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는어느 날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왔다.어떠한 전조증상도 없이 한순간에 나를 덮쳤다. 때는 봄이었고 시댁부모님을 찾아뵈러 서울 가는 길 차 안에서 나와 공황장애의 첫 조우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그 당시의 그 느낌과 감정이 뭐였을까, 어떤 말로 표현해야 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 순간의 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과 불규칙하면서 숨이 막히는 듯한 호흡과 처음 느껴보는 이상하고 알 수 없는 느낌과 기분에 휩싸인 채 벌벌 떨었다. 무언가에 씐 기분, 내 영혼마저 붕 떠있는 듯한 기분,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표현할 수 없는 이인증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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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댁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패닉상태인 채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안절부절못했고 그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는 잊힌 듯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집으로 돌아올 때쯤 조금 안정을 찾았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날 저녁 다시금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그날 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다. 그렇게 밤새 진정되지 않는 심장과 호흡, 그 밖의 다른 신체변화들로 나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마주했고 한편으로는 어쩌면 내가 이대로 정신이 미쳐가는 건가 라는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서서히 날이 밝아올 때쯤 난 결국 응급실로 향했고 수액을 꽃은채 여러 검사를 연이어하면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는 지극히 정상. 내가 느끼는 몸은 비정상적인데 이상 없다는 결과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담당의사는 나에게 정신과를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떠시냐는 말씀을 남긴 채 뒤돌아 가셨다. 이로써 내 삶에 공황장애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나는 그날 공황장애라는 걸 알았지만 현실을 부정하듯 계속 믿지 못했고 의사의 오진을 운운하며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다녔다.
모든 병원의 대답은 동일했다. 이상 없다, 지극히 정상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말은 약속이나 한 듯 내가 유일하게 가지 않은 한 곳을 넌지시 던져주는 거였다. 이로써 현실에게 백기를 들며 항복을 했고 그렇게 정신과를 난생처음 찾았으며 공황장애와의 본격적인 사투가 시작되었다.
공황장애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덤으로 가져왔다. 둘은 단짝친구여서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늘 많이 흔들리고 나약하던 사람이었는데 불안은 그런 나에게 더 큰 공포를 몰고 왔다. 공황장애와 함께 불안장애가 덩달아 심해졌는데 다니던 정신과 의사가 공황장애보다 불안증세가 더 시급하다고 진단 내릴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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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증은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을 흔들었다. 가령 걷다 보면 나타나는 찰나의 종아리 통증에도 불안해했고 평소 대수롭지 않아 하던 두통조차도 염려할 정도로 온몸의 자극이나 통증에 신경을 곧두세운 채 나타나는 증상에 지나치게 염려하며 불안에 떨었다. 이러한 불안증세와 공황장애를 고치기 위해 처방되던 정신과 약조차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이유인즉 약이 가져오는 부작용이 걱정되고 불안해서 애초에 먹지 못하는 거였다.
이 정도로 나날이 나의 불안증세는 심해져 갔고 도통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계속 깊어져갔다.
고통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 우울에 잠식된 채 점차 나를 잃어가고 있었고 내 삶은 그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날들 속에서 조용히 숨만 쉬던 어느 날인가 문득 나는 다시 살고 싶었다. 다시 한번 잘 살아보고 싶었다. 눈물만 흘리는 가녀리고 위태한 내 삶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제는 조금 따뜻해지고 싶었다. 삶이 내게 준 시련과 고통에 굴복해 주저앉지 말고 이제는 마주하기로 마음먹었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혼자 돌아다니기, 마트 다녀오기 등 사소한 것부터 차근히 시도해 갔다.
나는 불안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두려워도 계속 시도했고 걱정하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체득하면서 서서히 호전되어 갔다. 경험을 통해 괜찮다는 걸 깨달아갈수록 많은 부분이 빠르게 안정되어 갔고 그와 더불어 용기와 자신감도 두터워졌다.
경험만큼 큰 배움과 깨달음은 없었다.
이렇듯 실체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기보단 마주했을 때 비로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마음먹은 만큼 삶은 나에게 그만큼의 힘과 용기를 내어주었고 때론 날 시험하듯 시련이 몰아쳤지만 그 흔들림 덕분에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바라고 꿈꾸는 대로 삶은 그 길을 보여주었다
삶은 날 배신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내 편이었던 거다. 미약한 인간이기에 깨닫지 못할 뿐이다.
나는 충분히 넘치게 아팠고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무한 반복하면서 온전한 나로 돌아오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길고 길었던 암흑 같던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왔을지, 다른 삶을 살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도 공황장애와 불안증세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처음과 달리 우리의 관계는 차츰 멀어졌지만 여전히 내가 좋은가보다.
왜 떠나지 않냐고 이따금씩 소리쳤지만 너도 어디 맘 둘 곳이 필요한가 보구나 생각에 곁에 머물고 싶을 때까지 자리를 내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생의 소중함을 알고 내가 강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었던 건 그것 덕분이기에 이제는 정말 고마운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별하게 되는 그날까지 때론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더불어 같이 잘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