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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Dec 06. 2021

을지로 양미옥

추억이 깃든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누구에게나 어떠한 추억이 깃든 애정 하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간에. 내게는 한겨울이 되면 유독 생각나는 곳이 있는데 을지로-요즘은 힙지로라 불리는-에 있는 양미옥이 그런 곳이다.   


내가 이곳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객사 직원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해야 할 자리가 있는 날이었다. 나와 동료 직원 이렇게 둘은 그 고객사 직원을 만나러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렸다. 우리 둘은 여자였고 고객사 직원은 남자였다. 그 분과는 이미 여러 번의 통화와 미팅을 통해 조금은 익숙해진 관계였다. 나이가 우리보다 여덟 아홉 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와 동료직원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그 남성 분은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분은 우리 둘에게 여동생과(?) 같은 느낌을 갖고 잘 대해줬던 것 같다.


과장님 어디서 맛있는 저녁을 사드리면 될까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양미옥이라고 아세요? 거기서 저녁 사요.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려서 6번 출구로 쭉 걸어 나오면 양미옥이라는 가게가 있을 거예요. 7시에 거기서 만나요.


우리가 무조건 저녁을 사야 되는 중요한 자리였고, 그분은 몹시도 정확하게 가게까지 콕 집어서 거기서 밥을 사라고 했다. 그럼 우리들은 그 음식점을 몰라도 무조건 거기서 사야 되는 거다. 우리는 그렇게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컬러풀한 포스트잇이 우리를 맞이했다. 포스트잇에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세요' '쭉 앞으로 걸어가세요' '이제 거의 다 와가요' '조심히 오세요' 등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맙소사 이렇게 스위트 한 고객사 직원이라니. 이미 그분의 성격은 대강 알고 있었지만 귀여우면서도 예의 바른 생각지도 못한 제스처였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런 소소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는 철저함까지. 이미 역에 내리기 전 본인이 무언가를 준비해놨다고 들었던 터였지만, 우리는 놀라고 기쁜 마음을 안고 포스트잇을 한 장씩 떼며 양미옥으로 향했다.   


"아니 과장님, 언제 또 이런 걸 적어서 지하철 역에다 붙여 놓으셨대요? 감동이에요 감사합니다"

"에이 뭘요. 두 분이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얼른 맛있는 거 먹읍시다"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창, 특양, 곱창 등등 골고루 시켜 무척 맛있게도 먹었다. 술술 잘도 넘어가는 술도 당연히 함께. 중요한 업무 관련 얘기는 뒷전이 되어버렸고 연애 육아 결혼 등등 다양한 주제로 그날 밤 이야기는 아주 맛있게도 흘러갔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냐고? 당연히 고객사와의 일정도 잘 조율되었고 그 회사와는 항상 수월하게 모든 일이 잘 진행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스무   맛없는 음식점에서 아무렇게나 구워진 비릿한 곱창을 처음 접한  사실 ''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절대로  음식을 다시는  입에 가져가는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양미옥에서   대창과 특양 곱창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냄새나고 빈약한 곱이 아니었다. 오동통하며 속이   곱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서 멈추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렸고 먹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그런 맛이었다. 30 전통의 양미옥은 수요 미식회에 소개된 적이 있고,  김대중 대통령이 180 넘게 찾은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거기에 직원 분들이 직접 구워주시니 우리는 그냥 편히 앉아서 소스에 찍어 먹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가지 단점이 있다면 음식 가격이 조금 사악한 나머지 법카로 긁을  가장 많이 먹을  있다는 ?


그렇게 친절한 고객사 직원 분을 통해 알게 된 을지로 양미옥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맛집이 되었다. 그 이후에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몇 번의 회식을 그곳에서 했으며 비싸더라도 대창은 꼭 그곳에서 먹고 싶은 마음이 확고했다. 오빠와 새언니가 신혼여행을 앞두고 면세점에 쇼핑을 하러 서울에 왔었는데, 남자 친구를 처음 소개했던 자리도 바로 그곳이었다. 남자 친구는 우리 오빠와 새언니를 처음 만나 분명 불편한 자리었을 텐데 양미옥은 그런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소시켜 주는 공간이었다.

누구 하나 서로 눈치를 봐가며 집게를 들고 대창을 굽지 않아서 편했고 그곳의 오래되고 소박한 분위기는 우리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실제로 남자 친구와 오빠 새언니 나는 그날 양미옥에서 몇 병의 술병들과 몇 번의 타버린 판들을 교체 해가며 수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여행 얘기로 시작해 전공 얘기, 회사 얘기, 가족 얘기 등등 우리들이 서로를 알아가기에 충분했던 시간은 양미옥에서 시작됐다.


둘째를 낳고 육아에 지쳐있을 때 시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을 간 적이 있다. 내 오랜 벗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고 있는데 나만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기에 우리는 오랜만에 1박 2일 뭉치자며 명동 한복판에 있는 호텔을 잡아놓았다. 오랜만에 서울에 왔는데 뭐가 제일 먹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바로 을지로 양미옥을 외쳤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위해 저녁 타임을 예약해뒀다. 우리들은 모두 신이 나서 맛있는 음식 사진을 찍고 서로의 얼굴을 찍고 찍힌 서로의 얼굴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고 다시 먹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즐거운 밤이 흘러갔다. 양미옥에서. 기분 좋게 취해 을지로에서 명동까지는 걸어가도 된다며 깔깔 거리며 밤길을 휘청휘청 걷는데 그날 우리가 진짜로 숙소까지 걸어갔는지 아니면 택시를 타고 갔는지 기억이 통 나질 않는다. 그저 그날 밤 친구들과의 유쾌한 분위기만 생각날 뿐. 내게 양미옥은 그렇게 항상 따뜻하고 즐거웠던 곳이다. 그런 곳이었다.


12월 1일 갑자기 코끝이 시릴 정도로 추워지니 자연스레 양미옥이 생각났다.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운 대창이 먹고 싶어졌다. 다음 주에 서울 가면 친구들에게 또 양미옥 가자고 해야지 하며 네이버 창을 열었다. 양미옥을 검색하는데 관련 검색어에 '을지로 양미옥 화재'가 같이 뜬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설마 하며 클릭을 했는데 관련 기사를 읽고 침대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양미옥이 며칠 전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기사였다. 계속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줄 알았던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까마득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대로 침잠해버렸다. 그저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양미옥을 떠올리며 부푼 마음을 안고 검색을 했는데 화재라니. 화재라니.


검색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갔으면 까맣게 그을린 양미옥을 보고 나는 더 허망했을까.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이렇게 결국 노트북을 켰다. 양미옥은 아마도 을지로가 아닌 다른 곳에 다시 오픈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을지로에 자리 잡고 있던 양미옥 본점은 없을 것이다. 그 장소는 안타깝게도 화재로 없어졌지만 양미옥에서의 내 추억은 아직까지는 또렷하므로 조금이나마 기록해 놓고 싶다.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추억을 남겨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엄청 맛있는 양곱창 집을 발견했다고 해도 내 마음속 부동의 1위는 사라진 양미옥 일 거라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애정 하는 장소가 그대에게도 있다면 자주 찾아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많이 누려보자. 여러 가지 이유들로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 있으니 그곳이 없어지기 전에 자주 오래 머물러 더 많은 추억을 쌓자고 얘기하고 싶다. 그래도 된다. 일 년 중에 가장 따뜻해야 할 연말이니까.  


                                                     (사진 출처: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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