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직업 변천사

아내가 천직을 찾기까지

아내와 나는 올해로 결혼 23년차인 부부다.

사랑에 빠졌기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프로포즈도 없이 결혼했다. 그리고 그저 하루 또 하루 충실한 시간을 보내기만 했는데도 여전히 서로 행복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할 일도 없겠다.


결혼힌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내가 아직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직장생활을 그만둔지 몇 년이 지난 상태로 1인 기업으로 사업과 상담에 종사하던 터라 특정한 장소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고 아내의 직장은 서울 시내에 있었다. 평촌 신도시의 작은 원룸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었지만 서울까지 출퇴근을 힘들어 하기에 살던 집을 전세를 주고 아내의 회사 근처로 전세로 들어왔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기에 나 역시도 아내의 직장 동료들과 자연스레 접할 일이 가끔씩 생기곤 했다.


유난히 금슬이 좋은 우리에게 아내 직장 동료들은 악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어쩌면 세상의 많은 부부들에게 적절한 듯한 이야기를 던졌다.


"1년만 지나봐라."

그렇게 1년이 지나도 별 일이 없으니,

"2년이 위기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위기는 홀수해마다 찾아온다."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했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 들어보았을라나?


나는 아내에게 1년 동안은 신혼을 즐기고 아이는 이후에 갖자고 제안했고 아내도 그러기로 동의했다. 1년이 지났고 계획대로 하려고 했지만 아이는 뜻대로 잘 생기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만약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고 직장도 그만두고 홀로섰는데, 나름의 사명감에 불타던 때라 내 아이가 없으면 어떠리, 세상의 아이들을 키우는 마음으로 살지, 라고 다짐했다.


- 여기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좀 있는데 일단 이 부분은 이 지면에서는 생략하고 - 결국 우리는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아이는 우리 주문대로(?) 나와 아내의 원하는 부분들을 골고루 나눠서 태어났다. 아들의 돌잔치를 마치고 아내는 직장을 퇴사했다. 위기는 홀수해마다... 를 부르짖던 그 사람들을 떠났다.


나와 처음 만났을 당시 아내는 첫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던 때였다. 첫직장은 전통문화 관련된 사단법인이었다고 했는데 박봉에다 스트레스로 악화된 건강을 이유로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꼭 들어가고 싶은 중견기업을 찾았는데 자신감과 자존감 등의 결여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나를 만나 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을 바로 세우고서 그 회사에 지원해서 입사하게 되었다. '위기는 홀수해' 라고 외치던 바로 그 회사였다.


아내는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다.

추측컨대 성적에 맞춰서 학과는 적성과는 상관 없이 대충 갔던 것 같다. 프랑스까지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하고 불어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단다. 그래서 전공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불어 단어조차 몰랐다. 전공 하나만 보고 대학을 간 내 입장에서 보면 비싼 등록금이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아까울 지경이다. 그 와중에 공무원 시험을 2년 정도 준비했다고 했다. 스스로가 기억력에 핸디캡을 갖고 있으면서도 7급만 봤단다.


- 아내를 절대로 무시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니 바로 윗 문단만으로 오해는 하지 마시길 -


아내는 그렇게 나와 만나서 상담을 받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아이가 돌이 되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다.


아내에게는 특별한 지식이나 특기같은 것이 없었다.

불어를 전공했다고 했지만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학점이나 대충 떼웠던 것 같다. 그런 대학생활의 상당 부분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보냈다지만 공무원이 된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뭔가 남는 것도 없이 허송세월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5년 정도 다닌 회사에서의 직무도 제네럴리스트이지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었다.


그런 아내에 반해 IT쪽으로 전공을 하고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나름의 세상에서의 경험과 열정과 관심과 지식과 상식 등으로 무장한 나였다. 절대로 아내와의 관계에서 누가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식의 비교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뭔가가 없다는 것이 아쉽달까 안타깝다고나 할까, 내게는 가끔은 그렇게 느껴지곤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의 일이다.

입학식을 하고서 배정받은 교실에 금세 적응해서 까불거리는 아이를 두고 처음으로 아내와 나는 둘이서만 집으로 향했다. 귀가하던 차 안에서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수호도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이젠 자기도 자유로운 시간이 좀 더 생기겠지?

이제는 뭔가 자기만의 일을 찾아보면 어때?"


아내의 MBTI 유형은 ISFP로 알고 있다. 나는 INTJ로 둘 다 내향형인 것만 빼면 나머지는 모두 정반대 성향에 가깝다. MBTI 외에도 여러 개인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 점성술을 바탕으로 하는 다른 체계를 참고해서 봐도 아내의 특정한 성격은 마찬가지로 드러났었다 - 아내는 그저 지금 현재만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유형에 가깝다. 어찌 표현하면 별 생각 없다고 해야 할지, 자기 나름대로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나의 그 우연한 말 한마디로 아내는 '각성' 했다.

한편 생각하면 자기만의 일을 찾아보라는 나의 말이 알을 깨고 나올 준비가 된 아내의 껍질을 쪼아준 것인 듯한 느낌도 든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도.


아내는 3일 정도 인터넷을 뒤지더니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를 찾아냈다. 그렇게 여의도에 있는 숲연구소를 비롯한 남효창 박사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양평읍에 살고 있는 지금도 멀지만 당시에 살던 양평의 용문면 산골짜기에 있던 집에서 여의도까지는 정말 먼 거리였다. 대중교통으로 편도 3시간이니 왕복 6시간인 거리다. 그 먼 거리를 수시로 왕복하며 아내는 숲과 자연의 생태에 대해 공부를 하러 다녔다. 그렇게 숲해설사 교육을 듣고 자격증을 따고, 그런 세월이 어느새 12년이 지났다. 아내는 요즘도 툭하면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나간다. 무슨 교육이 그리도 많은지 배울 것들이 천지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완전히 생계를 꾸릴 정도로의 수입은 되지 않는 것 같다. 뒤에서 내가 받쳐주니까 용돈이라도 버는 듯한데 - 용돈이라기엔 크고 생계를 꾸리기엔 부족한 만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사소한 문제들을 다 떠나서

아내는 이제 자연과 생태와 환경에 관한 전문가다.


나는 주로 기계(컴퓨터나 전자장비 등)와만 친하고 어릴 때부터 자연물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오래 살면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 사랑하기 때문에 더더욱 닮아가는 것일까.


이젠 자연에 속한 수많은 존재들이 나의 눈에도 비친다. 온갖 이름 모를 나무들, 곤충들, 새들... - 서당개 3년이라고, 나도 이제 아는 이름들이 많이 생겼다. 애기똥풀, 금계국, 개미귀신, 일본잎갈나무...... -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종종 아이처럼 묻는다.


"이건 뭐에요?"

"이건 왜 그런 거에요?"


백 개를 물어면 한 두 개를 제외하곤 대부분 답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참 좋아진다.

답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다.


아내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전문가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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