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래 공수거, 업수래 업수거의 진실

보이지 않는 수저, 우리가 지은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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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와 죽을 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해서 공수래 공수거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태어나 결국 한 줌의 재나 흙으로 돌아간다. 육신이라는 물리적 차원에서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더 넓은 관점에서 보아도 우리는 과연 빈손일까?


언젠가부터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 표현은 더더욱 구체화되어 다이아수저부터 동수저까지, 태어남과 동시에 결정되는 환경적 조건을 계급처럼 구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런 표현 뒤에는 늘 부정적인 감정들이 따라붙는다. 부러움, 억울함, 혹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 같은 것들이다.


사람들은 가끔 운 좋게 태어난 이를 두고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나름의 직관이 담겨 있다. 결과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말하면 ‘인과론’이 된다. 합당한 원인이 있다면 그에 맞는 결과가 따른다는 원리다.


여기에 전생과 환생, 윤회라는 관점을 더하면 하나의 설명이 가능해진다. 삶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그 속에서 인과의 흐름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왜 어떤 이는 금수저로, 또 어떤 이는 흙수저로 태어나는가. 윤회적 인과론의 관점에서는 이것 역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전생의 기억은 블랙박스처럼 가려져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과론은 반드시 전생의 이야기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생에서도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끊임없이 작동한다. 어떤 노력을 하느냐, 어떤 습관을 쌓느냐에 따라 가까운 미래뿐 아니라 특히 먼 미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삶을 정말로 ‘공수래 공수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삶은 오히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업수래 업수거(業手來 業手去).


우리는 빈손으로 오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지은 원인과 가능성을 품고 태어난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다시 수많은 원인을 만들며 살아간다.


업(業)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다. 우리 일상 속에서도 “업을 지었다”, “업이 많다”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보통은 윤회와 전생의 맥락에서 이해되지만, 사실 업이라는 개념은 단 한 번의 삶 속에서도 충분히 성립한다. 우리가 만드는 생각, 선택,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원인이 되고 그 결과가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좋은 결과를 원한다면 좋은 원인을 많이 지어야 한다.
여기에는 자신을 위한 노력뿐 아니라 남을 돕는 일도 포함된다.


많은 성공의 사례들을 관찰해보면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도움과 인연이 함께할 때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남을 돕는 씨앗을 뿌리는 일은 결국 나라는 토양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 씨앗들이 모두 열매를 맺지 않더라도 괜찮다.

이미 우리의 삶은 ‘빈손’이 아니라 우리가 지어온 업으로 채워진 풍성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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