트 장소를 방문했다.

다소 능숙해서 등장하는 시간에만 시간에 맞추어 컨벤션홀을 준호형과 순회를 했다. 그 화려한 장소에서 험한 차림새로 일하는 것도 꽤나 적응되어 별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일이 끝나고 일급을 받아가는 생각을 하니 뭐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그 이벤트가 발생하기 전 까지는.,,

오후 네시쯤 장소를 두 군데를 정리하고 다음 홀로 이동하는 사이에 사이 어디서 많이 본듯한 여자가 보였다.

익숙한 신장에 익숙한 체형 그리고 시그니처인 레이어드 C컬 파마

세라였다.

‘아.. 이런.’

아직 그녀가 형섭을 발견하지 않았기에 일부러 동선을 피해 화장실로 갔다.

볼일을 보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귀찮아서 머리도 감지 않고 부스스하게 왔으며 당연히 면도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코발트블루의 셔츠에는 지저분한 것들이 묻어 있었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자기 모습이 썩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 ’

어찌 되었거나 식정리를 하기 위해 나가야 했으니 조심스레 나가려고 했다. 화장실 앞을 나가는 순간 운명의 장난처럼 화장실 앞에서 마주쳤다.

‘아.. 오빠 여기서 뭐해?’

‘아 세라구나 대박.. 아르바이트 중이야 시급이 괜찮다길래 와 봤는데.. 오늘 처음 해본 거야 그나저나 친구 결혼식 온 거야?’ 문맥이 맞지 않는 말들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당황했다는 방증이었다.

‘아니 그냥 나도 알바 좀 알아보다다 아르바이트로 하객 알바가 괜찮다고 해서 옷도 좀 꾸미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사진도 남기고 하면 기분 좋잖아~’

너무 해맑게 웃는 세라였다.

형섭은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찌르르한 통증을 느꼈다.

‘그래?.. 세라 너 커리어우먼 느낌 나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야 종종 그렇게 입는 모습 자주 보여줘 너무 예쁘네’

‘아 그래? 이런 스타일은 처음이라 어색했는데 오빠가 괜찮다니 다행이네’

‘여기서 번 돈으로 다음날 오빠랑 데이트 가서 맛있는 거 먹자 하는 일에 비해 시급이 꽤 괜찮더라고 꿀 알 바인 거 인정’

‘아... 그래.... 아.. 그래’

‘세라야 몇 시에 끝나?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이 컨벤션웨딩센터에서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더라고 거기가 너랑 가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었거든’

‘그래’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에 비수가 박힌 느낌이 들었다.

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들키기 싫어 형섭은 자리를 피하면서 말했다.

‘오빠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손을 씻은 다음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형섭은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젠장’

현재 결혼식장

매니저에게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다시금 귀에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신랑 쪽 친인척분께서 하객들께서 불평불만이 계속 나온다고.. 에어컨 아직 수리가 안되었냐고 다시 물어보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매니저는 금일 일정 스케줄표와 내용을 확인하다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일정표를 주머니에 접어 넣고는 말했다.

‘조금 전에 그에 대해 언질을 하지 않았니? 수리를 진행하다 안된다면 아모르홀에서 에어컨을 유지하라고’

‘아..’

‘말했잖아~ 호텔 셰프님 아는 지인 결혼식이잖아. 아모르홀이 사이즈나 더 크고 하객들의 인원이 더 많지? 무엇보다 셰프님은 앞으로도 계속 볼 사이고 저기는 단순 고객들이잖아’

‘상황판단이 딱 되면 융통성 있게 처리하고 후보고 선 조치해도 돼, 그게 센스라는 거지 그러려고 널 부사수로 키우는 건데’

‘아.. 네 다음부터는 판단하에 선조치하겠습니다.’

매니저는 금일 타이트한 웨딩 일정 때문인지 매끄럽지 않게 진행된 상황들이 너무나 많이 발생하자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다소 까끌함이 어투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것을 스스로 인지한 그는 손으로 헛기침을 막으며 말했다. 그리고 찌푸린 인상을 다시금 가다듬고는 가급적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 예민해서 평소에는 괜찮은데 지금 조금 바빠서 그래’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 영감 오 년 동안 그냥 일한 건 아니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김기사 어르신 말입니까?’

‘그래’

나현이라 불리었던 여직원이 매니저에게 빠르게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매니저님 십분 뒤에 대표님께서 아이 움 홀에 도착하신답니다.’

‘아 그래? 장소가 변경되었나 보군 진작에 말했어야지 갔다 올 테니까 그 상황 알아서 정리해’

남자 종업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가벼이 숙였다.

‘네’

그런 매니저를 멀리서 형섭은 지켜보고 있다. 매니저는 형섭의 눈빛을 의식하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그는 형섭의 방향을 걷기 시작한다. 주변의 인파들은 왜곡되고 매니저가 신은 검정 페라가모의 로퍼는 흰 대리석 바닥을 두드렸다.

‘또각또각’

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만큼 정체모를 미묘한 감정의 뒤틀림도 커졌다.

숨결이 느껴지는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해서’




작품을 위한 설정은 블로그에 해놓았아요^^

https://blog.naver.com/admikerceo1000/22279828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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